[인터뷰]
외화 벌어 한국영화에 투자한다
2010-01-07
글 : 문석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김원국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대표

<렛미인>과 <애자>, 그리고 <나인>의 공통점은? 예술성 짙은 유럽영화와 중규모의 한국영화, 그리고 화려한 할리우드 뮤지컬영화 사이에 놓인 다리는 데이지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다. 2005년 창립해 <스윙걸즈> <나 없는 내 인생> <쉬즈 더 맨> <미스트> 같은 영화를 수입해온 데이지엔터테인먼트는 2008년 1만달러도 안되는 수입가로 들여온 <렛미인>으로 대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널리 떨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오감도> <애자> 등 한국영화에 메인투자를 시작했으며, <나인> 같은 초특급 캐스팅 할리우드영화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30대임에도 불구하고 10여년의 수입 경력을 갖고 있는데다 한국영화 제작투자에까지 나서고 있는 김원국 대표에게 ‘수익성 극대화’ 전략 노하우를 들어본다.

- <나인>은 보통 수입사가 범접하기 어려운 대형 할리우드영화다. 어떻게 수입하게 됐나.
= 미국 웨인스타인 컴퍼니가 배급하는 영화니까 어차피 직배사가 들여오지 못하고 수입사의 몫이었는데, 중요한 점은 싸게 샀다는 사실이다. 아주 빨리 구매했으니까. 이 영화 수입계약을 맺은 게 2007년 봄이었는데 당시에는 감독과 마리온 코티아르 정도만 결정난 상황이었다. 유명한 뮤지컬인데다 <시카고>를 만든 롭 마셜 감독이 연출한다는 것을 알고 계약을 했다. 그랬는데 그해 칸영화제에서 이렇게 화려한 배우들이 나온다는 사실이 발표됐고 난리가 났다. 심지어 ‘그 계약 파기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웃음) 웨인스타인쪽에 항의하는 수입사도 있었단다. 우리 수입가는 90만달러인데 만약 최종 캐스팅이 결정된 뒤에 샀다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 90만달러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 그동안 우리가 수입한 영화 중 최고가이긴 한데, 영화가 만족스럽게 나와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일단 100만명만 들어도 수익이 생기는 셈이니까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사실 이 정도 영화를 독립적인 수입업자가 붙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를 위해서 그동안 내가 10년 넘게 이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만큼 화려한 배우에 또 대단한 음악과 춤에 잘 만들어진 무대 세트까지 만족스럽다. 그동안 수입한 영화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 그런 만큼 가장 흥행을 기대하는 영화일 것 같다.
= 사실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극장에 관객이 많고 남녀가 데이트하면서 보기 좋은 영화니까. 보통 뮤지컬 공연 티켓이 10만원 이상인데 8천원에 대단한 배우가 나온 뮤지컬을 본다고 생각하면 관객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다.

- 비싸게 주고 산 영화인 만큼 신경도 더 쓰는 건가.
= 사실, 우리는 철저하게 수익률 위주로 계산을 한다. 비싼 영화는 잘 안 산다. 아무리 영화가 좋아도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을 넘어가면 포기하고 만다. 우리는 보통 마켓에 7~10명이 함께 가는데, 시간표를 철저하게 짜서 모든 시사를 꼼꼼하게 본다. 만약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영화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서 흥행이 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아예 몰랐던 영화가 잘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 그렇게 많은 인원이 마켓에 나간단 말인가.
= 보통 마켓에는 150편 정도가 시사로 선보이고 회사 부스에 가면 더 많은 영화가 있다. 다른 수입사는 2~3명만이 가게 되는데 감당이 안된다. 우리는 많이 가서 보고난 뒤 매일 토론을 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이나 <나 없는 내 인생> <더 폴> 같은 영화를 잡을 수 있었다. <렛미인>도 그렇게 붙든 영화다. 난 전혀 몰랐는데 직원들이 사자고 하더라. 9천달러밖에 안되니까 그냥 사본 거다. (웃음) 나는 직원들을 최소한 1년에 한번은 마켓으로 보낸다. 마켓을 구경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해야 영화를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알게 된다. (웃음) 어렵게 산 만큼 마케팅도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우리는 회사 안에 마케팅팀을 두고 있다. 규모 큰 영화는 외부에 맡기지만 작은 영화는 자체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손익을 맞출 수 없다. 자회사로 영화사 구안을 둔 것도 소규모 영화를 효율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다.

- 그동안 수입작 중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영화는 무엇인가.
= 단연 <렛미인>이다. 이 영화에 들인 총비용이 4천만원 정도였는데 10만명 가까이 관객이 들어서 많이 벌었다. <쉬즈 더 맨>도 메가박스가 많이 도와줘서 잘됐고, <트랜스포터: 라스트 미션>도 생각 이상으로 벌었다. 98만명인가 봤으니까. 2009년 작은 영화까지 모두 20편 정도 개봉했는데 <블룸형제 사기단>과 <하이레인> 빼고는 다 벌었다. <블룸형제 사기단>은 좋아하는 관객도 많았는데 아쉽게 잘 안됐다. <하이레인>은 긴박감이 좋아서 기대를 건 영화인데 우리가 투자한 <애자>와 같은 날 개봉하게 됐다. (웃음) <애자> 개봉을 앞당기면서 그렇게 된 거다.

- 평균 타율은 굉장히 좋은데 대박난 작품은 없었다.
= 나는 정말이지 평균 수익이 10~30%만 나오면 정말 좋은 것 같다. <테이큰> <주온> <디 아이>처럼 의외의 흥행작은 잘 안 온다. 나는 ‘이 정도 영화면 이 정도 가격이면 좋겠다’해서 구매하고 ‘이 정도 마케팅비를 쓰면 이 정도 흥행이 되겠다’고 예측을 해서 사업을 펼치는 게 더 맞다고 본다. 사실 예전에 수입업을 할 때 손해도 많이 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익이 나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간단한 원리가 있더라.

- 어떤 원리 말인가.
= 이건 말하면 안되는데. (웃음) 그러니까 어떤 영화의 개봉을 위해 예산을 짠다고 치자. 이 영화를 본 직원들의 예상치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50만명짜리다, 10만명짜리다 하는. 개인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나오는 보수적인 수치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시기에 개봉하면 30만명 정도 들겠다 하는. 그러면 30만명을 손익분기점으로 놓은 뒤 여기에서 20~30%를 깎아서 예산을 짜면 된다. 마케팅비를 조금만 더 쓰면 좀더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무조건 그만큼을 빼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예상대로 간다면 20~30%가 남는 거고, 실패하더라도 손해는 줄어들게 된다.

- 영화를 구매할 때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나.
= 비슷하다. 회의를 통해 어느 정도 흥행이 될지를 미리 점쳐보고 그에 따라 적정가를 매긴다. 나는 직원들에게 흥행 수치를 내다보는 훈련을 많이 하게 한다. 그 적정가를 넘기면 무조건 사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 수입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사고 싶은 영화는 결국 포기 못한다고 하더라.
= 그런 분도 있고 포기 잘하는 분도 있다. 나도 10년 이상 하다보니 괜찮아졌는데, 5~6년 때까지만 해도 막 사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게 쇼핑중독과 비슷하다. (웃음) 거기서 당장 돈을 지불하는 게 아니니까 일단 갖고 오는데 막상 한국에 오면 머리가 아파진다. 그렇게 경험을 쌓으면서 노하우를 익혔다.

- 완성작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흥행수치를 미리 예상하는 게 어렵지 않나.
= 외화는 그나마 쉬운 것 같다. 할리우드쪽은 시나리오, 감독, 예산 등의 요소를 보면 대충 수준이 나온다. 산업화돼서 그런지 몰라도 결국 영화가 그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 오래 하다 보면 제작사와 배급사 특성까지 알게 된다.

- 마켓에 가기 전에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가나.
= 그렇다. 우리 해외팀이 일주일에 40편 정도를 읽는다. 웬만한 영화를 다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매일 해외 뉴스를 업데이트한다. 그렇게 정리된 정보를 바탕으로 마켓에 간다. <나인>은 시나리오 없이 계약했던 특별한 경우인데, 우리는 시나리오를 읽지 않으면 거의 사지 않는다. 시나리오가 바뀌기도 하다 보니 도움이 안될 때도 있지만.

- 지난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는 많이 구매해왔나.
= <더 문>을 만들었던 던컨 존스 감독의 신작 <소스 코드>를 계약했다. 재주있는 감독인데다 시나리오도 좋고 주연인 제이크 질렌홀이 <페르시아의 왕자>로 먼저 뜰 게 확실해서 괜찮다고 봤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감독의 차기작 <51구역>(Area51)도 구매했다. ‘51구역’이라는 데가 외계인과 UFO를 실험했다는 기지 아닌가. 소재가 재밌더라. 그리고 훌리오 메뎀 감독의 <룸 인 로마>와 <트루먼쇼>와 컨셉이 약간 비슷한 영화 <존슨스> 등 몇편 안 샀다. 사실 이번 AFM에는 화제작이 적었다. 금융위기 때문이다. 발표만 해놓고 못 들어간 영화도 많았다.

- 2010년에는 어떤 영화들이 잡혀 있나.
= 존 쿠색, 주윤발이 나오는 대작 <상하이>,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대형 역사극 <아고라>, 캐서린 제타 존스의 로맨틱코미디 <리바운드>, 샘 워딩턴과 키라 나이틀리가 나오는 <라스트 나이트> 등이 있고 수입작은 아니지만 투자작인 <공자>가 있다.

- 한국영화도 계속 진행하는 건가.
= 지난해에는 <애자>와 <오감도>에 메인투자를 했고 <실종>을 배급대행했는데, 한국영화도 해보니까 좋은 것 같다. <애자>는 신종플루 때문에 피해를 봤지만 흑자가 났고, <오감도>도 약간 적자가 발생했지만, 민규동 감독의 에피소드를 장편화한 버전이 개봉되고 나면 손익분기점은 맞출 전망이다. 사실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여러 이유다. 그중에는 어차피 흥행성있는 외화의 대부분은 직배사 영화라는 점도 있다. 사실 한국영화가 잘 안되면 외화도 잘 안된다. 그 역도 성립된다. 외화로 번 돈을 바탕으로 한국영화를 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시너지라는 배급사도 있으니까 한국영화를 투자·배급할 수 있는 여건도 좋다. 지금은 공동제작과 투자를 하고 있는 엄정화 주연의 <베스트셀러>를 찍고 있다. <바르게 살자>를 만든 라희찬 감독의 신작,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 장항준 감독의 코미디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우리는 한국영화 5~8편 정도를 하게 될 것 같다.

- 본격적으로 한국영화쪽으로 뛰어드는 것인가.
= 외화를 기본으로 가져가면서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를 담당하려 한다. 언급한 한국영화 5~8편 중에는 단순한 배급 대행작도 있을 거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화는 아마 4편 정도가 될 것이다. 대신 제작비 규모가 크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한국영화 메이저가 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한국영화 또한 수익률 위주로 계산한다. <베스트셀러>가 순제작비 23억원으로 좀 높은 편이고, 장항준 감독 영화는 17억~18억원 정도, 이해영 감독 영화는 13억~14억원 수준이고 라희찬 감독 영화가 20억원이 조금 넘을 것 같다. 마케팅비도 적게 쓸 계획이다. 우리는 원래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쓰는 회사가 아니다.

- 한국영화 투자 재원은 어디서 조달하나. 펀드에서 투자하는 것인가.
= 현재 100억원 규모의 한화제2호데이지문화컨텐츠투자조합과 이수와 함께하는 7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이 있는데 모두 외화 투자에 쓰이도록 돼 있다. 결국 외화로 번 돈을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것이다. <나인>이 벌 돈도 한국영화에 들어갈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다양성영화전문투자조합(캐피탈원다양성영화전문투자조합)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 영화계에는 어떻게 뛰어들게 됐나.
= 어떻게 하다보니 왔다. (웃음) 광고회사에 있다가 영화광고를 하게 되고 하면서 수입업에 관심을 두게 됐다. 밖에서 볼 때는 가장 쉬워 보이더라. 그런데 막상 들어와보니 쉽지 않아서 고생을 꽤 했다. 그렇게 만든 회사가 영화사 감자였다. 1998년에 시작하면서 수입했던 첫 영화가 <브랜단 앤 트루디>였다.

- 감자는 작품성도 높고 대중성도 좋은 영화를 많이 소개했는데.
= 여건이 지금보다는 나았다. 그나마 비디오 시장이 살아 있었고 마케팅 비용도 그렇게 많이 안 들었다. 그런 게 많이 받쳐줬던 것 같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줄리앙 슈나벨의 <비포 나잇 폴스>,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 같은 영화들을 들여왔었다. 그렇다고 예술영화 계열만 수입한 것도 아니다. <워크 투 리멤버>처럼 대중적인 영화도 있었고, 성룡의 <메달리온>도 있었다.

- 그런 수입작들의 면면을 보면 영화 마니아로서 출발한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 영화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영화를 하면 돈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웃음) 그러다가 감자가 좀 안되니까 이걸 내가 왜 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니까 영화 일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일반 회사를 다녔다면 40대 중반이 되고 하면 비전이 없었을 것 아닌가. 또 영화라는 게 개봉 때는 스트레스받지만 이만큼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일이 또 없다. 그리고 이런 점도 있다. CJ의 햇반이 있는데 어떤 기업이건 즉석밥 분야에서 CJ를 이기긴 어렵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애자>라는 영화는 대기업 브랜드가 아닌데도 CJ, 오리온, 롯데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절대강자와 겨루는 재미가 있다는 얘기다.

- 데이지엔테테인먼트의 장기적인 비전은 무엇인가.
= 롤모델을 생각한다면 웨인스타인 컴퍼니 같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웨인스타인이 스튜디오 아래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서 좋은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것처럼 과거 쇼이스트나 튜브엔터테인먼트가 했던 구실을 하는 거다.

- 영화계에서 10년 넘게 활동했는데, 아직도 일이 재밌나.
= 힘들긴 해도 항상 자극된다는 점에서는 재미가 있다. 나는 예측을 하고 그것을 맞히는 일을 좋아한다. 영화가 한방에 뒤집어지는 흥행 비즈니스라고 해도 준비만 열심히 한다면 비즈니스로도 재미가 있다. 올해는 영화사 구안에서 배급하는 10여편을 포함해 모두 40편 정도를 개봉할 계획이다. 그중 한편도 손해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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