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뉴욕] 톰 포드, 좀 지저분하면 안되냐?
2010-01-13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톰 포드가 각본과 연출을 맡고, 콜린 퍼스가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관심을 모은 <싱글맨>이 최근 뉴욕과 LA 등지에서 한정 개봉됐다. 1964년작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자동차 사고로 연인을 잃은 대학교수 조지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톰 포드의 패셔너블한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솔직한 캐릭터들이다. 특히 콜린 퍼스는 대사 없이도 캐릭터가 느끼는 허무함과 외로움,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뉴욕의 클리어뷰 첼시 극장에서 <싱글맨>을 관람하고 나오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이와 직업을 물어봐도 될까.
=제임스 모스이고, 사진작가 겸 건축 검사원(building inspector)이다. 직업상 대부분의 근무시간에 뉴욕시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러 왔는지.
=영화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권유해서 보러 왔다. 처음에는 친구의 선택이 좀 의심스럽기도 했는데, 결과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왜 좋았나.
=정직해서다. 톰 포드는 스타일리스트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오픈한 사람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성향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만 포드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느낌과 과거를 말했다. 내제된 자신의 과거를 모두 보여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아닌가. “과거는 잊혀지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조차 아니다”(Past is not forgotten. Past is not even past)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톰 포드가 표현하는 기억은 유형적인 느낌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라든지, 중년 남자의 심리상태 등은 무척 사실적이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 수상을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크다. 콜린 퍼스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역할에 완전히 흡수된 듯했다. 원래 대화장면을 찍으려면 상대 연기자가 아니라 큰 카메라 앞에서 혼자 연기를 해야 하잖나. 그런데도 그의 반응은 너무 본능적이라 끌려들어가지 않기가 힘들었다.

-조지의 죽은 연인 짐 역의 매튜 굿이나 조지의 제자 케니 역의 니콜라스 홀트 등 일부 배우들이 영국인인데 미국인으로 나온다.
=영화를 볼 때 나이 때문인지 매너리즘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영화는 무척 진실돼 보였다. 이셔우드는 원래 생각이 많은 작가다. 그래서 1960년대 문화적 배경의 일부는 당시에 살지 않았던 관객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배우들은 연기를 잘 소화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나.
=톰 포드의 연출에 약간 클리셰적인 면이 없지 않다. 후각이나 촉각 등 오감을 모두 이용해 간결하지만 효과적인 표현방식이 좋았지만, 약간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가지런히 정돈돼 있고, 메이크업이나 모든 프로덕션 자체가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그런데 난 정돈된 것보다는 약간 지저분하고 거칠어 보이는 것이 좋다.

-극중 조지의 보이스 오버가 많은데 산만하지 않았나.
=일부에서는 보이스 오버를 안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데 <싱글맨>에선 적절했다. 조지가 보이스 오버를 하는 장면들은 주로 그의 내적인 갈등이나 회상인데, 이것이 현재인지, 과거를 생각하는지, 과거면 얼마나 오래된 기억인지 확실하지 않은 점들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본다. 자신의 정신이 녹음기 같아진다고 할까. 결말이 나지 않는 미로를 보는 느낌이었다.

-<싱글맨>을 좋게 봤다니 하는 질문인데, 톰 포드 영화를 또 볼 생각이 있나.
=대답하기 좀 힘들다. 개인적인 취향과 달라서 말이지. 원래 컬트나 호러영화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 영화는 뭔가 살균된 방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나와는 좀 안 맞는다. 모든 게 너무 완벽하다. 이런 이미지를 좋아하는 타깃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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