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가 만난 사람]
[김혜리가 만난 사람] MC 김제동
2010-01-18
글 : 김혜리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마이크를 든 슈퍼맨

예능인들은 우리가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연예인이다. 구르고 넘어지고 고함치고 춤추고, 사적인 약점을 농담의 소재로 삼아 쾌활하게 노출하는 그들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이 ‘언제나 맑음’을 연출하기 위해 카메라 뒤에 봉인해놓은 우울과 분노, 무거운 생각들의 가공할 부피를 상상하며 아찔해지곤 한다. MC 김제동은 희로애락의 절반만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유난히 여의치 않아 보이는 예능인이다. 그건 ‘분열’을 스스로 강렬히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제동은 웃음을 주는 중에도 농담에서 혹시 파생될지도 모르는 부작용에 신경을 쓰고, 의례적인 마무리 멘트도 허언(虛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티가 역력하다. 2인 MC 체제일 경우 그는 대개 여성적 역할을 수행한다. ‘진지함’은 웃음을 주는 사람들에게 매우 경계해서 다루어야 할 물건일 텐데, 신념과 의견을 자신의 무대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일은 김제동에게 불가능해 보인다. 한명의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갖는 견해도 거기 포함된다. 그는 행사를 열고 닫으며, 사이를 메우는 MC인 동시에 스스로 풀어놓을 ‘본론’을 갖고 있는 유창한 이야기꾼이며 대중 강사다. 김제동은 하릴없는 구식이기도 하다. 7년의 방송계 생활도 그를 별로 바꾸어놓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산에 올라 흥에 취하고 종이신문을 오려 스크랩하고 피부가 맞닿는 느낌이 살아 있는 대화를 할 때 가장 신명을 느끼는 남자다.

김제동은 고운, 어쩌면 지나치게 고운 체를 지녔다. 유보와 부연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예컨대 성을 상품화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 다음, 밖에 나가 미녀에게 눈길이 끌리는 자신을 마음에 걸려한다. 야구의 미덕을 예찬하다가도 배구나 축구가 상처받을까봐 걱정한다. 서기만 표기하면 단기가 섭섭할까봐 병기한다. 침묵도 표현에 포함시키고 무반응도 반응의 범주에 넣어 사고하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니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견해를 수집해 오류를 줄이려고 한다. 토론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연예인으로 뽑혀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 초대되는 반면, <일요일이 좋다-X맨>의 ‘당연하지’ 같은 상대를 일축하는 게임에 서툴렀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리얼리티 쇼와 말하는 순서가 공평히 배분되지 않는 ‘가로채기’ 형식의 토크쇼가 부상하면서 방송에서 그가 느꼈을 곤혹은 능히 짐작되는 바다.

2009년 12월 초부터 대학로에서 열린 ‘노 브레이크’ 토크 콘서트는 그런 김제동이 자신에게 깔아준 최선의 멍석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 저녁, 지하 소극장 통로에 줄을 선 사람들은 어떤 온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찌감치 매진된 이 공연의 표를 몇주 전에 예매하고 기다려왔을 남녀노소 관객은, 소곤소곤 킥킥거리며 주최쪽에서 마련한 ‘김제동하면 연상되는 단어’의 빙고 카드를 채우고 주제 토크 게시판에 자신의 경험담을 붙였다. 그날 주제는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작은 탄압’이었다. 150석 규모의 객석에 둘러싸인 야트막한 무대에, 김제동이 예의 약간 어깨가 솟은 구부정한 자세로 등장했다. 그리고 “아주 웃기거나 재미있는 공연은 아닙니다”라고 허두를 뗐다. 재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말은 진담이었지만 능청이기도 했다. 그는 노래하고 농담하고 책을 읽고 속삭이고 호소했다. 때로는 점점 빨라지는 생각의 속도를 말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해 문장의 끝에 이르면 숨차했다. 말하는 김제동의 음성은 메밀베개처럼 잘그락댔지만, 김광석의 <일어나>를 부를 때는 관악기의 리드마냥 처연한 바이브레이션을 냈다. 두 소리 사이에 걸쳐진 음역이 그가 가진 정서의 폭인 듯했다 마이크를 들고 세 방향의 객석을 향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부흥회의 전도사 같기도 했고 로커 같기도 했다. 아니, 안경을 벗은 클라크 켄트 같았다. 1시간 반으로 예정된 공연이 3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났을 때 김제동은 정말 외모조차 달라 보였다. 그는 크고 강했다.

김혜리: 엊그제 MBC 방송연예대상에 참석한 모습을 봤습니다. 시상이나 수상을 하지 않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박수를 쳐주시더군요. 속없다는 말도 들으실 법한데요.

김제동: 그런 재미있는 자리를 놓칠 이유가 있나요? 특히 지난해처럼 상에서 완벽히 자유로우면 더욱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웃음) 콘서트 특석을 잡은 기분이죠. 상은 권위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수를 쳐주느냐가 중요… 하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떠나서(웃음), 가야지요!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방송 일을 시작한 이래 3사 연예대상은 한번도 불참한 적이 없어요. 지난해는 토크 콘서트와 겹쳐서 KBS와 SBS 시상식은 가지 못했습니다. KBS는 연락이 없긴 했는데 아마 제 콘서트 일정을 고려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김혜리: 유재석씨가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쟤(김제동)는 웃고 있는데, 나는 마음이 아파요”라고 언급했을 때 김제동씨 얼굴이 확 붉어지시더라고요.

김제동: 무대 위에서 누가 제 얘기를 하면 그렇게 부끄럽습니다. (웃음) 유재석씨에게 진짜 고맙습니다. 저도 타봐서 압니다만(웃음) 대상을 타면 그 와중에 누굴 챙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지난해 SBS 연예대상 때에는 제가 <야심만만> 잘리고 SBS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석이 형이 시상식엔 네가 있어야 된다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자식아, 너 지금 뻘쭘하지? 어서 와” 하는 마음 너머 마음이 읽혔어요. 누가 다가와서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 같았어요.

관객은 비밀과 언어 공유할 때 일치감 느껴

김혜리: 살아오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말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김제동: 마이크를 잡은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권력을 상징하죠. 그래서 힘있는 자는 기자회견을 할 수 있고 그 자리에 마이크가 얼마나 모여드느냐가 사안의 중대성을 방증하기도 합니다. 힘이 없어 아무도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집회고, 그래도 안되면 추운 날씨에 고공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제가 사회를 볼 때는 대통령이 와도 순서가 아니면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습니다. 다스릴 사(司)자, 모임 회(會)자입니다. 사회자는 모임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잘 사용해야 하므로 정당한 권리행사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발언권을 주지 않습니다. 제게서 마이크를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관객뿐입니다.

김혜리: ‘노브레이크’ 토크 콘서트는 무대의 턱이 있는 둥 마는 둥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무대의 높이나 객석과의 거리가 천차만별일 텐데, 본인에게 편안한 무대는 어떤 형태입니까?

김제동: 사실 이런 무대가 제일 편합니다. 원래는 아예 턱을 없애자고 했는데 그래도 무대인데 조금이라도 높이자 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바로 관객을 볼 수 있고, 무대를 원형으로 감싼 계단식 객석에서 관객이 어떤 각도에서든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가 좋습니다. 사회자 한명이 고개를 들면 해결되는 쪽이 좋죠.

김혜리: 무대 공포증은 조금도 없습니까?

김제동: 왜요, 지금도 있습니다. 무대 오르기 전에 담배도 서너대씩 피우고 벌벌벌 떱니다. 그런데 막상 오르고 나면 어느 순간 공중부양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작두’에 한번 올라타면 그때부터는 저도 없고 아무도 없습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사회를 1년쯤 보면 객석의 사람이 보이고 거기서 1년이 더 지나면 한명 한명의 얼굴과 특성이 보입니다. 2년차가 넘으면 저 관객은 오늘 안 좋은 일이 있구나, 저 사람은 불러올리며 춤을 잘 추겠구나 짐작하는데 80, 90%는 맞아떨어집니다. 안 맞으면 또 그걸로 웃기는 겁니다. “집에 감나무 있어요?”라고 넘겨짚어서 없다 그러면 “있었으면 죽었습니다” 하는 거죠. (좌중 폭소)

김혜리: 어린이들이 모인 자리부터 공무원, 대학생 등 대하는 청중의 속성이 천차만별일 텐데, 그날 청중의 상태를 어떤 단서로 파악하시나요?

김제동: 행사의 속성을 알고 갈 때는 미리 조사합니다. 대학축제라면 2시간 정도 일찍 가서 운동장도 걸어보고 구내식당에서 밥도 먹고 벽보를 읽어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지난해, 지지난해에 걸쳐 제가 법제처, 국가정보원, 법원 등 정부부처를 거의 다 돈 것 같은데요. 그런 모임에 가면 그분들끼리 쓰는 용어를 섞어 씁니다. 의사 모임에 가면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대신 “BP(혈압)가 지금 얼마?”냐고 묻고, 군대에 가면 휴가증 이야기를 하죠. 비밀과 언어를 공유할 때 사람들은 일체감을 느끼거든요.

내게 마이크는 여의봉 같아

김혜리: 2006년 KBS 연예대상을 받은 무렵부터 토크 콘서트를 하고 싶어하셨다고요. 이같은 형식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은 거꾸로, 방송에서 본인이 봉인된 부분, 100% 발휘 못하는 능력이 있다고 느껴서 아닌가요?

김제동: 어제 <야심만만>을 함께했던 윤선주 PD가 공연에 왔다가 <야심만만>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연세대 앞 프린세스 모텔인가에 기거하면서 주머니에 늘 동대구역행 기차표를 넣고 다닐 땝니다. 언제 내려갈지 모른다는 마음이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온 방송을 죽 보시면 운이 좋았던 것이 모두 관객이 있었습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도 카메라가 숨어 있는 시스템이었고 <폭소클럽>도 스탠딩 코미디였죠. <야심만만>도 초기에는 관객이 콜로세움처럼 뒤로 둘러싸고 앉은 구조였습니다. 그것이 제게 엄청난 더하기 요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송하기 전 사회자 시절에 축적된 모든 것을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겁나는 것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그대들이 갈 길과 내 갈 길은 다르다’는 생각이었고 상경할 때 최대목표는 서울 대학가에서 사투리로 축제 사회를 보는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하다보니 방송 주류에 편입이 됐죠. 그 다음엔 방송 형식의 변화에 맞춰 진화해나가야 하는데 흔히 말하는 리얼 버라이어티건 비공개 녹화건 거기 맞는 적응력과 탄성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제 능력이 방송으로 인해 봉인됐다기보다는 제가 방송을 통해 확실히 보여줄 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김혜리: 무대 위에서 종종 마이크를 권총처럼 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김제동씨에게는 마이크가 어떤 상징 이전에 하나의 사물로서 갖는 의미도 클 것 같습니다. 유선/무선 마이크, 핀 마이크, 얼굴에 붙이는 마이크를 대하는 감각도 모두 다를 것 같고요.

김제동: 마이크를 보면 여의봉 같다고 생각합니다. 잡으면 힘이 나고, 쑥쑥 자라나기도 하고 좀 어수룩하게 보여야 할 때는 작게 만들어 숨길 수도 있고요. 뒤쪽 관객에게 빨리 가닿게 해주는 근두운이기도 하죠. 한편으로는 손오공 머리를 조이는 금고아처럼 끊임없이 저를 긴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전 손으로 잡는 마이크가 좋아요. 사진 찍을 때도 뭐 쥘 것 없나 찾죠. (웃음) 무대에서 마이크를 돌리는 건 그것이 제 손에 그만큼 붙어 있다는 확인이기도 해요. 마이크 앞부분과 뒷부분의 무게를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음향관계자들이 걱정하기 때문에- 마이크 비싸거든요- 떨어뜨린 적 없다고 미리 안심시킵니다.

김혜리: 마이크를 잡고 신들린 듯이 말하다가 급속히 힘이 빠지는 순간도 있겠죠?

김제동: 반응이 생각만큼 안 나오면 힘이 빠진다기보다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또 표내지 말아야 합니다. 관객을 웃기고자 했다는 의도 자체를 숨길 수 있어야 합니다. 못 웃긴 걸 사과하면서 웃길 수 있고요. 또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웃기는 비장의 이야기를 적어도 50~60가지는 갖고 있어야 합니다.

김혜리: 장금이가 비장한 감식초 같은 거군요?

김제동: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의 라면수프 같은 거죠. 뭘 장금이까지. 하하.

‘아는’ 돼지 못 먹겠어서 육식 끊어

김혜리: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간다투어’ 코너에 다섯 누님과 어머니가 출연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보니 어머니가 굉장히 눈물이 많으시더군요.

김제동: ‘간다투어’ 이틀 찍고 귀성하시면서 하루 전에 만난 카메라 감독님하고 KTX 차창에 손바닥을 맞대고 우시는데, 참…. (좌중 폭소) 무슨 <클래식>의 한 장면인 줄 알았습니다. (웃음) 그새 정이 드신 거죠. 지금도 엄마 성경책 옆 기도 목록에 그때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틀린 철자법으로 쓰여 있습니다. 어머님이 특별히 정이 많으시다기보다 한국에서 칠순 넘은 어머니들이 모두 한도 정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종교전쟁이 없는 이유도 가족이 종교여서인 것 같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도 지구에서 우주로 가져가야 할 유일한 제도는 한국의 가족제도라고 했다잖습니까?

김혜리: 누나들과 터울도 많이 지고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는데요. 누구랑 무엇을 하며 놀았나요?

김제동: 주로 밖에서 뛰어놀고 썰매 탔습니다. 여기 보시면 동그랗게 팬 흉터가 있죠?(무릎 근처를 보여준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인가 장난치다가 우산으로 찍혔습니다. 엄마도 바쁘고 누나들도 공장에 다닐 때라 곪는 걸 방치했는데 뒤늦게 병원에 가니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대구 큰 병원에서 절단은 안 해도 되겠다고 해서 거의 1년을 쉬며 대구 외숙모댁에서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깁스를 한 무거운 아이를 더운 날 업어 나르신 외숙모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오면 요강 하나와 책밖에 없었으니까요. 역사 전집 70권을 다 봤고, 사촌형들이 숨겨놓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건강 다이제스트>도 봤죠. 그때 촌아이가 받은 성적,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웃음)

김혜리: 어려서 도축하는 모습을 본 이후 육식을 못하시는 걸로 압니다. 굉장히 강력한 이미지였나봐요? 아니면 남의 고통에 이입하는 감수성이 발달했든가요.

김제동: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울음소리가 들리고 피가 흐릅니다. 많이 먹고 살찌라고 돼지를 거세하는 것도 봤고요. 하여튼 “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우리집 돼지가 아니라도 오가면서 보았던 ‘아는’ 돼지, ‘면식있는’ 돼지 아닙니까. (좌중 웃음) 사람이 일면식이 없다는 건 어진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더 어려서는 고기를 되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꼬마 때 쇠고기국 끓인다고 부뚜막에서 춤추다가 국 위에 엎어져 덴 흉터가 등에 있습니다. (폭소)

김혜리: 더욱 마음 아팠던 건 돼지 잡으면 학교 안 간다고 김제동씨가 떼썼더니 어머니가 “돼지 안 잡으면 어차피 너 학교 못 간다”고 하셨다는 일화였습니다. 어머님과 누님들이 모두 말씀이 조리있고 위트 넘친다는 인상입니다. 김제동씨의 재능이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김제동: 한 시간짜리 드라마를 보고 다섯 시간 정도 토론을 하니까요. (웃음) 그 정도면 작가 못지않은 열정이죠. 돌아가신 분 치고 천재 아닌 분, 전설 없는 분 없지만 저희 아버님도 그렇습니다. 엉덩이쪽에 북두칠성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뭐, 몽고반점이었을 가능이 높죠. (좌중 폭소) 어머님이 들려주시는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는 거의 위인전인데, 요는 어머님의 이야기 만들어내는 능력이 대단하시다는 거죠. 거기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아버님은 언어와 논리쪽에 좀 뛰어나셨던 것 같고, 어떤 사물을 보고 말로 끝장을 내고야 마는 점은 어머니와 누나들을 닮은 것 같습니다.

김혜리: 선생님이 장래 희망이었다고 하셨죠. 교사가 말로써 뜻을 전달하고 좌중을 휘어잡는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김제동: 사회자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 선생님의 그런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일어서서 동작을 곁들여)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서서 말을 하고, 칠판에 따닥따닥 글씨를 휘갈겨쓴 다음, “자 이건 시험에 나온다!” 하며 점을 탁 찍을 때 분필이 반으로 꺾이면서 &#52517; 날아가는 모습, 그러고는 돌아서서 마치 서부의 총잡이처럼 손가락에서 백묵가루를 ‘훅’ 불어내면서 창문에 기댈 때 너무나 멋있었습니다. 묘사가 아주 세세하지요? 하하.

김혜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에서 소질이 억눌리는데 문선대를 통해 소질을 계발한 특이한 경우입니다.

김제동: 특히 방위로 가서 그러긴 쉽지 않죠. (웃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데다 부양가족이 있어서 18개월 방위였습니다. 못 웃기면 두들겨 맞으면서 배웠습니다. 50번 웃기라고 했는데 30번 웃기면 20대 맞았고, 40회 웃기라고 했는데 30회밖에 못 웃기면 10분 동안 머리 박았습니다. 군악대와 문선대가 같이 있었는데, 연습하라고 하면 트럼펫 불고, 기타 치고, 드러머는 타이어 두들깁니다. 그런데 저희 사회자들은, 뭘 해야 됩니까? (좌중 폭소) 선임하사가 마이크랑 녹음기 주면서 주제를 하나주고 50분 동안 녹음을 하라고 했습니다. ‘독도’가 주제면 “러일전쟁 직후에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어쩌고저쩌고”해서 채웁니다.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개인 장비 수입!”하면 기타, 스피커, 드럼은 윤나도록 닦느라 애를 먹는데 우리는, 계속 이만 닦았습니다. (좌중 폭소)

노 전 대통령 노제 사회를 진행하면서…

김혜리: 저는 레크리에이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부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는 기분 탓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는 어떤 희열이 있습니까?

김제동: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희열이라기보다 나아가 사람들과 제가 하나가 되는 희열이에요.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레크리에이션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웃음으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예컨대 카드 섹션을 연습시켜 하는 건 별로지만, 웃음이 퍼지면 알아서 카드 섹션이 됩니다. 관객이 허리를 숙이고 박장대소할 때 객석이 하얘졌다 까매졌다 합니다. 또, 집중해서 경청할 때는 정적이 흐릅니다. 꼭 왁자지껄해야 하나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가 딴 데로 갑니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님 노제 때 몇 십만명이 모였는데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그 정적 속을 혼자 마이크를 들고 올라갔습니다.

김혜리: 김제동씨에게도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겠습니다.

김제동: 거기 모이신 분들은 이미 하나가 돼 있고 저만 섞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올라갔어요. 사회자로서 “슬프시죠. 힘드시죠. 화나시죠” 하는 말조차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본대로 하지 않고 여러분들을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하겠다, 마이크를 든 건 저지만 말씀은 여러분이 하신다는 생각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김혜리: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 구절구절 답사한 대목도 즉흥이었습니까?

김제동: 즉석에서 유서 구절을 건네받아 했습니다. 미리 써놓을 정신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전날까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7, 8kg이 단숨에 빠진 상태였거든요. 노제 사흘 전엔가 매니저가 장의위원회쪽 연락을 처음 받았습니다. 유족의 의사가 반영됐다는 말 한마디에 수락했습니다. 장례 전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전 출연진이 시청 앞 프라자 호텔에서 잤습니다. 호텔 창문으로 보는데 전경버스로 서울광장이 빙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본 원(圓) 중에 가장 흉측한 원이었습니다. 사실 모두에게 욕을 먹은 일이었습니다. 저쪽에서는 “역시 좌빨이구나” 하는 반응이었고 이쪽에서는 “무게감이 없다, 무슨 대학 축제도 아니고 일개 개그맨 따위가”라고 반대하는 십자포화였습니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아셨던 분이라면 웃음에 대해 그렇게 폄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식 직전 생각을 정리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5분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문득 너무 죄송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놈이라 간사해서 내 이미지, 앞길을 염려하는구나. 그 5분 동안은 철저히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와 비통함을 잊고 무례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저 온 마음을 다해 보내드리자는 딱 한 가지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노제가 끝나고 만장 지나가는 걸 본 다음, 딴 곳으로 가서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김혜리: 무대 뒤편에서 윤도현씨 품에 안겨 울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김제동: 한마디하고 내려와 쭈그리고 앉아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무대에서 울어버리면 진짜 선동이 되니 울면 안됩니다. 그게 힘들었습니다. 사실 고인을 두번 뵈었지만 그분은 절 모르실 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저랑 상관없는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잘 보고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웃음) 실은 당선자 시절 우리 어머니를 먼저 보셨습니다. 어머니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노 당선자 일행을 보고 막무가내로 다가가 “윤도현씨 아시죠? 윤도현이랑 친한 김제동이 엄마입니다” 하셨는데, 그분이 다 응대해주셨다고 합니다.

김혜리: 방송 출연 초기인 2003년 무렵 기사를 보면 방송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자신은 엄연히 MC라는 강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피력했습니다. 이 직업 안에서 어떤 경건함을 발견한 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제동: 한때 레크레이션 강사를 겜돌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명 정도가 모인 한 신입생 환영회 사회를 보러 갔는데 과대표가 “오늘의 겜돌이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안 나갔습니다. 당황한 과대표에게 겜돌이 찾아오시라, 난 사회자로 왔다고 했어요. 오늘의 사회자를 소개하겠다고 말을 고쳤습니다. 그래도 안 나갔습니다. 기싸움이었죠. ‘사회사’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썰렁한 분위기 속에 마침내 올라가서 사과를 드리고 “지금부터 제가 겜돌이와 사회사의 차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휘몰아쳤습니다. 몇명은 웃다가 토했습니다. (좌중 폭소) “아, 제발! 그만!” 비명도 지르고요. 한 시간 예정 행사를 두 시간 반 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직업을 갖든 그 직업이 어떻게 불릴까는 여러분들이 결정합니다. 어떤 직업도 비하마시고 여러분이 재단하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소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하고 큰절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물론 과대표가 저를 모욕하려고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알죠. ‘사회사’란 말이 무리란 것도 압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시절 대구 법원 앞에 즐비한 변호사 사무실을 후배들과 보면서 내가 반드시 저기 ‘사회사 김제동 사무실’을 내고 만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죄를 변호하고 구제하는 것도 위대하지만 우린 천명, 만명을 웃기는 사람들인데 저 정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무당의 작두, 택시 기사의 운전대, 설거지하는 어머니의 수세미 안에는 다 신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마이크를 잡으면 다 사회자입니다. 동네 이장님들이 가장 훌륭한 사회자입니다. 청중을 속속들이 알고 그분들이 알아듣는 적확한 단어와 명확한 정서로 말하는 것이 훌륭한 사회자 아닙니까.

신동엽·유재석·강호동이 웃기는 각각의 모양새

김혜리: MC로서 전범으로 삼는 인물이 있었습니까?

김제동: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MC 방우정 선생님이 계십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연구했습니다. 신동엽 형, 유재석 형, 강호동 형, 주병진 선배님, 모두 각자 사람을 웃기는 ‘모양새’가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제 안경을 어떻게 벗기느냐를 보면 다 나옵니다. 호동이 형은 (격한 말투로) “이야, 벗으면 진짜 웃길 텐데! 이렇게들 박수를 치는데 외면하시겠다고요?” 하면서 몰아갑니다. 경규 형은 옆발질을 하며 “벗어!” 합니다. 재석이 형은 자기가 먼저 벗습니다. 동엽이 형은 빙빙 주위를 돕니다. 저희는 ‘매 개그’라고 부르죠. (손을 설득하듯 움직이면서) “김제동씨는 못생겼다고 하는데 실제로 별로 안 그런 것 같아요. 안경 벗어도 안 웃길 것 같고요. 그렇다고 꼭 벗으시란 말씀은 아니고요. 하지만 굳이 벗으시겠다면 말리진 않아요.” 그분은 손 묶어놓으면 개그 못하는 분입니다. (좌중 폭소) 이런 모양새들로 선배님들을 다 표현할 순 없지만 다 배우고 수용해보자 싶었습니다.

김혜리: 애주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콘서트에서도 술 예찬론을 펴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만큼 즐겨 마시다 보면 술이 오히려 자기를 제어한다는 두려움이나 경계심이 들 때도 있을 텐데요.

김제동: 공연 기간 중에는 그래서 겸사겸사 끊고 있어요. 술을 먹으면 자꾸 아래로 침잠된다는 느낌도 있고 요즘은 알코올이 해독되는 데에 이틀 가까이 걸리니까 몸도 힘듭니다. 지금까지는 술과 밀착해서 블루스를 췄다면 이제는 포크댄스 정도를 추고 싶습니다. 하하.

김혜리: 방송에서도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스탠딩 코미디 <폭소클럽>, 토크쇼 <야심만만> 퀴즈쇼, <스타 골든벨>도 있고 <눈을 떠요>나 오지(奧地) 노인들에게 의료봉사를 실천한 <느낌표-산넘고 물건너> 같은 공익성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어떤 포맷이 가장 잘 맞았습니까?

김제동: 공익적인 예능이 보람은 크지요. 그런데 전 웃음이란 말 속에 공익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막말 개그’라는 말은 ‘음식 쓰레기’처럼 모순된 단어조합이 아닌가 합니다. <산넘고 물건너>처럼 어르신들과 지내는 프로그램이 좋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어른들 말씀 듣고, 일주일에 한번씩 제대로 된 밥 먹을 수 있잖아요.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분들의 잔잔한 일상에 이야깃거리를 제공해드릴 수 있었거든요. 저희가 가면 무조건 동네잔치를 하세요. 비용을 걱정했더니 제작진이 상품권으로 구입하실 수 있게 한다고 걱정 말라더군요. 어르신들은 방송국에서 가기 한달 전부터 즐거워하시고 간 다음 또 한달 동안 이야깃거리로 삼으시죠. 그것만으로도 보람있었습니다.

김혜리: 방송을 시작하고 첫 번째 소진된 느낌은 언제, 어떻게 왔습니까?

김제동: <X맨>을 하다가 <느낌표!-눈을 떠요>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 호동이 형, 재석이형과 함께하면서 좀더 배웠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재석이 형도 “공익오락쪽은 너만의 색깔이 있지만, 뛰어 노는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좋은 사회자가 될 수 있다”는 충고를 해주셨고요. 다시 시도해봐야겠죠. 몸개그는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시도를 하는데 잘 안됩니다. 위기는 항상 있었는데 그 저점이 1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혜리: <김제동의 황금나침반>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패널들이 조언을 하는 쇼였는데요. MC가 때로는 게스트에게 공격적이 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김제동씨 같은 스타일의 사회자에겐 힘든 기획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김제동: 손님 자체를 인정했습니다. 잘못된 것 같은 부분이 있으면 다른 의견을 이야기했고요. 사회자는 어떠한 경우라도 연민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국선변호사의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김혜리: 본방에 편성되진 못했지만 지난해 10월16일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 <오 마이 텐트>는 김제동이라는 달변형 MC가 지닌 다른 면을 보는 기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준묵 담당 PD의 말씀을 들어보니, 야외로 환경을 바꾸고, 김제동씨의 조심스런 성격을 살려서 손님에게서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토크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김제동: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표현입니다. 침묵시위라는 것도 있잖습니까? 저는 그 침묵마저 담길 수 있는 방송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제 스스로 주인공이 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도 강가에서 아이들 노는 것 보면서 한 시간 반 동안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연출자도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하고, 없으면 말할 필요없다고 하시더군요.

김혜리: 그러나 이른바 ‘방송분량’의 압박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요?

김제동: 그걸 많이 고민했는데, 여백의 미를 최대한 활용했던 방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쉬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저는 밤 12시, 1시대에 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혜리: 좀 엉뚱하지만 ‘경상도적인 유머’가 있다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제동: 압축적이죠. 인터넷 유머에도 나오지만 “할머니, TV가 안 보이니까 머리 좀 치워주실래요?”를 “할매, 쫌!”이라고 합니다. (웃음) “할머니 진짜 멀리 오셨지요? 저희들이 찾아뵈었어야 하는데…”라는 말도 길게 안 하고 “할맨교?” 이럽니다. 대구, 경북은 처음에는 잘 안 열지만 한번 열면 많이 웃습니다. 가족 정서가 아주 강하죠. 끈끈하고, 아는 사람이 하면 많이 웃어주고 모르는 사람이 하면 “치아라!”합니다. (웃음)

김혜리: 김제동씨의 진행을 보면 여성적이라고 느낍니다. 옆에 앉은 사람과 스킨십도 많고 말하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친절하게 배려하는 진행으로는 유재석씨가 꼽히지만, 그분은 깍듯한 쪽인데 김제동씨는 자기 속내를 많이 열어 보이는 쪽입니다.

김제동: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정에 굶주려서. (웃음) <야심만만>은 여성 출연자를 항상 제 옆에 앉혔습니다. 그러다보니 편해지면 저도 모르게 툭 치거나 하는 움직임이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저를 먼저 엽니다. 물론 다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요. 제 것부터 털어놓아 스스로 밑으로 내려간 다음 남들에게 “내려와볼래? 괜찮거든?” 하는 겁니다. 남들부터 먼저 내려가라고 하면 나락에 떨어뜨리는 거지만, 저부터 내려가면 동행이 되거든요.

내겐 끊임없이 묻고 풍자할 권리가 있다

김혜리: 웃음 주시는 분한테 이상한 이야기지만, 김제동씨를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둠을 알기에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김제동: 요즘 좀 밝아진 게 이 지경입니다. 비관적은 아닌데, 기본 성향이 아주 밝고 쾌활한 쪽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일이 생기면 능력을 넘어선 혜택이라고 여기고 부정적 일이 일어나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진 사람은 누구나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저는 과대포장돼 있습니다. 한데 때론 그것이 힘도 됩니다. “산에 업히러 간다”는 말을 자주 하다보니 등산객들도 제가 산을 잘 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르는 도중 섣불리 쉬질 못합니다. (웃음) 책도 많이 읽는다고들 하시니, 곱절로 읽으려고 애쓰게 됩니다. 짐이란 무겁지만 하체를 튼튼하게 합니다. 소수자적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버지 일찍 여읜 것도 그렇고 육남매 막내로 자란 사람이 제 또래에 흔치 않죠. 제 나이에 할아버지가 된 사람도 흔치 않고요(그의 큰조카가 딸을 낳았다). 시각 자체는 확실히 남들과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김혜리: 지난해 5년간 진행한 <스타 골든벨> 하차가 정권의 입김 때문 아니냐는 논란으로 시끄러웠습니다. 하차 자체의 충격 못지않게 그 사건으로 말미암은 논란과 언론 보도로도 큰 부담을 안았을 듯합니다.

김제동: 그 상황의 주체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주체에게 왜 그랬냐고 질문이 가야 맞습니다. 객체인 저는 할 말이 없고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릅니다.

김혜리: 그러나 본인이 명확히 아는 진실의 범위를 건드리는 말도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 사설에 “김제동씨의 유명세가 5년간 올라가면서 제작진과 관계가 부드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인용됐습니다.

김제동: 정말 그랬다면 <스타 골든벨> 작가들이 왜 토크 콘서트를 보러 왔겠습니까. 인간관계에 대한 그와 같은 언급은, 적어도 직접 제게 물어보시고 나서야 하셨어야 합니다. <100분 토론>에 나오신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제동씨 때문에 우리도 재보선에서 표 손해 많이 봤다”는 발언을 하셨는데, 행위 주체를 저라고 했으면, 제가 한 행위를 적시하고 나서 그 결과를 말씀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의 어떤 행위 때문에 표를 잃었는지를 밝혀야 정상적이죠. 제가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어느 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한 적도 없는데, 자꾸 색채를 덧씌워가기 시작하면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감 중에 “이념적 편향이 눈에 띄는 사람은 제작진이 사회자 고를 때 부담스럽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왔고 KBS 사장이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오히려 거기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이념적 편향을 띤 것으로 보였다면 그건 제 실수입니다. 다만, 제가 한 어떤 행위에 편향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에 헌화하지 않은 사람이 현 정부 인사 중에 있습니까? 공인으로서 의견의 표출에 대해 가져야 할 신중성을 말씀하신다면 경청하겠습니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표하는 데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또한 제가 믿은 것이 옳지 않다고 검증되면 언제든 사과할 자세도 되어 있습니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위원 등 이번 일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하신 정치인, 언론인들이 한번 토크 콘서트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홍정욱 의원은 성향이 다르다고 그 사람을 방송에서 내친다면 촌스런 정권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옹호해주신 건 고맙지만 ‘촌스럽다’는 단어는 그런데 붙이면 안됩니다. ‘촌스러움’을 모독하면 안됩니다. 저는 현 정부가 잘되길 바라는 한 시민으로서, 끊임없이 묻고 풍자할 권리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일을 하는 한, 어느 집단이 힘을 쥐건 설령 제가 그 집단에 투표를 했다 하더라도,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겁니다. 제 가장 큰 이념은 웃음이고 그걸 포기하면 저는 끝입니다. 그것을 비판이고 반정부라고 말한다면 죽을 때까지 비판적이고 반정부적일 겁니다.

김혜리: YB, 김C 등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과 매우 친하고 프로그램에도 내레이션, 게스트 등으로 함께 출연하는 일이 잦습니다. 여기에 단점은 없을까요?

김제동: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이승엽 선수만 해도 그만 팔아먹으라는 말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한 사람들끼리 방송을 하면 아주 유대가 없는 사람들보다 편하고, 특히 예능의 경우 훨씬 잘 흘러갑니다. (웃음)

야구는 가족적인 스포츠라 매력적

김혜리: 이승엽 선수와 관계를 보면 좋은 친구, 어려울 때 날 알아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 이상의 유대가 보입니다. 경상도 남자들끼리 미주알고주알 관계를 정의하고 만나진 않으시겠지만, 서로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면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무엇인가요?

김제동: 이승엽 선수를 가리켜 “제 인생의 영원한 4번 타자”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그 말도 후회합니다. 야구를 하든 야구를 하지 않든 그냥 이승엽으로 충분합니다. 그럴 경우 ‘4번’이란 말은 소중하다는 의미의 상징이 되겠죠.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건, 글쎄요. 뭘 해도 호적수입니다. 당구를 쳐도 3승2패, 장기를 둬도 3:2, 같이 있으면 수다떨고 즐겁습니다.

김혜리: 소중하다보면 상처도 받지 않습니까?

김제동: 싸운 적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라시면, 아무리 친한 동생이지만 주위 사람에게 소개시켜준 뒤 저보다 더 친해보이면 약간 샘납니다. (웃음) 서울에선 매번 집 앞에 와 있고 나오라고 채근하던 사람이 대구 가면 운동하는 후배들 만나느라 전화가 뜸합니다. 예전에는 그럼 서운했는데 요즘은 제가 먼저 전화 걸어 타박합니다. 그럼 (이승엽 목소리로) “아, 형, 인생이 다 그런 거야” 합니다. 뭐, 저도 가족 생기면 거들떠나 보겠습니까? 하하.

김혜리: 기본적으로 야구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제동: 야구는 인간과 공이 유일하게 경쟁하는 스포츠입니다. 축구도 공이 골대에 들어가면 득점, 배구도 코트 라인 안에 공이 떨어지면 득점, 미식축구 역시 공만 들어가도 점수는 됩니다. 그러나 야구는 홈에서 인간과 공이 다퉈 인간이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가족적입니다. 포수는 안방마님, 투수가 아빠라면 핫 코너 3루는 궂은일하는 장남입니다. 1루수는 막내, 중간에서 잘 연결하는 유격수는 며느리입니다. 외야수들은 장성에서 해외 내보낸 애들입니다. 가끔씩 연락오고 명절돼서 한회 종료하면 집에 모이죠. (웃음)

김혜리: 김C가 김제동씨더러 “책에 너무 매여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록’도 갖고 계시는데요. 무대에서 경구, 아포리즘을 쓸 때 얻는 혜택과 결함은 무엇입니까?

김제동: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선도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드는 순간 격언이나 명언은 그 가치를 상실합니다.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이 구절이 제겐 이렇게 와닿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또, 경구가 지나치게 무거워지거나 시의적절하지 않아 웃음과 섞이지 않으면 실패입니다.

김혜리: 2009년 성공회대에 편입했습니다. 김제동씨의 꿈인 대안학교 설립에 필요한 바탕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동기를 밝혔는데요. 특히 어떤 커리큘럼이나 교수진에 끌렸습니까?

김제동: 신영복, 김창남 선생님도 계시고요. 이력으로서 학력보다 배우는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 이력은 전문대 졸업으로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자주 못 나가고 있지만 얼핏얼핏 배우고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평상에서 학생들과 자장면 시켜먹고, 그 모든 것이 김C 형이 말한 책에 얽매이지 않는 뭔가를 갖고 싶은 마음의 발로입니다. 지하철로 통학하는 시간에 얻는 단상들도 많습니다.

큰 매형의 죽음과 “철사 사온나”

김혜리: 토크 콘서트를 시작하면서 “술 취해서 횡설수설도 해보고, 환불도 해보고 돌도 맞아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저도 관람했지만 혹시 한달이 지난 지금, 방송에선 못하는 내용을 더 해볼걸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김제동: 그래서 어제(12월30일)부터 조지 칼린이라는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언을 인용하면서 정치와 종교를 슬슬 건드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치문제는 첫 공연부터 조금씩 건드렸고요. 용산참사 협상 타결에 대해서는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충분한 해결이 아니겠지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건 잘된 일이니까요. 종교도 예컨대 예수님을 비판하진 않아도 교회를 비판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일이니까요.

김혜리: 죽음이 많았던 지난해였습니다. 막내들은 부모님과 지내는 시간도 가장 짧고 형제들을 여의면서 혼자 남겨질 처지라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을 것 같습니다.

김제동: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를 여읜 뒤, 제가 인지한 첫 죽음은 큰 매형의 죽음이었습니다. 대우조선 근로자로 근무하시다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찾아온 사람이 보상금을 탁 던지면서 “합의를 보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했던 광경이 어린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장지에서 그 돈 봉투를 제 가슴에 꼭 품고 있었죠. 매형은 집안에 남자가 아무도 없는 제게 썰매를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날아갈 듯 기뻤죠. 제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동적 한마디는 “철사 사 온나!”입니다. 그 다음 맞은 죽음이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제 일의 숙명은 죽음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해가 흐르고 나면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다른 방식으로 추모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신 농담을 모아서 영상으로 대화해보는 방식도 있을 거고요. 김광석 추모 콘서트는 이미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웃음에 대해 관대해져야 그 사회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追伸 지난해 10월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됐으나 정규 편성되지 못한 <오 마이 텐트>의 조준묵 PD는 MC 김제동의 배려심과 수줍음을 살려, 야외로 나온 게스트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의도를 설명한다. 조 PD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솔깃한 대목이 있었다. 상대가 채식만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PD는 김제동의 집 근처 방배동 곱창집으로 첫 만남의 장소를 정했고 김제동은 선선히 응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주인아주머니가 김제동 앞에 된장찌개부터 내놓았을 때에야 조 PD는 그의 사려를 알아차렸다고 했다. 만약 <오 마이 텐트>의 제작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MC가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그의 성품이 만들어내는 공기가 중요한 토크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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