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최후의 승리까지 한뼘 더 필요해
2010-01-14
디지털 액터 연기에서 발군의 성취 거둔 <아바타>, 하지만 더 많은 것이 가능하리니

현실을 대체한 완벽한 버추얼 리얼리티를 창조하고자 한 욕망은 사실 예술가들의 오랜 꿈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중에 안드레아 포초가 있다. 그가 로마 산 이냐치오 교회에 그린 천장화(天障畵) <신의 불같은 사랑을 전도하는 예수회>(그림1)는 대기원근법, 콘트라스트, 오클루전(occlusion) 등 입체요인들을 총동원하여 2차원 평면 캔버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현존하는 최고의 영상기술을 이용해 <아바타>를 제작했듯이 포초는 당시 최신판 기술인 투시도법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기독교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화한 버추얼 리얼리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당대인들에게 강력한 몰입과 환각의 신세계를 열고자 한 욕망에 사로잡혔다는 점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현대에 다시 태어난 포초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의 버추얼 리얼리티인 판도라 행성을 재현하기 위해 선택한 기술방법은 입체영화와 디지털 액터다. 그러나 입체영화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힐 거라는 세간의 기대와 달리 두 가지의 기술이 이룩한 결과는 각각 엇갈린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통해 개척한 전대미답의 기술 영토는 입체영화 자체라기보다 모션 캡처와 CG에 기반한 디지털 액터 분야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결과물이면 머지않아 실사배우를 대체한 디지털 액터가 등장하여 마치 진짜 배우의 연기인 양 관객을 속일 수 있을 것도 같다. 또한 ‘판도라’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매트 페인팅, 모델링, 텍스처링, VFX 등의 각종 CG 테크닉 역시 현존하는 기술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각피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그러나 입체영화로서 <아바타>의 성과는 우리의 속단과 달리 조금은 다른 지점에 있는 듯하다. <아바타>의 경우 입체영화의 독자적인 영상문법을 고민하기보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관습적으로 쓰는 영상문법과 화면구성을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이다. 멀티 카메라를 통한 <아바타>의 복잡한 영상구성이나 정신없이 빠른 화면 전개는 마이클 베이의 블록버스터에서 봤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입체영상을 습득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제약을 극복하거나 오히려 역으로 입체영상만이 갖는 독특한 성질을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드물다. 특히 블록버스터 특유의 빠른 편집으로 이루어진 시퀀스들은 입체감 자체의 효과를 반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입체영화에서 빠른 편집은 관람객에게 어지러움을 유발한다. <아바타> 역시 이 난제를 극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입체연출의 기술영역은 우선 입체감의 양을 화면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입체의 물리적인 양은 전문용어로 패럴랙스(Parallax)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패럴랙스가 크면 <블러디 발렌타인>처럼 관객의 두통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입체영화가 될 확률이 높다. 이와 비교할 때 제임스 카메론은 적어도 관람객이 느낄 아찔한 두통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패럴랙스를 최소한으로 유지해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입체연출을 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실사촬영을 기반으로 한 입체영화의 패럴랙스는 기술진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과도하게 습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바타> 역시 실사촬영에 기반한 숏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과도한 패럴랙스를 발생한다. 반면 CG 혹은 합성 기반의 숏들은 숏 안에 담아내는 피사체 영역을 몇개의 중층 레이어로 분리하여 패럴랙스를 하나하나 세세하게 조절했다. 즉 CG와 합성기술에 기반해 입체효과를 습득하는 방식이 <아바타>가 일반 2D영화 문법을 고수하면서 유발되는 맹점들을 보완하는 구조라 말할 수 있다.

입체영화의 촬영기술 중에는 ‘0점 지정’이란 것이 있다. 입체영화가 스크린에 상영이 되면 0점을 기준으로 0점 뒤에 있는 피사체는 들어가 보이고 앞에 있는 피사체는 스크린 앞으로 돌출되어 보인다(그림2). 그만큼 ‘0점 지정’은 무척 중요하다. 최근의 입체영화 촬영의 트렌드는 가능하면 피사체가 안으로 들어가 보이는 것처럼 0점을 지정하는 것이다. <아바타>에는 최근의 트렌드처럼 0점을 카메라 근처로 지정하여 피사체를 안으로 들어가 보이게끔 처리한 숏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0점을 두 인물 사이에 두거나 전경-중경-후경의 영상 배치구성에서 중경에 둔 숏도 꽤 있었다. 이 경우 전경에 있는 피사체들은 전부 돌출되게 된다. 이런 숏 디자인의 문제는 스크린을 하나의 창으로 인식해 마치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형태를 만들어 관객의 자연스런 인지과정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인지과정의 혼선은 결국 시각피로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아바타>의 경우 보수적인 패럴랙스 방식의 입체연출로 시각피로를 줄이려고 했지만, 몇몇 숏들은 위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야기, 무엇보다 아쉬운

마지막으로 아쉬운 것은 역시 이야기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에 걸맞은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인류학자들과 많은 토론을 거듭하고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나 마거릿 미드의 <세 미개사회의 성과 기질> 같은 인류학의 중요한 성과들을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혹은 지난한 제작 기간 동안 몇 개월은 직접 아프리카나 태평양의 소국을 방문하여 원주민의 전통문화나 풍습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면 <아바타>의 텍스트가 훨씬 더 두터워지지 않았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이러한 가정이 실제로 옮겨졌다면 <아바타>의 이야기는 테크놀로지라는 폭주기관차에 실리면서도 지금의 평면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좀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이야기 수준에 도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바타>는 입체영화의 미학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스토리의 미흡함으로 인해 제임스 카메론의 절실한 욕망과는 별개로 절반의 성공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가 현 시점의 영화산업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우리 시대의 ‘포초’라는 사실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입체영화, 디지털 액터, 수정주의 서부극, 생태주의라는 다채로운 수단들을 칵테일처럼 섞어 묘사한 버추얼 리얼리티의 광활한 영토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목격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보다도 더 강력한 몰입과 환각을 제시한 ‘세컨드라이프’류의 메타버스 서비스, 밤늦도록 불이 밝힌 PC방에서 남녀노소를 버추얼 리얼리티의 세계로 인도하는 MMORPG, FPS 게임을 만든 강력한 ‘포초’들과 싸움에서 그가 최후의 승리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최양현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입체영화 제작기술을 공부했다.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진행한 3D시네마 제작기술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을 맡았으며 현재는 장편영화 연출을 준비 중이다.

글 최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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