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질투는 나의 힘>의 주인공 배종옥
2001-12-12
글 : 최수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4년 만인가요?” “아니, 10년 만이죠.” <깊은 슬픔>보다는 <걸어서 하늘까지>를 ‘본격적으로’ 했던 마지막 영화로 기억하는 배종옥에게, 요즘 촬영중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거기서 그녀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박성연은, 10년 만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질투는 나의 힘>은 스물일곱살짜리 대학원생 남자가 어느 유부남에게 애인을 뺏기고, 묘한 질투심에 잡지 편집장인 그 유부남 주위에 머무르면서 또 한명의 여자를 알게 되지만, 그녀 역시 그 때문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질투’의 이야기. 배종옥은 수의사 출신 사진기자인, 자유분방한 30대 여자 박성연을 연기한다. 서른일곱, 여전히 단단한 목소리와 눈매가 변함없는 배종옥에게, 그런 여잔 “지금까지 안 해본 역할”이다. 한참 만에 다시 하는 영화에다, 영 새로운 캐릭터까지, ‘긴장’되지만, 그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것. “해온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것들을 다 버리고 싶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바뀌었어요. 스탭들도 젊고, 밤샘촬영도 많고…. 밤신 하면 다 밤샘 촬영이에요. 딴 데도 그런가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영화데뷔, <젊은 날의 초상>(1990),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 <걸어서 하늘까지>(1992), 그리고 5년을 건너뛰어 <깊은 슬픔>. 이십대 중후반에는 비교적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가,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꾸준히 출연해온 데 비해 영화판에 뜸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무엇보다 내가 노출을 거부했으니까. TV 탤런트를 주로 하던 여배우들이 그때만 해도 노출까지 해가면서 영화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예의 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똑부러지게 이유를 댄다.

<질투는 나의 힘>은, 드라마 촬영이 많아 올해는 좀 쉴 생각에 한번 퇴짜를 놓았다가, “작품이 재밌고, 또 박성연이 재밌어서” 다시 받아들인 작품이란다. 맨손으로 강아지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것에서 웬만해선 남자와 내외를 하지 않으며, ‘아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런 집은 집도 아니라며 잠자리를 고정시키지 않는 여자 박성연은, 일견 희한한 인물 같지만 배종옥에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라고. “그런 여자가 어딨을까, 찾으면 찾기 어렵겠지만, 전 그런 여자 많이 봤어요. 30대를 맞아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정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할까, 해도 마땅치 않고 그렇게 갈등하는 여자들 많거든요.” 그녀가 흥미로워 그녀를 연기하게 됐지만, 한 가지, 머리를 감다 말고 벗은 상반신을 욕실 문 밖으로 내밀며 전화받으라고 하는 장면 만큼은 가슴 윗선으로 카메라 프레임의 제한을 요구했다. 그래서 약간 시나리오가 수정된 셈이지만, 그밖에 소소한 노출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수준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란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종옥은 야무진듯 하면서도, 싱거운 소리 잘하고 허풍도 잘 떤다. 냉소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의 박성연이 그 모습에서 어떻게 뽑혀나올까? 배우로선 인기 시트콤 고정 출연이 독도 되고, 약도 된다. 적어도 배종옥에겐 약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거짓말>에서 차마 삼키지 못한 속울음으로 보는 사람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것도 배종옥이었다. 신기하게도, 트로이카 같은 리스트에 속한 적 한번 없는 이 30대 여배우가 날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깊어진 모습으로 사람들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 이성강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에서 주인공 성우의 엄마 목소리로 배종옥은 예비 스크린 나들이를 한다. <질투는 나의 힘>으로 배종옥을 만나는 일은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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