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spot] 부지런히 ‘스토킹’한 교수의 사연
2010-01-21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다큐멘터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의 민환기 감독

민환기(42) 감독의 유년 시절. 영화보다 음악이 먼저였다. 새벽까지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DJ 전영혁과 성시완이 불러주는 리스트를 행복의 족보라고 믿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칼아츠에서 영화를 전공한 것도 “영화로 돈 벌어서 음악하고 싶어서”였단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1월14일 개봉)는 뮤지션을 꿈꿨던 영화감독이 내놓은 차선의 연주이기도 하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로 일하는 그가 시간을 쪼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이하 ‘소규모’)를 부지런히 스토킹한 사연을 들었다.

-‘소규모’의 오랜 팬인가.
=1집이랑 2집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흥미를 갖게 됐다. 1집이 성공했는데도 2집에서 다른 걸 시도하는 게 신선했다. 처음 만난 건 2007년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 시사회 뒤풀이 자리였다.

-이승영 감독에게 ‘소규모’를 추천하기도 했다던데.
=서정적이면서 뽕짝 분위기가 있는 음악이 비루한 젊음을 다룬 영화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지나가는 말로 제안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말 같이 작업하더라.

-직접 카메라를 들게 된 까닭이 궁금하다.
=<Don’t Look Back>을 보고 나서 밥 딜런의 노래가 더 좋아졌다. ‘소규모’는 학교 공연을 부탁하면서 다시 만났는데 그런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는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 첫 만남 때 눈치챘지만 은지와 요조 사이가 안 좋았다.

-멤버들의 반응은 어땠나.
=은지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다큐가 안 나올 것 같고, 그런데 원하는 대로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조는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 같고. 민홍은 일단 찍어보자, 뭐 우리가 손해볼 것 있겠냐 정도.

-다큐 속 캐릭터랑 똑같네. 촬영 때는 어땠나.
=은지는 가장 열려 있었다. 반대로 요조는 통제를 해서 더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민홍은 아티스트를 기대했는데, 일상인으로서의 계산이 보일 때는 실망도 했다. 물론 음악적인 선택에 있어서는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는 건강한 친구였지만.

-보기 전엔 밴드의 일상에 관한 소소한 스케치에 머물지 않을까 예상했다.
=초반에는 도망 다녔다. 카메라 보고 나가라고 하진 못하겠고, 화장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더라. 굳이 따라가진 않았다. 그 뒤로 한달쯤 지났나. 귀찮은지 내버려두더라. 카메라 의식하는 사람이 촌스러워지는 분위기가 된 거지.

-7개월 넘게 편집하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은 뭐였나.
=구성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은지와 요조의 갈등을 중심으로 편집했더니 너무 방송 다큐 같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자꾸 넣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냥 밴드 이야기만 하려니 지루하고. 그래서 밴드로 시작해서 은지라는 캐릭터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식으로 절충했다.

-은지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뭔가.
=불만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느리지만 한 걸음씩 가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저 밴드하는 어려움, 음악하는 즐거움만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사는 법이라고 해야 하나.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은지의 요조에 대한 감정은 그냥 질투가 아니다. 요조의 행동 또한 이기적이기보다 이해 가능한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시사회 때 멤버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은지는 말로는 싫다고 했는데 진짜인지 잘 모르겠고. 민홍은 자신이 나온 장면은 싫지만 은지가 잘 그려졌네, 했고. 반면 요조는 아주 싫어했다. 상영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요조 입장에선 설명이 부족해서 억울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감수해줘서 고맙다.

-선배 이충직 교수가 제작자로 크레딧을 올렸다.
=제작비를 댔으니까. 멤버들이 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창구였다. 맛집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 멤버들이 특히 좋아했다. 다만 술자리 장면 촬영하는데 말씀이 길어지셔서 편집 때 애먹었다.

-다큐 작업을 계속 할 계획인가.
=색다르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다. 아티스트들은 관객이 특별한 삶이라고 여기는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귀농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고. 최근에 사회적 기업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보다 이걸 해보니까 좋더라는 만족감으로 살더라. 그들을 다뤄보고 싶다. 겁 많은 요즘 젊은 친구들을 위로할 수도 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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