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재현하지만 체현되진 않는다
2010-01-21
글 : 송경원
<아바타>가 보여준 “나는 봅니다”로 회귀하는 희귀한 몰입의 기술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은 실재한다. 상상이란 언젠간 실행 가능할 현실의 계획표이며 현존하는 모든 정보의 재조합이다. 때문에 우리는 애초에 전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일찍이 제임스 카메론이 <어비스>에서 구현한 매끄러운 구체의 수중 창조물은 지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것이었지만 지각적으로는 사실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명과 물결의 패턴 같은 질감 정보가 세밀하게 조합되면서 수중 깊숙이 존재한다고 가정된 이 허구의 대상은 시각적으로 뚜렷한 사실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을 사실처럼 인식하도록 하는 근거 또한 우리가 이미 아는 물리법칙과 다양한 생물, 사물들에 관한 지각적 정보에서 출발한다. 자동차 디자인과 수중생물의 이미지를 결합했다는 판도라의 흥미로운 생물들은 새롭고 자극적이지만 ‘있을 법한’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글은 단 한번도 새로운 적이 없었다는 카메론 영화에 관한 평가도 아니고 할리우드영화가 지향하는 상업적 안정성에 관한 지적도 아니다. 감히 영화의 미래라는 평가를 듣는 <아바타>가 추구하는 상상적 리얼리티를 통해 영화와 리얼리즘에 관한 파편적 질문의 흔적을 추적해보고자 함이다.

‘3D’영화가 아니라, 3D‘영화’

다양하게 분화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아바타>의 수많은 생물들처럼 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 ‘영화란 무엇이다’라고 한마디로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사 초기부터 존재해온 뤼미에르의 광경들과 멜리에스의 환영이 달리는 평행선은 서로 영원히 교차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을 재현한다는 영화의 믿음 아래 서로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멜리에스가 지향한 영화의 상업적 그늘에서 할리우드가 선택한 길은 관객이 영화의 몰입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환영을 극대화하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었다. 영화가 재현하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환상이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축적한 일상의 경험에서 출발하며 그 보편성에 기대고 있다. 결국 재구축된 허구의 조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현실에서 비롯된 지각과 경험이다. 할리우드영화는 관객의 체험에 리얼리티라는 육체를 부여하기 위해 이같은 지각적 리얼리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완벽한 가상 리얼리티를 향해서 관객의 몰입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영화적 환영의 본령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가 입체영화를 진일보한 영역으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바타>가 진정한 3D영화의 시대를 구현했다는 대부분의 평가는 주로 이 영화가 3D기술 자체를 과시하는 ‘장난질’을 치지 않고, 3D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입체감을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기존의 3D영화와는 달리 관객이 지금 3D영화를 보고 있다는 ‘3D 소격효과’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 연출이 돋보였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캐롤>의 저메스키 감독이 3D의 입체감이 주는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카메라를 공간과 함께 훑는 것과 달리 비행생물 이크란을 타고 활공하는 장면에서 과감하게 컷을 나누고 적절한 심리묘사 숏을 활용했다는 점은 <아바타>가 선보인 자연스런 연출 중 하나다. 이것은 물론 <아바타>의 방점이 ‘3D’영화가 아니라, 3D‘영화’라는 적절한 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바타>의 ‘자연스러운 문법’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고전적인 영화문법에서 당연하고 빈번히 보여준 익숙한 연출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애당초 왜 입체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인가. 완벽한 환영의 구현을 통해 ‘내가 거기 있음’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3D영화가 1950년대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것은 당대의 3D기술이 여전히 몰입을 방해할 요소로 작동할 만큼 조악했다는 데 그 원인이 있었다. 이제는 조악함을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을 완성시킨 <아바타>는 어떻게 3D효과를 영화와 내러티브에 거부감없이 녹여낼까에 관한 고민은 있어도, 왜 3D영화인가에 대한 고민은 잊은 듯하다. 극도의 몰입과 완벽한 버추얼 리얼의 창조에 그 목적이 있다면 그것에 상응하는 독창적인 문법도 생각했어야 했다. <아바타>는 고전적인 영화문법을 자연스럽게 활용함으로써 화제가 된 3D기술이란 단지 리얼리티의 도구일 뿐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여전히 3D기술은 이 영화의 혹은 이 영화를 둘러싼 담론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진짜 같아도 영화일 뿐이라는 자각

여기서 현실의 재현에 대한 또 다른 한축인 뤼미에르의 흔적들을 떠올려보자. 할리우드가 극사실적인 표현으로 지각적 리얼리즘에 다가간다면 뤼미에르의 후예들은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에 입각하여 ‘그것이 거기에 있었음’을 부각한다. 고다르가 점프 컷으로 끊임없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 것처럼 영화에 빠져들지 않고 거리를 둔 채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환영으로서의 영화에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시키는 것이다. 디지털의 등장은 이같은 사진적 지시성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지만 사진적 영화의 생존은 디지털로 인해 위협받는 것만은 아니다. 지각적 리얼리즘의 욕망이 입체영화를 탄생시키려 한 것처럼 사진적 영화의 화두는 ‘그것이 거기에 있었음’을 어떻게 강화시키는가에 있다. 기술의 변화는 그것에 맞게 문법의 변형을 요구할 뿐 그 본령까지 훼손시킬 수는 없다. <퍼블릭 에너미>가 지금 그곳에 입회하는 카메라를 통해 체현방식으로서의 영화를 구현한 것처럼(<씨네21> 718호 ‘어떻게 디지털로 시네마를 제련하였나’) 문제는 항상 ‘어떤 기술’이 아니라 ‘어떤 연출’인가에 있다.

<아바타>의 3D 소격효과는 이전의 입체영화에 비해 줄어들었을지언정 여전히 남아 있고(<씨네21> 736호 ‘최후의 승리까지 한뼘 더 필요해’) 그나마 기술을 내러티브에 녹여낸 방식 또한 지극히 전통적인 것을 답습한다. 이모션 캡처, 퍼포먼스 캡처를 통한 디지털 액터의 완성을 이야기하지만 기존의 입체영화가 보여준 실제와의 불연속적이고 어색한 간극이 문제였던 것이지 배우가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이 혁명적인 사실은 될 수 없다. (실사가 아닌 디지털 액터가 그것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은 물론 놀라운 일이지만) 그것은 실사영화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에 지나지 않는다. <아바타>는 2D영화에서 무뎌진 공간의 깊이를 회복하여 관객에게 완벽한 가상의 리얼리티로 재현된 세계를 제공하지만, 관객이 <아바타>가 재현한 놀랄 만큼 세밀하고 매력적인 세계를 고스란히 체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인간 제이크가 눈을 뜨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나비족 제이크가 눈을 뜨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바타>는 지각 변화에 대한 영화고, 지각을 변화시키기 위한 선택에 관한 영화다”라는 카메론의 선언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아바타를 통한 자신의 경험을 ‘하늘의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우리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에이와’의 힘을 빌려 혼자 판도라의 세계로 넘어가버렸다. 인간과 나비족의 하이브리드 기술인 아바타가 제이크의 지각을 변화시켰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를 함께 그곳으로 데려가기엔 충분치 않았다. 완벽한 리얼리티를 추구했던 이 영화는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나는 영화를 봅니다’라는 묵직한 현실의 몸뚱이만을 남긴다. 뒤따라올 영화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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