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한식을 주제로 영화 한 편을 찍는다면 김치를 염두에 두게 마련이다. 우리 음식의 대표성은 여전히 김치로 모아지고, 이 영화는 거기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다. <식객>이 여러 시리즈를 거치면서 이제야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에 도달했다는 건 때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아쉬운 것은 그 김치가 독에서 맛있게 익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잘 해내고 있으며, 기존의 출연작과 다른 스타일인 진구의 연기도 따스하게 녹아든다. 성지루를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도 발효가 잘 되어 마치 좋은 참기름과 함께 잘 비벼낸 비빔밥처럼 향기롭다. 아쉬운 건 간이 입에 쩍쩍 붙지는 않는다. 김정은이 서해안에 가서 전통의 자염-불을 때서 만드는 전래 소금-까지 손수 만들었는데 말이다.
일본에서 오래 활약한 현대적 퓨전 요리사인 김정은, 누구나 다 아는 전통 음식의 달인 진구. 이번에는 두 사람의 ‘김치 전쟁’이다. 누가 더 맛있는 김치를 담그느냐가 승리를 결정짓는다. 예상대로 김정은은 현대적 기법을 동원한 김치를 선보여서 결승에 오르고, 진구는 토속 김치로 맞선다.
영화는 ‘이 세상의 가장 맛있는 음식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는 원작자 허영만 화백의 얘기를 화두로 삼아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얼개가 좀 경직되어 보인다. 비장의 에피소드도 칼칼하게 숙성된 것 같지는 않다. 발효와 숙성의 다채로운 얼굴들-똑같은 김치라도 어떻게 익히느냐에따라 천차만별 달라지는 맛-을 더 깊이 있게 조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감독은 맛의 기본기를 잘 아는 요리사라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소금 에피소드는 짭짤하고 구수해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소금은 모든 음식의 시작이고 끝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음식 속에 녹아 있을 뿐이다. 그건 엄마의 자식사랑과 같은 거라고 감독은 말한다. 감독은 감동의 소재로 모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정공법으로 레시피를 배합한다. 심지어 진구의 어머니는 소금밭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요즘 ‘대세’인 한식 세계화는 이 영화에서도 피해가지 않는다. 하지만 변죽만 울리다가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김치가 왜 한식 세계화의 첨병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하긴, 청와대조차 떡볶이의 딜레마에서 헤매고 있지 않은가.(정말 외국인들은 떡볶이를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반가운 얼굴도 좀 나온다. 이보희가 우리 김치와 한식의 명맥을 잇는 춘양각의 비운의 안주인을 연기한다. 음식평론가로 나오는 바가지 머리의 박길수가 주도하는 유머 코드도 짭짤한 반찬이다. 일찍이 <음식남녀>에서 보았던 활력있는 거대 주방의 속살도 카메라가 재치있게 훑으며, 원작자의 만화를 그대로 살린 크레디트 타이틀은 아이디어가 넘친다. 한 마디로 잘 차린 한정식 같은 영화다. 하지만 상다리가 휘어진다고 모든 요리가 맛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다들 안다. 딱 그만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