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과 마중이라는 서정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 공항은 번거롭고 구차스럽고 냄새 나는 커다란 터미널일 뿐이다. 외국의 공항에서 머리에 터번을 쓴 남자와 팝시클을 열 손가락에 다 묻힌 여자애 사이에 낀 채 벨트를 풀고 구두도 벗을 땐 평생 이런 수모는 다시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게다가 갈아 신어야 하는 슬리퍼의 조악함이란. 신발이라곤 평생 못 가져본 소수민족이 제 신발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그걸 만든 게 아닐까? 공항에서 파는 싸구려 스시의 맛은 또 어떻고. 도대체 연어에 뭘 바르면 그런 맛이 날까? 우레탄 도료? 유성니스? 아니면 타르? 외국 출장이 잦은 사람치고 공항과 보안 검색대, 비행기와 기내식에 앙심없는 사람 못 봤다.
<인 디 에어>(Up In The Air)의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그런 면에서 희귀한 ‘공항애호가’이다. 전세계를 돌며 각 기업의 임원진을 대신해 ‘해고’를 통보하는 몹쓸 직업을 가진 그는 1년 365일 중 단 45일을 집에서 보낸다. 연간 비행 누적 거리는 35만 마일(참고로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250만 마일이다). 곧 1천만 마일 달성을 눈앞에 둔 그의 특기는 각종 마일리지 적립과 골드카드 모으기, 그리고 짐싸기다. 라이언이 여행 가방을 꾸리는 모습은 순서가 정확하고 행동에 절도가 있으며 망설임없이 명쾌하다. 조깅화는 안쪽 깊숙이, 헤인즈 티셔츠는 세번 접어서 세장씩, 필요한 옷 몇 가지와 노트북은 제일 위쪽에. 일정이나 목적지에 상관없이 소지품은 늘 한결같고, 반드시 기내 반입이 가능한 트롤리만 사용한다. 공항 이용의 베테랑답게 짐을 찾느라 소비하는 시간을 못 견디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여행용 가방은 수수한 남색의 바퀴 달린 트롤리다. 한손으로 들 만큼 가볍고, 납작하니 간단하고, 바퀴가 뒤집어지거나 엉키지 않고 돌돌 잘도 굴러가는 게 꽤 실용적으로 보인다.
<인 디 에어>의 미국 개봉 포스터에는 세명의 주인공이 모두 등장한다. 조지 클루니와 베라 파미가, 안나 케드릭. 버전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항의 세 사람이 트롤리를 끌고 걸어가는 것, 다른 하나는 역시 공항의 세 사람이 트롤리 위에 걸터앉아 있는 것. 가방은 모두 미국 여행 가방 브랜드인 ‘트래블프로’ 제품이다. 영화에선 이 브랜드의 상징인 에펠탑 심벌이 자주 클로즈업된다. <인 디 에어>는 2009년 전미비평가협회의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상보다 더 적당한 상은 ‘최고의 PPL’ 부문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 영화 속 PPL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답이 나온다.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힐튼호텔, 허츠, 그리고 트래블프로. 영화가 끝난 뒤 조지 클루니보다 더 오래 생각나는 이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