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 이전에 남북문제에 관한 다른 아이템을 구상 중이었다고 들었다.
=예전에 보았던 어떤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터민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북한에서 탈출한 남자가 15년 동안 러시아를 떠돈다. 그러다가 남한으로 올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미국을 택하더라. 남한에서 이방인 취급받는 것보다 아예 모르는 나라에서 이방인 취급받는 게 낫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면서. 그리고 중국쪽 브로커를 통해 북에 있는 아내와 15년 만에 처음으로 통화한다. 같이 가자, 나와라. 아내는 거절한다. 오랫동안 믿어왔던 신념과 그곳에서의 삶을 한순간에 버릴 수 없다는 거다. 남편은 “너는 옛날에도 내 말을 안 듣더니 지금도 못한다고 하나”라고 대꾸한다. 마음이 아팠다. 같이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형제>의 엔딩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비약적인 해피엔딩일 수 있지만 내게는 그것 역시 슬픈 상황이다.
-다른 배우가 한규를 연기했더라면 코미디도 누아르도 아닌 식으로 어정쩡해졌을 수 있다. 송강호는 그 중간 지점 어디쯤을 절묘하게 잡아챈다.
=강호 선배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그 부분이다. 6년 전과 6년 뒤의 차이. 처음엔 6년 전을 훨씬 더 차갑게 가려고 했다. 촬영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6년 뒤의 밝은 아저씨 같은 모습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고, 결국 첫 부분의 차가움을 덜어내는 게 나을 것 같더라.
-남파 공작원 지원의 캐릭터를 잡는 데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했나.
=알다시피 동원씨가 남파 공작원이라기엔 적절하지 않은 외모다. (웃음) 공작원이라면 남들 눈에 가능한 한 띄지 않도록 평범해야 한다. 하지만 동원씨의 큰 키와 특별한 외모가 영화에 반드시 필요했다. <의형제> 이야기상 지원은 한번 보면 잊어버릴 수 없는 얼굴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새터민들을 취재할 때 지원이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친구가 눈에 띄었다. 함경도 출신에 군대를 제대한 지 얼마 안된 친구였다. 실제로 햄버거를 처음 먹고는 ‘생각보다 맛있다’고 했고, 군대의 기억을 아직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남한의 현실을 더 낯설어했고, 자존심도 무척 셌다. 그 친구의 특성들이 지원 캐릭터에 많이 들어갔다.
-극중 지원이 암호를 해독할 때 보는 책이 왜 톨스토이의 <부활>인가.
=1990년대 초반 남파 공작원들이 단파 라디오로 신호를 받고 지령을 해독할 때 실제로 <부활>을 활용한 경우가 있었다. <폭풍의 언덕>도 있었고. 재미있는 건 영화에서처럼 국정원에서 이 지령을 청취한다 하더라도 해독이 쉽지가 않다. ‘특정 출판사에서 나온 몇년도판 몇 번째 쇄의 <부활>’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집에서 서로를 끝없이 감시하고 의식해야 하는 두 인물 사이에선 성적(性的)이라고까지 할 만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그랬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두 남자가 결국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분명 갖고 있다.
-배우 고창석은 <영화는 영화다>의 봉 감독에 이어 <의형제>에서도 타잉 홍으로 나와 잊을 수 없는 웃음을 남긴다.
=장면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승낙해줘 정말 고마웠다. 한규가 로프에 묶인 채 타잉 홍과 대면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창석 선배가 베트남어 대사를 시작하는 순간 강호 선배가 웃음을 참지 못해 몇번이나 NG가 났다. (웃음)
-클라이맥스인 차례상 장면에서 정서적 충격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사실 대사가 길어지는 장면이 좀 부담스럽다. 관객이 지루해하거나 지칠까봐 신경 쓰인다. 한규와 지원의 감정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차례상 장면도 그랬다. 음악이 감정적으로 많이 들어갔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규가 지원에게 드러내는 일종의 육친애를 표현하기 위해 너무 닭살 돋지 않는 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두 작품을 끝냈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일단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인가, 그걸 어떤 태도로 말하고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차기작은.
=아직까지 잡힌 건 없다. <영화는 영화다>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드러내는 편이고, <의형제>는 조금 감추면서 가볍게 가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무겁고 비극적인 영화가 더 잘 맞는 것 같지만, <의형제>를 찍으면서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성향을 접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중간 지점쯤의 이야기로 다음 작품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