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철 영화들을 만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3월에 이어 시네마테크 부산 부설 부산아시아필름아카이브와 공동주최로 장철의 두 번째 회고전 ‘장철과 홍콩남아들 II’를 2월9일(월)부터 26일(금)까지 연다. 이번 두 번째 기획전에서는 <철기문>과 <차수> 등 지난 기획전에서 미처 만나지 못했던 장철 감독의 다채로운 세계를 담은 대표작들을 소개한다. 2월10일(수) 오후 7시30분 <철기문> 상영 뒤에는 오승욱 감독과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대담이 열려 이해를 돕는다.
이번 영화제는 왕우 주연의 <대자객>(1967)과 <외팔이>(1967), 강대위가 외팔이 역할을 이어받은 <외팔이> 3편 격의 <돌아온 외팔이>(1969), 적룡과 강대위를 비롯한 장철 사단의 멋진 남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13인의 무사>(1970), <쌍협>(1971), <소림오조>(1974) 등이 눈길을 끈다. 특히 타란티노의 <킬빌> 시리즈에 영향을 미친 이른바 장철의 후기세계 ‘베놈스 필름’들이 소개된다. 말하자면 장철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요약정리라 할 수 있다.
먼저 <대자객>과 <외팔이> 시리즈는 ‘신무협영화’라는 거대한 우산 아래 호금전의 반대편에서 장철 미학의 진수를 보여줬다. 신체의 고통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육체의 판타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것은 왕우를 특급 스타로 발돋움시킴과 동시에 당대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왕우는 장철 영화를 통해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는 무모하고 초인적인 비장미로 사랑받았다. 그리고 <외팔이>는 놀라운 흥행성적과 함께 홍콩영화산업에서 향후 10여년간 장철의 시대를 열게 해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를 통해 쇼 브러더스와 장철에게 첫 번째로 홍콩영화 흥행 10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안겨줬기에 그는 ‘백만 감독’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쌍협>(1971), <신외팔이>(1971), <소림오조>(1974), <소림사>(1976)는 왕우 이후 장철 사단의 대표배우가 된 적룡과 강대위 콤비의 활약이 빛나는 영화다. <복수>(1970), <자마>(1973) 같은 영화까지 포함하면 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장철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실질적인 전성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장면’이라 부를 만한 액션신이나 이전보다 난이도 높은 무술지도가 더욱 증가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두 번째 영화제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배우는 바로 부성이다. <소림오조>와 <소림사>에 적룡, 강대위 다음 비중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사조영웅전>(1977)의 주연을 맡은 그는 장철이 적룡과 강대위 다음으로 진관태와 더불어 키웠던(아니 그보다 더 애정을 쏟았던) 젊은 스타였다. 그들보다는 어리고 장난기가 많은 ‘소자’(小子) 느낌의 배우로 장철 영화에서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강대위와 함께 출연한 <붕우>(1974)로 아시아영화제 신인남우상을 수상했고 <방세옥과 홍희관>(1974)에서는 방세옥을 연기했다. 하지만 1983년 오토바이 사고로 채 서른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추억의 배우로는 이수현이 있다. 장철이 <쌍협> <자마> 등에 단역 출연시키며 발굴했던 ‘꽃미남’ 이수현도 적룡과 강대위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됐던 장철 사단의 새 얼굴이었다(<자마>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오우삼과의 인연이 훗날 <첩혈쌍웅>으로 이어졌다). 물론 비중은 적었지만 <수호전>(1972) 시리즈에서도 온몸이 새하얗고 워낙 수영실력이 뛰어나 유독 물속에서는 감히 따를 자가 없었던 인물 장순으로 출연했다.
<잔결>(1978)을 비롯해 <철기문>과 <차수>는 장철의 대표적인 후기작들이다. 1974년 쇼 브러더스를 떠난 장철은 대만에서 쇼 브러더스 스튜디오의 대만지사로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 저예산 무협영화 제작을 계속했다. 1977년에서 1982년까지 새로이 발굴한 다섯명의 배우 라망, 녹봉, 손건, 강생, 곽추를 매번 똑같이 데리고 1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각종 무술과 기계체조로 잘 훈련된 이들을 일명 ‘베놈스’(Venoms)라 불렀고 이들이 출연한 12편의 영화를 ‘베놈스 필름’이라고들 했다. 타란티노의 <킬빌>에 등장한 5인 암살단 ‘데들리 바이퍼스’에 영향을 준 <오독>(1978)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녹봉은 잘린 팔 대신 손가락과 주먹을 발사할 수 있는 기계손을 장착해 마치 사이보그처럼 살아가는데 베놈스 필름 특유의 육체 훼손이 극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배우는 이들 중 가장 선배인 곽추다. 1945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서커스단의 곡예사로 일하다 우연히 영화계에 입문했다. 오우삼의 <첩혈속집>(1992)에서 주윤발을 처치해야 하는 킬러지만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악당으로 출연했던 배우다. 이후 <007 네버 다이>에도 출연했고 프랑스로 건너 가 <늑대의 후예들> <사무라이> 같은 작품들의 무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이처럼 베놈스 필름을 끝으로 장철의 세계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물론 이후 동지화, 두옥명 같은 배우들을 새로 끌어들여 <대상해 1937>(1986), <과강>(1988) 등을 만들기도 했다. 동지화는 바로 주성치의 <쿵푸허슬>에서 돼지촌의 세 고수 중 조용하게 밀가루 반죽을 하다 오랑팔괘곤을 구사하던 의리의 아저씨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차수>가 나온 이듬해 <최가박당>(1982)이 등장하면서 홍콩영화계는 이미 전혀 다른 국면으로 진입했다. 무협지와 결별한 홍콩영화의 진정한 ‘현대’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