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별난 놈, 웃긴 놈, 무모한 놈들
2010-02-2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영화제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이웃집 좀비> 제작 분투기

<이웃집 좀비>가 나타났다.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출몰한 이 영화는 일종의 ‘물건’으로 알려졌다. 알고 보니 영화보다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더 물건이다. 오영두, 장윤정, 류훈, 홍영근, 영화제작집단 키노망고스틴의 멤버인 이들은 땀과 아이디어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라는 준비물만으로 주목받는 한 편의 장르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영화 <이웃집 좀비>의 악전고투, 명랑쾌활한 제작의 과정들을 들어보자.

유쾌하고 재기 발랄한 옴니버스영화 한편이 나왔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제작 조건상 쉽게 만들기 어려운 좀비영화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초저예산에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촬영되었는데 그걸 극복하는 아이디어가 빛난다는 평도 덧붙여졌다. 영화제를 거치며 소문이 퍼졌고 개봉까지 성사됐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걸 만든 사람들이 더 궁금해졌는데, 이 앙증맞은 좀비영화의 배후에는 오영두(36), 장윤정(37), 류훈(38), 홍영근(34)이라는 4인의 대책없는‘영화 좀비’들이 있었다. 영화제작집단 ‘키노 망고스틴’이다.

‘키노 망고스틴’ 너희는 누구냐?

숙주(?)는 오영두다. 장윤정이 그의 아내다. 둘은 영화현장에서 만났다. 오영두는 연출팀, 장윤정은 분장팀이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영화판의 말 못할 일을 겪은 나머지 실망감에 젖어 호주에 이민하여 2년 간 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시나리오를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하니, 다시 돌아오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오영두와 홍영근은 군대 1년간 선후임 관계다. 경주 출신으로 배우와 연출을 꿈꾸던 홍영근은 20대 후반 들어 모든 걸 접고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했고, 그때 그에게 보금자리를 잡아준 건 오영두, 장윤정이었다. 오영두와 류훈의 동행은 좀더 극적이다. 둘은 <텔미썸딩>을 할 때 연출부와 제작부로 만났다. 그러다 각자의 길을 갔고, 2000년대 초쯤이던가, 길거리에서 우연히“어 영두야, 어 훈이 형” 하며 만나 단편 작업을 같이 했다. 그러다 류훈이 선교활동가의 길을 걸으며 다시 못 보게 됐다. 류훈은 아프리카 현지인을 위해 집과 교회와 유치원을 지어주는 활동을 하며 아프리카와 한국을 오갔다. 그러다 2007년부터 영화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는데, 2008년 즈음인가 그 옛날 오영두를 만난 똑같은 길거리에서 같은 상황으로 또 만났다. “어 영두야, 어 훈이 형.” 점조직 키노 망고스틴은 이렇게 퍼져나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했고 <이웃집 좀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틈사이>
<도망가자>

오영두의 회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8년 6월. 어느 따스한 날이었다.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았다. 차를 마시며 훈이 형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영근도 평소처럼 별일 없어도 함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훈이 형은 카메라와 편집장비를 갖고 있다(그게 전 재산이다). 여기 배우도 있다(홍영근이다). 크지 않지만 우리 집을 세트장으로 쓸 수도 있다(오영두와 장윤정의 집이다). 메이크업에 특수분장까지 할 수 있는 스탭도 있다(장윤정이다). 연출, 배우, 세트, 분장까지 있는데 뭘 못할까. 그러자 우리 사이에서 두세 시간 만에 시놉시스가 7~8개 막 튀어나왔다. 우리가 우리끼리 흥분을 잘한다. 쉬는 마음으로 이틀씩 찍자, 셋이서 각자 2편씩 하면 되겠다, 12일이면 촬영이 다 끝나지 않겠나.” 그런데 12일이라고? <이웃집 좀비>는 완성하는 데 1년6개월이 걸렸다. 처음부터 좀비 옴니버스는 아니었다.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다 들어본 다음, 유일하게 투자를 논할 만한 자리에 있던 장윤정이 이렇게 결정해주었다. “좀비가 된 어머니 이야기가 가장 좋다. 좀비 이야기로 가자!” 망설임이 있을 리 없다. 키노 망고스틴 팀원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던가. “긍정과 수긍과 사과가 우주에서 가장 빠른 집단이다.” 다른 이야기도 전부 주인공을 좀비로 바꾸었다.

1대의 카메라, 2천만원의 곗돈으로 시작

4인이 한명당 20만원씩 출자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자는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지는 꼭 필요해서 구입한 조명기 몇대값이 몇 십만원을 훌쩍 넘어갈 때 이미 알게 됐다. 구원투수로 나선 건 역시 장윤정이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2년 가까이나 모아놓은 2천만원의 곗돈을 주저없이 영화에 밀어넣었다. 훗날 세어보니 믿을 수 없게도 그중 절반인 1천만원이 스탭과 배우들의 밥값과 술값으로 들어갔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잘 먹이고 보자. 최대한 편하게 해주자. 개런티는 못 챙겨주니까 먹을 거라도 풍부하게 주자. 그것만큼은 다른 현장 못지않았다”가 장윤정이 한 공식적인 대답이고, 오영두가 들려준 비공식적인 대답도 있다. “완전한 사육이지, 사육. 배우들이 힘들어하면 밥을 먹인다. 정신적으로 힘들어 피폐해지면 술을 먹인다.” 그렇게 해서 찍었는데도 자금이 모자라 후반작업을 위해서는 각자 다시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만원씩 보탰다. 지금은 영화 수익의 지분을 나눠줘야 할 사람만 스무명쯤 된다.

구상과 제작에는 몇 가지 수칙을 두었다. 각자의 다양한 기질을 발휘하여 옴니버스로 만든다. 촬영은 전부 오영두가 맡는다. 먼저 시나리오 쓰는 사람의 작품부터 무조건 들어가고 쓴 사람이 연출한다. 장소는 무조건 오영두와 장윤정의 옥수동 가정집으로 한정한다(이 원칙을 벗어난 건 네 번째 에피소드 <백신의 시대>뿐이다). 즉, 한정된 공간 안에서 찍되 그걸 다른 공간인 것처럼 매번 창조한다. 배우들은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하되 연출진도 주연과 조연에 가리지 않고 투입된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는 ‘좀비 바이러스 발생에서부터 그것이 물러나고 난 이후’라는 시간 순서를 따른다.

<백신의 시대>
<폐인 킬러>

내용에 관해서는 되도록 인과관계를 따지기로 했다. 좀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건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럼 왜 바이러스가 퍼졌는가.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와 비리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생물학을 전공한 류훈이 이 분야의 밝혀지지 않은 비리를 정말 많이 알고 있다고 장윤정이 귀띔한다. 제목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제목이 채택될 때의 상황만큼은 명확했다. 누군가 “<이웃집 좀비>”라고 처음 제안하자 다들 “뭐야, <이웃집 토토로>야”라며 거세게 핀잔을 놓았다. 이내 아이디어가 한 순번 돌고 나서 별 신통한 게 없음이 확인한 뒤에 다시 누가 “<이웃집 좀비>”라고 처음 말하는 것처럼 말하자 “어 그거 좋은데!” 하며 다들 처음 들은 것처럼 환호했다.

생활 속에서 건진 아이디어들

그리하여 완성된 여섯개의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틈 사이>. 각본, 연출 오영두. 일종의 프롤로그다. 집 안에 혼자 있는 남자가 집 안의 갖가지 틈 사이에서 출몰하는 형체없는 무언가에 물려 좀비가 되어간다. 바퀴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오영두의 공포감이 동기가 됐다. 홍영근이 주인공을 맡았고 1인극 내지는 무성영화의 분위기로 꿋꿋하게 전개된다. 두 번째 <도망가자>. 각본, 연출 오영두. 좀비로 살아가야 하는 남자,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인간 여자의 러브스토리다. 말하자면, 옥수동 <트와일라잇>. 오영두는 액션영화광인데, 이건 만들고 나니 러브스토리이자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근거는 있다. “격한 감정을 좋아하는데 이것도 실은 격한 상태 아닌가. 그들은 사랑 고백을 할 때조차 빠진 눈알을 붙들고 내 눈을 똑바로 보라고 한다.” 세 번째 <뼈를 깎는 사랑>. 각본, 연출 홍영근. 애초 시놉시스에서부터 거의 내용이 바뀌지 않고 살아남은 에피소드. 어느 헌신적인 딸이 좀비가 된 어머니를 위해 스스로 뼈를 깎고 피를 먹여 돌본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홍영근은 처음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멋진 액션영화를 꿈꾸었으나 이상하게도 효심 가득한 ‘효자 무비’(?)가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시나리오를 고민할 때 자식들의 존속살인 소식이 뉴스에 많이 나왔는데 그게 동기가 된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를 본 그의 부모님은 외마디 극찬을 남기셨다. “역시 내 아들 영근이다.”

네 번째 <백신의 시대>. 각본, 연출 류훈. 평소 휴머니스트인 류훈이 어쩌다보니 맡게 된 액션 에피소드. 백신의 주범이 된 한 과학자가 바이러스 사태를 해결하려 하면서 그를 죽이러 온 괴한과 싸우게 되고 거기에 경찰까지 들이닥친다. 촬영장소로 빌딩 옥상이 필요하여 빌딩 관리업체 직원이자 배우 지망생을 캐스팅하는, 그러니까 배우도 얻고 장소도 얻는 일거양득의 지략을 발휘하여 촬영에 들어갔으나, 서로 입을 맞춘 관리업체 직원 대신에 촬영 사실을 모르던 건물주가 돌연 등장하는 바람에 모두들 한쪽 창고로 숨어들어야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스탭인지 배우인지가 알 수없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꼭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사람들 같지 않아?” 힘들게 찍었지만 창조력은 배가 됐다. 사람이 공중에 떠야 하는 와이어가 필요한 장면이 있었는데, 철물점에서 사온 앵글과 마네킹만으로 표현해내는 대체 창조력을 발휘했다.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인력과 규모를 자랑한다.

다섯 번째 <그 이후… 미안해요>. 각본, 연출 장윤정. 좀비 바이러스가 치료된 이후의 세상. 좀비였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힘들게 산다.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 복수를 외치며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때 공교롭게도 과거에 좀비였던 강도가 들이닥친다. “대외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에피소드이며, 사회적인 이야기를 여성의 감수성으로 잘 매듭지었다”는 팀 내의 자평을 받고 있다. 여섯 번째 <폐인 킬러>. 각본, 연출 홍영근. 마감에 쫓기는 한 남자, 아니 어떤 강박에 시달리는 좀비의 짧은 몇분간이며 일종의 에필로그다.

“교양보다 예능에 가까운 영화로 봐주오”

우리 이웃에 사는 좀비들의 여섯 가지 모습을 보여준 <이웃집 좀비>는 처음에는 쉬워 보였으나 도중에는 무모해졌고 그러다 놀랍게도 완성해내고야 만 노력의 프로젝트다. 어느 따뜻했던 날에 가벼운 동기(우리 쉬는 마음으로 한번 해볼까?)와 착오에 가까운 판단(12일이면 되겠지)과 과감한 주택자금에서 영화자본으로의 전환(곗돈 2천만원)과 주민들의 따뜻함(시끄러워도 괜찮아!)과 서로 미루지 않고 이 없으면 잇몸으로 함께 버틴다는 스탭들의 협동심으로 마침내 완성해낸 영화 <이웃집 좀비>.

<이웃집 좀비>의 촬영현장
<이웃집 좀비>의 촬영현장

지금 관객을 만나기를 부푼 가슴으로 기다리는 이 영화에 관해 놀랄 만큼 비범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하지만 귀엽고 재치있고 무엇보다 열정이 넘치는, 선하고 소박한 영화다. 그걸 만든 사람들은 더 선하고 소박하다. 좀비가 옆집에 살아도 편견없이 대하는 세상을 꿈꾸고, 그런 혐오를 혐오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이 영화에 관하여 말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명의 멤버 중에서 가장 진지해 “문어체로 쓰면 안 이상한 표현을 꼭 구어체로 써서 주위 사람의 손발을 오그라뜨린다”는 평가를 받는 홍영근이 “현대인의 강박적인 모습…”이라고 힘주어 말할 때, 나머지 셋이 고개를 돌리고 살짝 웃는다. 그들이 동료의 말을 비웃거나 틀렸다고 흉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러다 너무 거창해 보이면 어떻게 해, 라고 쑥스러워하며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웃집 좀비>를 교양보다 예능에 가까운 영화라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예능은 무조건 재미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오영두)”는 말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키노 망고스틴의 <이웃집 좀비> 제작 성공담 역시 그들 스스로 즐겼기 때문에 오로지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인 첫 번째와 여섯 번째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순서대로 말하면, 노처녀들이 좋아할 만한 건 <도망가자>다. 효심 지극한 친구들은 <뼈를 깎는 사랑>을 좋아할 거고. 액션 오덕(마니아)들은 무조건 <백신의 시대>를 좋아할 거다. <그 이후… 미안해요>는 <한겨레>가 좋아할 만하고(웃음). <이웃집 좀비> 에피소드 중에서 어떤 걸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답을 들으면 그 사람의 지금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그러니 이들은 만나는 당신마다 붙들고 물을 것이다. “어떤 게 좋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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