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 영화진흥위원회에 성났다
2010-02-24
글 : 이주현
극장 시네마루 앞에서 1인 시위중인 <어떤 개인날>의 이숙경 감독

“독립영화 감독들이 왜 자신들의 영화를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배급권을 장악한 몇몇이 감독의 작품을 볼모로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2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업무보고. 조영택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이 영진위의 독립영화전용관 공모 결과를 비판하며 보이콧 선언을 한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은 “저의를 가진 조직적인 행동”이라고 답변했다. 150명이 넘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집단 보이콧은 소수 독립영화인들이 조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희문 위원장의 이같은 해명은 그러나 영진위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2월22일부터 이숙경, 백승빈, 홍은지 등 영진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은 “나는 우리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며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2월22일 1인 시위에 나선 이숙경 감독은 “시네마루에서 내 영화가 상영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금요일(1월19일)에 시간표를 확인하면서 알게 됐다”며, “감독들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시네마루가 ‘Just The Beginning, 1+1=!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이숙경 감독의 <어떤 개인 날>을 비롯해 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1, 2기 작품들을 상영목록에 포함한 것에 대해 영진위는 한국영화아카데미 배급팀과 논의해 나름의 절차를 밟아 진행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쯤되면 관객을 볼모로 횡포를 부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출자들의 의지를 거스르며”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단적인 결정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의 부지영 감독은 “배급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도 시네마루에서 이들 영화를 상영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영화아카데미 작품 배급권을 영진위 사무국 선에서 상명하달식으로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사 과정에서 조작 의혹까지 사고 있는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공모 사업은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의 해괴한 해명으로 외려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터뷰/ 1인 시위 나선 이숙경 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첫 주자로 나섰는데.
=개인적으로 감독은 영화로 얘기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서 직접 시위에 나서는 것은 꺼려했다. 그런데 수요일(24일)까지 계속해서 영화아카데미 감독들의 영화가 상영된다고 하더라. 이렇게 감독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액트나, 서울아트시네마까지 파행적 상황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다보니 아카데미에서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래서 1인 시위하러 가겠다고 했고 다른 감독들도 돌아가면서 시위를 하기로 했다. 또 영진위와 영화아카데미의 관계를 비유해보자면, 영진위는 교육부고, 영화아카데미는 학교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 열심히 만든 작품들이 배급되는 과정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영화는 제작 이후 배급, 관객과 소통하는 과정까지 중요한데 이렇게 학교(영화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만든 작품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헐값으로 물건 팔아넘기듯이, 배급권을 무성의하게 다루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시위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극장주인 미로 스페이스 쪽에선 조금 억울하다고 했다. 극장(미로스페이스) 잘못이 아니라 시네마루에 공간을 임대한 것뿐이라고 하소연 하더라. 시네마루 측에서도 입장을 설명했다. 영진위가 아카데미 배급팀과 논의해서 나름의 절차를 밟아 진행한 건데 이렇게 과정이 잘못됐다고 시위하는 게 억울하다더라. 하지만 시네마루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감독 중 에 누구도 전화나 이메일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

-영진위 측에서 절차를 밟았다는 건 뭔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감독에게 통보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된 절차가 아니다. 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제작비가 영진위에서 지불된 거라 영진위가 판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작품을 만든 주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진행할 수는 없다. 또 그 전에 독립영화 감독들의 보이콧 선언이 있었다. 나 역시 보이콧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 상황을 고려했다면 한번 더 프로그램을 조정했어야 하지 않나.

-시네마루 측에선 ‘관객과 소통하려는 것이 감독과 창작자의 의무인데, 감독들이 시민의 볼 권리를 담보로 영화 상영 보이콧을 하고 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마구잡이식 진행까지 용납되는 건 아니다. 영화 상영과정에서, 그러니까 프리 프로덕션이나 포스트 프로덕션 등을 거치면서 그 과정상 비보덕적이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영만하면 되는 게 아니다. 온당한 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관객을 대변해서라도 해당 기관의 파행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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