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조명남 감독을 기리며
2010-03-05
글 : 문석

존 휴스턴은 1987년 유작이 된 <죽은 자들>을 찍었다. 폐기종을 앓고 있던 그는 당시 산소호흡기 없이는 20분도 버틸 수 없는 상태였다. 산소통이 달린 휠체어에 앉아 연출에 임하던 그는 현장을 찾은 <시카고 트리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유를 진정으로 구성하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오랜 물음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그저 튜브의 끝에 있다.” 젊은 날 혈기왕성했던 감독의 마지막 영화가 유독 우아하면서도 우울했던 이유는 그가 삶의 종점에서 만난 서글픈 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2월24일 조명남 감독이 사망했다.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차례 만난 적 있었고, 그의 지독한 불운을 알고 있던 던 터라 마음이 묵직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2년이다. 당시 조명남 감독은 <미스터 레이디>라는 데뷔작을 만들고 있었는데, 제작사인 인디컴은 내 담당이었다. 흔치 않은 뮤지컬영화인데다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삼았던 이 영화를 놓고 그는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드러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뒤 제작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투자사가 발을 뺐다는 것이다. <미스터 레이디>는 70%만 완성된 채 아직도 한 편집실에서 잠자고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조명남 감독은 뒤늦은 데뷔작 <간큰가족>(2005)을 만들었다. 불운은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병마라는 이름의 어둠이 다가왔다. 인디컴에서 두 번째 영화로 <대도 송학수>를 준비하던 2006년 6월 그는 투자사와 계약을 얼마 앞두고 대장암 선고를 받는다. 당시 의사의 소견은 “6개월쯤…”이었다. 그는 영화를 포기하는 대신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해 육체를 소생시켰다. 그리고 최근 해병대를 소재로 한 영화 <대한민국 1%>에 도전했다. 말기암과 싸우면서도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영화에 모든 것을 던졌지만 불행히도 마지막 믹싱작업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생을 다했다. 그가 삶의 마지막 단락에서 본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유작이 된 <대한민국 1%>가 궁금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조명남 감독의 모습은 지난해 12월 SBS에서 방송된 <암과의 전쟁-임상시험 보고서> 2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와 20여년을 함께해온 김태영 인디컴 대표가 안타까운 마음에 만든 다큐멘터리다. SBS 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굿뉴스와 배드뉴스. 강지영 작가의 독특한 소설 <엘자의 하인>이 첫선을 보인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은 이번호로 시즌2를 마친다. 너무 슬퍼 마시라. 언젠가 시즌3가 이어질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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