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세계의 관객을 만나다-파리] 짜내지 않아도 눈물이 흘렀다
2010-03-03
글 : 최현정 (파리 통신원)

지난 1월6일 프랑스의 20여개관에서 개봉한 우니 르콩트의 <여행자>는 현재까지 꾸준히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상영 중이다. 일요일 저녁,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토니 모라, 카테린 모라부부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몇년 전 퇴직한 두 사람은 삼형제를 둔 평범한 부부란다.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나. 극장엔 자주 오는 편인가.
=카테린/ 극장에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온다. 두 사람 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토니/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신문에서 영화 소개글을 읽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아들 녀석이 이 영화를 먼저 보고선 강력히 추천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시내에 나와서 보게 되었다. 우리는 약간 도심 외부에 살고 있다.

-영화는 어떻게 봤나.
=(두 사람 동시에)/ 너무너무 감동 받았다!
=카테린/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는데, 영화 끝까지 감정이 지속되더라. 사실 연출방법은 눈물을 짜내는 고전적인 방법(Pathos)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매우 강한 효과를 주는 것 같다.
=토니/ 나도 정말 감동받았다. 카테린이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는 감정을 폭발시켜 눈물을 흘리게 하려는 것보다 꾸준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또 영화는 당시 고아원의 현실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부모를 모르는 고아들. 부모를 알고도 뒤늦게 버림받은 아이들.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버림받은 아이들. 어떻게 보면 당시 고아원의 형편을 보여주는 사회학 리포트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아이들의 삶은 입양 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물론 제목처럼 아이들은 새로운 삶을 가지게 될 게 분명하다(<여행자>의 프랑스어 제목은 <완전히 새로운 삶>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삶이 행복한 삶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사실 영화에서 ‘새로운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장애를 가진 소녀가 새로운 부모와 가지게 될 새 삶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인공이 파리 공항에 도착하면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의 선택은 최고였다.
=카테린/ 전적으로 동감한다.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 숏으로 약간은 거칠게 끝나버리는…. 아, 아직도 뭉클한 감정이 남아 있다. 계속 얘기하지만, 감정전달의 과장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좋아한 장면이 있다면.
=카테린/ 장애를 가진 소녀가 떠나고, 아이들을 돌봐주던 아주머니가 담요를 방망이로 끊임없이 두드리던 장면.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토니/ 나도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입양되어 떠날 때마다 친구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주인공 소녀는 한번도 노래를 같이 부르지 않다가, 미국으로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가 떠나는 날 다른 아이들과 노래를 부른다. 크고 작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주인공 소녀도 고집을 꺾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이 장면은, 이 사실을 효과적이면서 과장없이 보여주고 있다.
=카테린/ 토니의 말에 동감한다. 프랑스영화는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 영화는 말없는 주인공 소녀의 얼굴 표정과 상황으로 관객이 이해하게끔 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 소녀의 연기는 최고였다.

-평소 한국영화를 좋아하나? 물론 이 영화가 100% 한국영화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토니/ 몇년 전 TV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국영화를 카테린과 함께 시청한 것 말고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영화가 개봉하면 꼭 찾아서 볼 예정이다. 지금 한국영화의 매력에 쏙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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