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조지 클루니] 오! 당신에게 해고당하고 싶어요
2010-03-08
글 : 이주현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

살면서 단 한번도 여자에게 욕을 안 해봤을 것 같은 남자. 조지 클루니다. 그는 사전에서 매너라는 단어를 찾으면 관련사진으로 올라가 있을 법한 남자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는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다. 클루니는 바람둥이 캐릭터를 맡았을 때조차 상대방을 한없이 배려한다. 그런 그가 <인 디 에어>에서는 해고전문가 라이언 빙햄을 연기한다. 남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직업이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클루니의 해고전문가는 다르다. 그는 한없는 매너로 품위있게 절망을 선사한다.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이 말했듯이 라이언은 기획 단계부터 조지 클루니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캐릭터다. “사람들을 해고하는 게 일인 외로운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그 자체로 멋진 배우여야 한다. 거기에 조지 클루니보다 더 잘 맞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서일까. <인 디 에어>와 조지 클루니에 대한 환대는 끝이 없다. “조지 클루니를 멋진 배우에서 최고의 배우로 승격시킨 작품”(<GQ>)이라거나 “조지 클루니가 왜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알 만하다”(<롤링 스톤>)는 평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조지 클루니는 <인 디 에어>로 <마이클 클레이튼> 이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한번 이름을 올렸다.

이제 정말 최고의 배우의 반열에

<인 디 에어>에서는 오랜만에 인간 조지 클루니의 차밍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워낙에 다양한 장르에서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맡아온 터라 현실에 좀더 발을 붙이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조지 클루니의 모습은 어째 좀 신선해 보이기도 한다. 탈옥한 죄수(<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도적단의 두목(<오션스> 시리즈), 타락한 변호사(<마이클 클레이튼>), 초능력 부대원(<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바람둥이 연방경찰(<번 애프터 리딩>)에 비하면 라이언은 정말 평범하다. 라이언은 공항을 집삼아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며 회사의 구조조정을 돕는 해고전문가다. 또한 구속받는 걸 싫어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긴다. 잽싸게 짐 가방 꾸리기와 공항 탑승 심사대 통과하기는 그의 주특기. 조지 클루니는 이러한 라이언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라이언은 자신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면서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원칙 때문에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만다.”

독신남 라이언과 독신남 조지 클루니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다. 당찬 신참 후배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애인에게 차였다며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을 때 라이언은 “누구나 죽을 땐 혼자”라며 쿨하게 대꾸한다. 원 나이트 스탠드 상대인 알렉스(베라 파미가)와의 관계 또한 쿨하다. 그렇다면 현실의 조지 클루니는? “남들이 모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정착할 시기에 난 다음 영화를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야심차게 배우의 삶을 살았다. 물론 가족을 꾸려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삶도 행복하다.”

확실히 지금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연애가 아니라 ‘일’이다. 그는 배우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감독, 제작자로서의 삶에서도 즐거움을 찾는다. 이제는 배우 경력뿐만 아니라 제작자, 감독 경력도 제법 쌓았다. <컨페션> <굿나잇 앤 굿럭> <레더헤즈>에는 감독으로, <크리미널> <시리아나> <더 재킷> 등에는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물론 크게 화제가 되거나 흥행한 작품은 적다. 마찬가지로 형편없는 영화도 없다. 영화제작에 손을 뻗은 초창기, 크게 손해를 보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직접 담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 감정을 담지 못하면 비참한 실패로 끝나거나,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는 제작자가 되거나, 더 나쁘게는 돈은 벌었지만 싫어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척 웃어넘겨야 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제작하기는 어렵더라도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들에 손을 뻗는다. <굿나잇 앤 굿럭> <시리아나>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현실을 말하고 나은 내일을 꿈꾼다

조지 클루니는 진보적인 정치인으로서도 꾸준히 행동하고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돈 치들과 함께 ‘Not On Our Watch’라는 자선단체를 꾸려 수단 다르푸르 인권문제 등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해왔다. 지난 1월에는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100만달러를 쾌척했다. “당장에 현장으로 뛰어가 영웅이 되려는 건 아니”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조지 클루니는 또한 영화를 통해서도 정치·사회적 발언을 계속해왔다. 그는 잇단 기업들의 부도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인 디 에어>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을 제공”하는 영화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상황이다. 이 영화가 그들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이가 들수록 조지 클루니의 선택은 현명해지는 것 같다. 흥행과 명성을 담보할 영화를 잘 고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들을 잘 선택한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에게 맞춤 슈트처럼 어울리는 캐릭터를 끝내주게 잘 골라낸다. 한번에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강렬함이 없다는 게 클루니의 약점은 아니다.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가 “오늘날의 스타들이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고 평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말을 한번 들어보라. 클루니가 자연인의 매력을 캐릭터에 녹여내는 고전 할리우드 시절의 스타들과 닮아 있다는 의미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인 디 에어>의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은 커다란 스크린에 클루니의 얼굴을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그 순간 클루니 이마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조지 클루니라는 쇼는 점점 즐거워지고 있다.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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