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첫 장면. 누군가의 손이 브리프케이스의 번호 잠금장치를 맞추고 있다. 가방이 열리고 그 안에선 판매 서류나 계약서, 문고본 대신 나그라 상표가 붙은 도청장치와 릴, 휴대용 마이크가 나타난다. 자막이 올라가고 아들에게 옥수수의 장점을 떠벌리는 마크 휘태커(맷 데이먼)가 등장한다. 너무 뚱뚱해서 벌겋기까지 한 얼굴, 가발인가 싶은 어색한 헤어스타일, 싸구려 빗자루 같은 콧수염. 세상에, ‘살’이 인간을 어떻게 망치는지 계몽하려는 충격 요법 포스터로 쓰면 효과 한번 끝내주겠다.
망토처럼 펑퍼짐한 슈트에 대학 공책 같은 줄이 그어진 조악한 셔츠를 입고, 고대 벽화풍의 넓은 넥타이를 맨데다 번쩍이는 금시계까지 찼다. 취향 역시 ‘별로’다. 수상쩍은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다니긴 하지만 그가 특수정보원이나 첩보원이 아닌 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어도 브리오니, 아르마니를 거쳐 요즘은 톰 포드를 입으니까. 음식을 입에 쑤셔넣은 채 떠들고, 샤워할 땐 구질구질 치간 청소를 하고 회의 때는 부질없는 복부호흡을 즐기는 그는 내부고발자다. 책상 서랍에 초콜릿바를 숨겨놓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변명을 늘어놓고 회사의 누군가에게 소심한 앙심을 품고 사는 내부고발자들. 마크 휘태커 역시 겉모습은 비굴한 내부고발자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는 회사의 중역이고 어쩌면 곧 사장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 역사상 최고위직 내부고발자를 다룬 커트 아이헨월드의 <인포먼트>(The Informant!)는 스티븐 소더버그와 맷 데이먼 콤비의 꿍짝꿍짝으로 꽤 오소독스하게 화면으로 옮겨진다. 특히 맷 데이먼의 연기는 흥미롭다. 아무리 폼을 잡아봤자 ‘엣지없고 간지없는’ 본 요원보다 늘 혼잣말을 증얼거리고(북극곰의 코가 왜 검은색인지부터 미시시피 지역의 홍수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채롭다), 007보다 두배 똑똑하다는 의미에서 스스로의 암호명을 0014로 정한 괴짜 아저씨 마크 휘태커에게 더 관심이 생기니까.
라글란 소매의 뚱뚱한 트렌치를 입고 그놈의 살 때문에 허벅지가 붙은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는 그에게 갈색 브리프케이스는 유일하게 예민하고 민첩한 존재다. FBI에 그간 경과를 최종 보고할 때 브리프케이스 안의 도청장치로 녹음한 테이프 수는 무려 200개가 넘었다. 그래서 마크가 국가로부터 훈장이라도 받았냐고? 기억할 건 영화사가 밝힌 이 스토리의 장르가 ‘풍자적 블랙코미디’라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스티븐 소더버그다. 그럼 결과는? 마크에게 돌아온 게 훈장일 리가 없다는 것,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