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 감독은 바쁘다. “조감독님, 저 잠깐 옆에서 인터뷰하고 있을게요.” “음악감독님, 이제 슛 가도 될까요?” “아, 명진(임지규) 왔어요?” “기자님, 정신없으시죠.” 정신없는 게 대체 누군지 모르겠다. 얼핏 넘겨다본 구혜선 감독의 콘티북에도 뭔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것저것 써놔요. 저예산이라 최대한 효율적으로 찍을 수 있게끔 촬영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들 을 적어놨어요.” 2월21일 일산 아람누리 공연장에서 만난 배우 구혜선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 <요술>의 마지막 촬영현장을 진두지휘하느라 쉴 틈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구혜선은 감독의 일이란 게 원래 이런 거 아니냐는 듯 구김살 하나없이 해맑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런데 그게 일종의 전술이다. “괜찮아,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거 같아요. 무언가가 잘못돼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그래요. 화낸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짜증과 화도 난다. 그럴 땐 이렇게 한단다. “일단 사탕을 사오라고 해요. 단것을 먹고, 먹이는 거죠. 사탕, 초콜릿, 캐러멜을 스탭들 입속에 집어넣으면서 신경을 분산시켜요. (웃음)” 이날도 구혜선 감독은 사탕을 먹었고 또 권했다. 마지막 촬영이라는 홀가분함과 시원섭섭함을 달래줄 뭔가가 필요하다는 듯이.
<요술>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젊은 음악인들의 삶을 그리는 영화다. 피아니스트 지은(서현진)과 첼리스트 명진(임지규), 정우(김정욱)는 사랑과 우정, 존경과 질투라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서로 아파하고 또 그만큼 성장해나간다. 세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줄 도구는 음악이다. 지난해 발표한 구혜선의 개인 앨범 <<구혜선 소품집-숨>>에 들어 있는 음악들이 <요술>에서 조금씩 변주돼 쓰인다. 촬영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던 피아노곡은 <<숨>> 앨범에 수록된 <밤비 소리>였다. 이날 공개된 장면도 지은이 명진을 기다리며 <밤비 소리>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최인영 음악감독에게 “앨범을 내도 될 정도로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을 갖췄다”고 칭찬받은 지은 역의 서현진은 이날 단독 피아노 연주회를 연 느낌이었을 듯하다. 그는 구혜선 감독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모집한 100여명의 엑스트라 앞에서 계속해서 연주를 해야 했다. 이미 서현진은 구혜선 감독이 연출한 단편 <유쾌한 도우미>, 2009년 아시아나단편영화제 공식 트레일러에도 모두 출연한 바 있다.
<요술>에서 연기, 연출, 각본, 음악 등 1인4역을 맡은 구혜선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 한해 동안 책도 내고 음반도 내고 그림도 그렸는데, 그게 다 영화를 위해 미리 보여드린 작업이었어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요술>의 뚜껑을 빨리 열어보고 싶지만 개봉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