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명관] 영화, 내겐 첫사랑 양아치 같은
2010-03-12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이웃집 남자> 시나리오 쓴 소설가 천명관

영화 <이웃집 남자>의 각본가 천명관은 장편 <고래>,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최근에는 장편 <고령화 가족>까지 써낸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소설보다 영화를 더 연모해왔다. 소설가로 주목받은 다음에도 나는 소설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노라 말해서 문단의 일부를 당황시킨 장본인이다. 오랫동안 영화연출을 꿈꿔왔으나 소설가로 훨씬 더 빛을 발하게 된 그가, 하여 이제는 소설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먹었던 그가 다시 각본가로 펜을 잡게 된 건 <이웃집 남자>가 “나를 영화라는 첫사랑으로 이끌어준 친구의 11년 만의 연출 재기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자본의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악독하게 발버둥치다가 끝내 몰락해가는 어느 386세대이자 부동산 중개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뷰를 한 날은 천명관 작가가 새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백담사 밑자락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시 신명나는 소설가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말을 나눠보니 분명 첫사랑을 잊지 못한 것 같다.

-연출을 맡은 장동흥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
=그 친구 때문에 <이웃집 남자>의 작업을 하게 된 거다. 오래전에도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명필름 시절 내가 쓰고 장 감독이 준비하다가 엎어진 것도 있다. 장 감독이 아니라면 <이웃집 남자>는 안 썼겠지. 시나리오도 한 10번을 고쳤다. 예산에 맞춰서 써놓은 걸 많이 버리기도 했고. 어쨌든 나야 써서 넘겨주면 끝이지만, 감독이 좋은 평을 받아 다음 작품을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영화와 만나게 해준 사람이 바로 장동흥 감독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
=우리는 훈련소 동기였다. 제대하고 한 7년을 못 봤다. 제대하고 30대 초반의 나는 보험모집인을 하고 있었다. 단체보험이라고 해서 회사 상대로 하는 그런 일이 있다. 마포에 있는 한 출판사에 갔다가 거기 꽂혀 있는 잡지를 우연히 봤는데 <파업전야>를 만든 장 감독의 인터뷰가 실려 있더라. 심심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먼저 수소문해서 연락했다. 그때 이 친구는 막 충무로로 나오려던 시점이었고.

-그렇게 해서 충무로 사람들을 차차 많이 알게 된 모양이다.
=옆에서 보니까 영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할 일이 없겠나 싶었고, 장 감독에게 전태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이미 준비 중이라고 하지 않나. 11고까지 나왔다고. 그러면 내가 그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한번 써보라고 하더라. 써서 갖다줬다. 그랬더니 “야, 이건 영화 다섯편 분량이야”라고 하더라. (웃음) 그게 내가 최초로 쓴 시나리오이자 최초로 쓴 글이 아닌가 싶다. 그 영화는 결국 여러 가지 사연으로 다른 곳에서 만들게 됐다.

-영화사 직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기획시대에 다녔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비공식적으로는 <미스터 맘마> 때 그 영화 프로듀서였던 차승재씨를 만났다. 승재 형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얼마 뒤 승재 형이 영화세상 창립작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프로듀서였을 때, 시나리오 작업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나를 불렀다. 그게 공식적으로 나의 충무로 첫 번째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그래서 내가 승재 형에게 매일 그런다. 시나리오작가로 데뷔를 시켜줬으면 감독으로도 데뷔를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직접 쓴 장편소설 <고래>가 영화화될 거라는 풍문은 오래전부터 충무로에서 나돌았었다.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실은 드라마로 먼저 만들려고 했다. 송병준씨가 판권을 사갔는데 당시에 방송사에서 편성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도 그 대본 작업에 한 1년 매달린 적이 있다. 그런데 판권을 사간 회사에서 송병준씨가 퇴사했고 아직 판권은 그 회사에 있다. 송병준씨는 형편만 되면 판권을 다시 가져와 꼭 만들겠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 작업으로 치면 <이웃집 남자>가 얼마 만인가.
=시나리오 작업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이 했다. 하지만 영화화된 게 얼마 없다. 내가 그동안 거의 연출쪽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연출할 마음으로 써둔 시나리오만 한 10편쯤 된다. <총잡이> <북경반점> 같은 걸 썼다. 하지만 그런 건 계약이 다 되어 있던 상태에서 내가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써서 들고 다니는 건 영화화가 안 되더라. (웃음) 지금은 영화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연출할 마음을 접은 건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이미 여러 번 노력해봤고 그리고 안됐다. 지금은 안되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소설을 열심히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에는 스스로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못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 그게 내 꿈도 아니었으니까. 소설가…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속으로 나는 소설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재미있는 건 소설을 쓰면 영화적이라고 하는데 시나리오를 쓰면 문학적이라고 한다는 거다. (웃음)

-그런 면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재미있게 관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주류 문단에서는 그런 걸 결격 사유로 본다. 거기서 보면 이건 이상한 거다. 문단에서 보면 내가 약간 아웃사이더다. 소설을 쓰기는 하는데 문단에는 속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달까.

-시나리오와 소설 쓰기가 많이 다르다고 보나.
=시나리오와 소설 중 뭐가 더 쓰기 어려운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항상 시나리오 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시나리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충무로 시스템 안에서 시나리오작가가 주는 건 기술력이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이다. 감독, 배우, 투자자, 제작자가 동의를 해야 할 문제다. 작가는 그걸 조율해줘야 할 사람이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오해가 없었으면 싶은데 소설을 쓸 때 창작의 고통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소설은 창작의 고통이 있지만 그게 해로운 스트레스는 아니다. 시나리오가 훨씬 더 스트레스다. 그런 차원에서 말했던 건데, 일부는 문단을 무시한다고, 문단을 찌질하게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저 화류계 녀석이 뭔가 한다는 걸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다.

-연출자로서의 욕심은 또 달랐을 것이다.
=연출은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원작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내 시나리오로. 써놓은 것 중에는 멜로도 있고 누아르도 있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것도 있다. <박쥐>보다 정확하게 5년쯤 먼저 썼다고 해야 하나? (웃음) 흡혈귀가 살인 청부업자인 이야기다. 내가 연출을 준비했던 영화에는 컬트나 B급영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스코시즈도 좋아하고 아벨 페라라의 <중독> 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이른바 유럽의 예술영화들도 좋아한다. 물론 코언도. 마니아적인 취향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이웃집 남자>나 소설 <고래>만 보아도 장르적 컨벤션에 능하다는 걸 짐작하게 된다.
=그 점에서라면 마음 아픈 순간이 있다. 시나리오를 들고 연출하기 위해 한 3년 싸이더스를 드나든 적이 있다. 그런데 싸이더스에서 영화 40편이 만들어지는 동안 내 영화는 결국 없었다. 나이 40에 접어들었을 때 마지막으로 엎어진 영화가 있었다. 나이는 먹고 돈은 없고, 꼭 지금 나온 소설의 주인공 상황이었다(소설 <고령화 가족>에는 10년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그런데 승재 형이 <고래>를 읽어보더니 이러더라. “그래도 네가 내공이 좀 있네. 네 길을 찾은 것 같다. 소설 열심히 써라.” 아니, 소설을 열심히 쓰라니. 칭찬인 줄 알면서도 그 말이 어딘지 서운하더라. 나는 이 모든 걸 영화를 하려고 쌓아두었던 내공인데 말이다. (웃음)

-<이웃집 남자>의 경우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나. 이 영화의 이야기나 장르적 면모는 90년대 초반 한국적 누아르와 일맥상통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벨 페라라의 <악질경찰>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나쁜 놈인데 그를 통해 구원 같은 주제 의식이 부각되는 이야기. 이런 건 선 굵은 남성영화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집중했다. 386의 한 자화상이라고도 보았다. 과거에 보편적인 의미에서 운동권에 속해 있던 남자가 사회에 나와서는 개처럼 살아가는 거다. 우리 세대는 70년대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천명관 작가는 63년생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때 다 한 것이라고 본다. 그 이후 영화들은 뒤집고 섞고 해체한 거라고 본다. 80년대에 출현한 코언과 타란티노는 70년대 이후의 변주인 거다. 그런 점에서 <이웃집 남자>는 고전적 스타일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갱스터 장르의 컨벤션으로 욕망, 불행의 씨앗, 좌절, 죄의식, 파멸 등의 라인이 있지 않나. 굉장히 고전적인 영화다.

-윤제문이 연기한 주인공 ‘상수’는 어떤 인물인가.
=특별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며 약간 껄렁하면서 뭔가 정규직 같지도 않고 ‘사짜’ 냄새도 좀 나지만, 이웃집에 살고 있는 그런 인물이다. 이 남자는 육체성이 강조된다. 야전에서 살아가는 수컷이다. 넥타이 매고 다니는 회사원이 아니다. 그런 남자가 파멸해가는 것이다. 나도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실은 친구 중에 엘리트가 많지는 않다. 처음에는 지식인들 세계가 더 낯설었다. 내 주변에는 <이웃집 남자>의 주인공 같은 이들이 많다. 그런 인물에는 익숙하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 같지는 않다.
=나는 31살이 되면서야 뒤늦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같은 감독을 알았다. 그 이후 정말 소년처럼 영화를 탐닉했다. 모든 것은 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좋은 영화감독이 되는 준비과정이었다. 기술적으로도 많이 공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컷을 다 외웠고 시나리오도 분석했다. 실제로 그때 당시에는 플롯을 짜는 것에서는 내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는 일종의 ‘닥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웃음) 그런데 그것이 영화쪽에서 발휘가 안되고 소설에서 발휘됐다. 내가 사랑한 건 저거였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문단에서 사랑받지 않느냐, 그런데 왜 딴짓을 하느냐. 그러면 내가 곧장 적절한 예를 들어준다. 마틴 스코시즈의 <카지노>다.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샤론 스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그 여자의 허물을 덮어주며 사랑한다. 하지만 샤론 스톤에게는 첫사랑의 남자가 있다. 근데 양아치다. 샤론 스톤은 제임스 우즈가 전화를 걸면 한밤중이라도 그 양아치에게 달려간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녀는 나도 몰라, 라고 한다. <카지노>에서 샤론 스톤에게 제임스 우즈가 그런 것처럼 내게는 영화가 그런 것이다.

-가정이지만,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영화연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연출에 다시 도전해볼 마음이 있나.
=내 마음에 드는, 만족할 만한 시나리오가 나에게 있는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게 있다면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상태가 되면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당분간은 하고 싶은 소설 작업이 많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에 나오는 말이었던가. 사람이 정말 잘할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단 한 가지뿐이라고. 지금은 그 의미를 소설에서 찾으려고 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