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 인터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2010-03-17
글 : 김도훈
세상을 3D로 보시라니까요

-앨리스 킹슬리 사장님. 그래서 요즘 무역회사는 잘되어갑니까.
=네. 아주 성과가 좋아요! 제 회사가 개척한 청나라 무역항로 덕분에 떼돈을 벌었답니다. 호홋.

-대체 청나라 무역항로는 어떻게 뚫은 거예요?
=아유, 그거 생각보다 간단하더라고요. 사실 영국산 방직물을 청나라에 팔아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는데, 그 동네 눈 찢어진 동양인들은 생각보다 옷감 제조술이 우수하더라고요. 그래서 방직물 대신 뭘 팔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빙고! 답을 얻었죠. 아편! 아편을 팔았어요!

-에? 아편이라는 건 마약이 아닙니까.
=마약이라기보다는 지친 노동자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치료약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네요.

-그래도 마약은 마약이잖아요.
=19세기에 아편이 지금의 헤로인처럼 강하게 단속할 마약이었던 건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그건 공정한 무역이었어요.

-그런데 청나라에서 아편을 넙죽 수입하던가요?
=아뇨. 청나라가 아편을 단속하기 시작했죠 뭐. 그래서 영국 정부와 손잡고 저희 회사 주도로 간단히 압력을 좀 넣었어요. 2년 만에 제가 뭘 얻었게요? 꺄아아! 홍콩이랑 광저우를 비롯한 다섯 항구의 개항이요!

-세… 세상에. 그러니까 앨리스씨가 바로… 아편전쟁을 일으켰군요.
=전쟁이 아니죠. 그건 공정한 세계무역의 교두보를 놓기 위한 모험이었다고요.

-아아.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귀여운 앨리스가 아편전쟁의 원흉이었다니.
=이상한 나라요? 그게 뭐죠?

-이상한 나라가 뭐냐고요? 앨리스씨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 방문했던 바로 그 나라 말이에요. 원더랜드요 원더랜드.
=흠.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 비슷한 꿈을 꾼 적은 있어요. <씨네21> 예전 편집장의 사각턱을 닮은 모자장수랑 머리가 이모 기자만큼 큰 붉은 여왕, 그리고 막 나타났다 잡히고 잡혔다가 사라지는 고양이 같은 게 나오는 꾸질꾸질한 동네 꿈을 몇번 꿨더랬죠.

-앨리스씨. 그건 꿈이 아니에요.
=깔깔깔. 그게 꿈이 아니라고요? 아유, 이제는 안 꿔요. 난 이제 더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그건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잖아. 하여간 갑갑한 빅토리아 시대에 앨리스씨가 공개구혼을 물리치고 자신의 꿈을 좇을 수 있게 된 게 누구 덕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다 원더랜드의 친구들 덕분입니다. 모자장수와 체셔캣과 토끼와 하얀 여왕이 당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덜떨어진 귀족 아들과 결혼해서 십자수나 놓으며 살고 있을 겁니다.
=됐고! 이젠 상관없어요. 꿈속의 모자장수를 그리워할 나이는 지났어요. 전 빅토리아 시대의 페미니스트예요. 시대의 첫 번째 세계 무역상이라고요.

-앨리스씨가 꿈을 잃어버린 걸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페미니스트의 길은 좋지만 왜 하필 제국주의자의 길과 겹쳐야 하냐는 겁니다. 후유, 페미니즘이냐 제국주의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상 참 갑갑하게 사시네. 세상을 그렇게 2D로 보지 말고 3D로 좀 보면서 사세요. 이 영화 오덕 빵꾸똥꾸야.

-아아. 나의 앨리스는 이렇지 않아. 이렇지 않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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