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의 아카데미 싹쓸이부터 <그린존>의 개봉까지, 게다가 <HBO>에선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후속작 <더 퍼시픽>까지 방송되고 있으니. 지금 할리우드는 전쟁물 풍년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작자 열이면 열, ‘혹 전쟁물 시나리오 중 끌리는 게 있냐’고 물으면, 제정신이냐고 반문할 게 뻔합니다. 바로 할리우드의 전쟁물이 지금 처한 상황입니다.
제작자들이 이같은 결론에 도달한 데는 물론 수치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당장 <그린존>만 보더라도 답이 나옵니다. 영화는 이라크에 숨겨진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위해 바그다드로 급파된 미군을 그리고 있죠. 약 1억달러의 제작비, 현대 액션물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의 만남, 그리고 엄청난 광고물량까지. 그럼에도 결과는 개봉주 흥행수익은 제작비의 1/10에 그쳤습니다. 떡밥이 아무리 있다한들 무엇합니까. 30대 이하의 영화광들이 도통 전쟁물은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시한부 장르, 전쟁물의 수명을 단숨에 단축시킨 장본인은 물론 아카데미 영광의 주역 <허트 로커>에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작자들은 더이상 전쟁물을 제작하지 않는 가장 적절한 이유로 <허트 로커>를 든다지요. “봐라, 평론가들이 호평하고 아카데미가 인정한 영화의 진가를.” 그 정도냐고요? 네, <허트 로커>가 누린 아카데미 효과는 고작 1천만달러에 그쳤다고 하는군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1/3에 불과한 시청자를 모은 <더 퍼시픽>의 시청률이 급기야 이 흐름에 쐐기를 박는군요.
당분간 전쟁물에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숀 펜과 나오미 왓츠가 캐스팅됐음에도 <페어 게임>은 개봉날을 잡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제작 중인 유니버설의 <배틀십>은 전쟁물이라기보다는 관객 주타깃층을 젊은 여성으로 한정지은 소품 정도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하긴 미국이야 <CNN>만 틀어도 더 기막힌 전쟁드라마가 생방송되는데 굳이 누가 극장까지 가서 피로를 가중시키려나 싶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