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진웅] 광대로 사는 게 좋다, 그립다
2010-03-26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TV와 영화 곳곳에서 활약중인 배우 조진웅

때를 놓친 줄 알았다. 그리고 못 볼 줄 알았다. <국가대표>에서 개성만점 해설자 역을 맡았던 ‘이름 몰랐던’ 배우에게 인터뷰를 청하지 못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 조진웅은 스스로 ‘제 이름을 직접 들고’ 나타났다. <추노>의 충직하고 선한 한섬으로,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의 야비하고 폭력적인 장호로, 두 얼굴을 한 채로 등장한 것이다.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 시절,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뿌려진 <씨네21> 데일리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모으면서 언젠가 이뤄질 만남을 고대했다는 배우 조진웅을 만났다. 영화 <맨발의 꿈> <베스트셀러> 등에도 출연하느라 지난해 가장 바쁜 한해를 보냈던 그는 관객이 자신의 이름보다 캐릭터의 얼굴을 더 많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배우였다.

-극중(<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캐릭터 때문에 요즘 양복 입을 일이 많을 것 같다. 양복 입고 액션을 해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나.
=어제 ‘살려주세요’, 하며 찾아온 다른 회사 사장을 마구 짓밟는 장면을 찍었다. 흐흐흐. 그런데 다리를 올리다가 그만 바지가 ‘쫙’하고 찢어졌다.

-(웃음) 말은 좀 타나. 말 타고 뛰는 장면(<신불사>)은 안 나오고, 안장 위에서 농담만 날리던데.
=김민종 선배쪽으로 말 타고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아무래도 내가 좀 무겁다 보니 말이 짜증내고 태우기 싫어한다. 그날도 가장 튼튼하고 온순한 말로 갈아탄 다음에 겨우 찍었는데, 말이 엄청 허덕거렸다. 나는 위에서 ‘이랴, 이랴!’ 하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말은 너무 힘들어하니까. 우스운 모양새가 돼서 결국 뺐다고 하더라.

-<추노>에서도 말 타고 달리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배우의 몸무게를 감당할 말이 없었던 것 아닌가.
=주로 타고 내리는 장면만 찍었다. 대개 드라마에 쓰이는 말들은 퇴역한 경주마들이라서 굉장히 예민하다. 나처럼 무거운 사람이 타면 심지어 헛다리 짚는 경우도 있다.

-한섬이 원손을 데리고 궁녀와 함께 도주하는 장면(<추노>)은 많이 회자됐다. 배우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장면이었을 텐데.
=극중 한섬은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2년 동안 섬에서 숨어 살았다. 그 장면 찍기 전에 다른 장면 촬영 때도, 심지어 걸어가는 장면에서도 감독님은 액션 전에 나에게 항상 ‘한섬, 2년이야!’ 하고 소리치셨다. 그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서 정작 도주장면 때 감정을 끌어내기 어렵진 않았다. 다만 짚신 신고 뾰족한 바위 위를 뛰는데 너무 아프더라. 발바닥에 멍들어본 적 있나?

-<솔약국집 아들들>을 비롯해 주로 코믹한 캐릭터로 잘 알려졌는데, <추노>를 보고는 많은 이들이 정극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구나 싶었을 것이다.
=<추노> 전에는 호흡을 묵직하게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나 같은 광대한테는 중요한 공부였지 않나 싶다.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 <추노>의 한섬과 <국가대표>의 해설자가 동일 배우라는 사실을 몰랐다. 분장을 조금만 해도 완전히 다른 느낌의 얼굴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듣보잡’ 배우라서 그렇다. 크크. 배우 조진웅은 잘 모르고 캐릭터만 아는 거지. 근데 그게 더 기분이 좋다. <우리형> 끝나고 나서 카페에서 내 이야기 들은 적 있다. “그 배우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실제 자폐아 아니야?” 잠시 스쳐 지나가며 흘린 이야기였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신불사>는 원작이 만화여서 그런가. 전작들에 비해 표정 변화가 다소 과하다.
=<2012> 봤나. 거기 보면 러시아 갑부의 쌍둥이 아들들이 나온다. 그 쌍둥이들이 크면 장호처럼 되지 않을까 했다. 장호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캐릭터다. 그를 유일하게 제지할 수 있는 이는 아버지뿐이다. 장호는 불편하면 불편한 표정이 그냥 얼굴에 나온다. 숨기거나 거를 필요가 없는 거다. 눈앞에 떡이 있으면 떡을 보고, 고기가 있으면 고기를 본다. 뜨거운 걸 집으면 ‘앗 뜨거’ 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표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장호를 연기하면서 내가 많은 것을 숨기고 살았구나 싶었다. 사실 미녀의 가슴을 보면 놀라지만, 실제로 우리는 안 본 척하지 않나.

-맡은 배역들의 소소한 측면까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포레스트 휘태커를 좋아한다. 그의 감정 표현은 할리우드 배우들의 흔한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언밸런스라고 해야 하나. 그게 세련된 디테일 연기 같다. <국가대표>에서 하정우씨 보면 오우, 디테일이 장난 아니다. 하정우씨가 극중에서 재미동포로 나오잖나. 공항에서 (김)동욱이한테 빨리 오라고 하는 장면에서 말로 하지 않고, 시계를 가리킨다. 영락없는 재미동포인 거지. 그걸 보는데 가려운 데를 긁어준 느낌이었다. 정말 ‘브라보’였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경상도 사투리를 잘할 텐데.
=전라도 사투리도 할 줄 안다. 광주에서 군 복무를 했거든.

-전형성을 부여하기 위해 조연배우들에게 사투리를 요구할 때가 많다. 배우 입장에서도 사투리는 주목받기 위한 간편한 방법이다. 그런데 막상 전작들을 보면 사투리를 쓴 경우가 얼마 없다.
=외국어 잘하려면 듣고, 말하고, 느끼라고 한다. 사투리도 그렇다. 사투리는 정서다. 정서로 사투리를 뱉지 않으면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완벽한 리얼리티 연기를 행하는 배우거나 미끈한 조각남이라면 모르지만, 캐릭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어중간하게 쓰는 건 위험하다.

-<날아라 펭귄>의 직장 상사 캐릭터는 사투리를 썼으면 좀더 재밌었겠다 싶었는데.
=현장 분위기가 독특했다. 배우들도 처음으로 ‘인권’ 생각하면서 영화 찍었다. 서로에게 헬퍼가 되자는 주제처럼 말이다. 카메라 바스트 숏 하나 더 받겠다고 나서는 건 아닌 거지. 배우들보다 이 사회의 모순이 좀더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다들 생각했다. 재미난 건 손병호 선배님인데, 애드리브하고 나서 매번 쑥스러워하셨다. ‘습관이 됐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업병이지’ 그러셨다.

-스포츠영화에서 대개 캐스터와 해설자는 쉬지 않고 만담을 주고받는다. 반면, <국가대표>는 실제 중계처럼 짧은 침묵의 순간들이 있어 좋았다. 주어진 대사를 뱉는 것이었다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신명나게 놀아본 건 정말 간만이었다. 원래 대본은 굉장히 길었는데, 현장에서 얽매이지 말고 즉흥으로 가자고 했다. 그전에 김용화 감독이 가편집본을 보여줬다. 그때가 거의 촬영이 끝날 무렵이어서 경기 말고 다른 장면도 다 봤다. 그런데 울컥하더라. 고생했구나. 샘이 날 정도로 재밌기도 했다. 사실 그걸 안 봤다면 그냥 노멀하게 갔을 거다. 그런데 보고 나니까 절로 흥이 났다. 나중에는 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흥분했다. 돌아오는데 혈압이 오를 정도였다. 게다가 김성주 아나운서는 프로니까, 중간에 딱딱 잡아줬다. 애드리브로 쭉 가면 삼천포로 빠질 수 있다. 둘 다 삼천포로 빠지면, 아예 그 장면을 못 쓴다. 중간중간 ‘명쾌한 해설 감사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해줬다.

-데뷔작이 뭔가.
=<말죽거리 잔혹사>의 야생마 패거리2로 데뷔했다.

-몰랐던 건 아닌데, 대사없는 단역을 자신의 데뷔작이라고 말하는 배우들은 흔치 않다.
=연극만 쭉 하다가 영상매체를 처음 만난 거니까 충격이 좀 컸다. 한편 하고 나 영화 안 할래 했으면 모르지만, 광대에게 영화는 연극과는 또 다른 가능성의 영역이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니까. ‘슛, 레디, 카메라, 롤링, 음향, 스피드, 액션’의 긴장을 처음 알려줬으니 <말죽거리 잔혹사>가 데뷔작인 거지.

-첫 촬영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하나.
=첫 액션에서 NG가 났는데, 나중에 모니터를 보니까 아무리 봐도 내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내 어깨 뒤에 카메라가 있더라. 하하. 나중엔 얼굴이 안 나와도 ‘아 저거 내 어깨야!’ 알 정도가 됐지만.

-<말죽거리 잔혹사>는 오디션에 참가한 건가.
=연출부 중에 이상은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군대 고참이었는데, 제대하고 친구가 됐다. 그 친구하고 역삼동에서 우연히 만나서 술 마시는데 영화를 한다고 하더라. 난 그때 서울시립극단에 막 다니던 때였는데 몇주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참이었다. 영화사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싸이더스라고 했다. 싸이더스, 회사 이름이 너무 ‘싸이비’ 같잖아. 결국 내려가는 길에 조감독이나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다음날 갔는데, 내 앞에 권상우가 지나가는 거다. 친구한테 그랬다. “아, 너 진짜 영화하는 거 맞구나!”

-낙향을 하려 했던 이유는 뭔가.
=그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부산에서 연극하다가 서울시립극단에 들어가게 됐다. 월급 받고, 공연 수당 받고,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고, 공무원 생활이지. 그런데 하다 보니까 내가 무너지더라. 그런 패턴에 적응을 못했던 거지. 땀 흘리고, 피가 나고, 눈물이 흘러야 뭔가가 나올 것이라고 믿던 시절이었으니까.

-<폭력써클>에서는 실제 나이보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고등학생 연기를 했다. 많은 관객이 보지 못해서 안타까울 텐데.
=그 영화의 카피가 ‘모든 것을 잃었다, 단 우리만 남았다’였다.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7개월 이상의 촬영 때까지 오랫동안 매달린 작품이었으니 아쉬움이 없진 않다. 하지만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제작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때 만들었던 노트 보면 시나리오는 어떻게 변하고, 제작은 어떤 이유로 딜레이되고 그런 것까지 다 적혀 있다.

-과거 인터뷰를 보니까 군대에서도 연극반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신념화 교육이라고 있었다. 제식훈련도 하고 반공교육도 받고 그러는데, 재미가 없어서 부대장에게 건의를 했다. 연극하자고. 한번 해봐라, 했는데 흥미 유발을 위해 부대별 대항전으로 만들었다. 플롯이나 줄거리야 정해져 있다. 입대 뒤 실연당한 이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 는 건전가요 같은 내용이었다. 그때 내 후임병으로 나주 깡패와 익산 깡패가 동기로 들어왔는데, 둘 사이가 너무 안 좋았다. 일반 병사 역할이 훨씬 비중이 큰데도 둘 다 대사도 얼마 없는 상사 역할을 하려고 싸우는데. 그때 알았다. 캐스팅하는 게 어려운 일이구나. 죽어도 저 새끼한테는 존댓말을 못 쓰겠다는 애들을 결국 설득해서 역할을 맡기긴 했는데, 연습할 때부터 뒤집어졌다. ‘외곽 근무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뭐 이런 간단한 대사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병사 역할 맡은 친구는 ‘똑바로 경례 받아야~’ 그러고, 상사 역할 맡은 친구는 ‘내가 선임하사인데 뭐, 이 새끼야~’ 그러고. 대본에 없는 대사들을 마구 지어내는데.

-<비열한 거리> 출연 때도 실제 조폭을 만나 인터뷰했다고 들었다.
=영광 출신이든 목포 출신이든 깡패 언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순댓국집에서 만났는데 죽을 뻔했다. 극중 몇 마디 안되는 대사를 보더니 첫마디가 ‘말이 안돼!’였다. 형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그렇게 대들었다가는 바로 골프채 날아온다고 했다. 이건 픽션이라고 설명했더니 우리는 인정 못한다고, ‘바끄라해’(바꾸라고 해) 하더라.

-실제 인물을 만나서 인터뷰하면 도움이 되나.
=체감하지 못하면 표현하기를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 인간의 본질을 넘어서는 이야기는 없으니,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면 모티브 얻을 인물들을 찾으려고 한다. <아바타> 같은 영화면 모르지만. <우리형> 때는 해운대에서 만난 파카 입고 왼손에 흰 장갑 낀 자폐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물론 모델이 극중 배역과 똑같을 필요는 없다. 전에 연극할 때 사형수 역할을 한 적 있는데, 무서운 작은아버지를 떠올리면서 했다. 밥 먹고 가라 한마디로 사람 주눅 들게 만드는 분이었다.

-본명은 조원준인데, 아버지 이름을 따서 쓰고 있다. 흔히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서먹서먹해서 그러기가 쉽지 않을 텐데.
=가끔 소주 마시면서 올드 팝 이야기할 때 말고는 다른 부자지간처럼 서먹서먹하다. 다만 친구들이 매번 주례 서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위트있고 젠틀한 분이다. 특히 아버지 이름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우뢰 진, 수컷 웅(震雄)인데, 강해 보이잖나. 내 외모와도 좀 어울리고. 아버지가 점점 늙어가시는 게 좀 안타깝기도 했고. 그래서 <말죽거리 잔혹사> 크레딧 올릴 때 고민 끝에 부탁했다. 그랬더니 ‘니 뭐라&#53012;노’ 하시면서 이제 ‘니가 집에서 가져갈 게 없으니까 아부지 이름까지 가져간다’고 하시더라. <우리형> 보시고 나서 아버지께서 이름이 너무 기가 세서 눌릴 수 있다고 하신 적 있는데, 그때 그랬다. 내가 광대고, 굿쟁이인데, 나보다 기센 사람이 어딨냐고. 내가 좀 능동적이지 못한 것도 있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거지. 사실 원준이 걔가 말이야보다 진웅이 걔가 말이야 하고 욕을 먹으면 기분이 곱절로 나쁘다. 욕 먹기 싫으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경성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대학 시절 이야기는 별로 없더라.
=황금시대였지, 뭐. 연극하고, 술 마시고, 연애하고. 딱 쓸 만큼 벌어서 하고 싶은 것 하던 시절이니. 백화점이나 지하철 역사 등에서 쫓겨다니면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도 많이 했다. 돈 떨어지면 모자 벗고, 그래서 몇 만원 모이면 그걸로 국밥 먹고. 주위에서 ‘이제 그만 좀 하지’ 했을 때 우리는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그런 시절이었다.

-체구가 크지만, 액션에도 능한 것 같다.
=사실 대학 처음 갔을 때 태릉선수촌 온 줄 알았다. 신체 트레이닝이 너무 혹독해서 나중에 대자보를 만들어 붙인 적도 있다. 신체 트레이닝은 없어져야 한다고. 똑같은 훈련이 똑같은 패턴의 연기를 만든다는 내용으로. 어쨌든 그게 도움이 된지도 모르겠고. 학교 다닐 때는 발레, 한국무용, 기계체조 등으로 몸 푸는 법을 배웠는데 그 도움도 받은 것 같다. 영화 액션은 좀 다른 것 같다. 신재명 무술감독을 처음 뵀던 게 6~7년쯤 된다. 가드 씌우고 진짜 걷어차는데 너무 아팠다. 영화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진짜배기는 진짜에서 나온다더라. 신 감독님 스타일이 아침에 운동하고, 육회 먹고, 자고, 다시 운동하고, 사실상 사육시스템인데. 한 6~7년 그렇게 하고 나니 이젠 꾀를 잘 안 부린다.

-광대라고 자주 말했다. 광대를 계속할 건가.
=광대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광대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다. 물론 진짜 광대로 살고 있느냐고 자문할 때는 멍해진다. 점점 더 많은 합리화와 타협을 하니까. ‘조금만 더’가 아니라 ‘요기서 그만’, 뭐 그럴 때도 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울고불고 자책하는 거지. 가끔 내 채찍질이 너무 아파서 그만 때리자, 할 때도 있고. 그런데 아직 광대가 좋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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