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먼트> The Informant!
2009년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상영시간 108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영어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워너브러더스화질 ★★★★ 음질 ★★★★ 부록 ★☆
스티븐 소더버그 영화의 지형도를 그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근래 사기꾼들의 모험담, 흑백 전쟁드라마, 후기 자본주의사회 변방의 비극, 실존 혁명가의 기록 사이를 숨가쁘게 오갔던 그는 2009년 한해에만 두편의 영화 <인포먼트> <애인 경력>을 내놓았고, 다른 두 영화의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대기업의 내부고발자에 관한 코미디인 <인포먼트>와 다큐멘터리 형식의 고급 콜걸 이야기인 <애인 경력>은 얼핏 아주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만, 자본주의사회를 이죽거리고 익숙한 장르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소더버그 스타일의 영화다. 그뿐인가. 두 영화의 ‘위대한 위선자’가 다른 인물들을 배반할 동안, 영화 또한 빤한 기대감을 품고 있던 관객의 눈앞에서 사기극을 벌인다. 예상했던 이야기, 그런 건 <인포먼트>와 <애인 경력>에 없다. 진짜 ‘오션’은 소더버그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직위의 기업 내부고발자가 등장한다. 거대 농산물회사 ADM의 부사장이었던 마크 위태커는 농산물시장의 가격담합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회사의 부패상을 FBI에 알린다(가격담합에는 옛 ‘제일제당’과 ‘미원’도 한몫 낀다). 저널리스트 커트 아이켄월드는, 3년 가까이 내부 스파이 노릇을 유유히 펼친 위태커의 스캔들을 파헤쳤고, 그의 책 <인포먼트>는 소더버그에 의해 영화화된다. 요즘 한국에서도 대기업의 내부고발자가 쓴 책이 잘 팔리고 있던데, 같은 내부고발자의 기록이지만 <인포먼트>의 주인공은 양심고백과 별 상관이 없다. 양심이 용납하지 않아 진실을 고백한다던, 스스로 ‘007’보다 똑똑하다며 ‘0014’라고 불러달라던 위태커는 속으로 대체 어떤 계산을 했던 걸까.
빌리 와일더와 잭 레먼의 씁쓸한 기업 코미디를 1990년대로 끌고 온 <인포먼트>는 <인사이더>의 코믹 버전이며, <인 디 에어>보다 신랄한 영화다. 소더버그는, 고등교육과 가족의 사랑과 사회의 존경을 받던 남자의 범죄가 오직 탐욕 때문이라던 판사의 한탄보다 고액 연봉자가 왜 내부고발자 노릇을 하는지 궁금해하던 판사의 머리가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도덕적인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고 기업 부패의 진상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대신, 소더버그는 돈과 욕심에 취해 분열적인 행동을 일삼는 인간의 희극적인 초상을 그린다. 심각한 상황에 흘러나오는 마빈 햄리시의 모던하고 상쾌한 음악과, 장면 사이마다 위태커가 내뱉는 뜻모를 언어유희 속에서 영화의 진지한 주제는 무장해제당한다. <인포먼트>는 웃으면서 보는 무서운 이야기다.
입사하는 사람들은 기밀유지에 관한 서약을 해야 한다. 으름장 문구가 난무하는 서약서는 모든 기업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사실의 방증인데, 위태커가 ‘기업의 타락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도록 만든 건 바른 양심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정신이다. 자신도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사장이 될 거란 희망을 품고, 왜 큰 도둑보다 자기가 더 많은 형을 살아야 하는지 따지고,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거짓으로 임기응변하는 그를 보면, 자본주의사회에서 게걸스럽게 사는 것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영혼과 이성의 죽음이다. 생화학자로서 위태커가 우려했던 바이러스는 바로 자기 머릿속에 살고 있었던 거다. 지적이면서 경쾌한 소더버그의 연출은 경지에 올랐고, 지금껏 보지 못한 맷 데이먼의 의뭉하고 교활한 인물 연기는 놀라움을 넘어선다.
<인포먼트>는 소더버그가 30일 만에 촬영을 마친 디지털영화다. DVD는 영화의 특이한 색감과 톤을 잘 담아놓았으며, 부록으로는 4개의 삭제장면(7분)을 제공한다(블루레이에만 감독의 음성해설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