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가상 인터뷰]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햄
2010-03-31
글 : 김도훈
짐을 다 버려보시라니까!

-오늘의 특강 주제는 ‘짐싸기의 기술’입니다. 초빙강사로는 라이언 빙햄씨를 모셨습니다. (일동 박수)
=안녕하십니까. 라이언 빙햄입니다.

-하시는 일이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저는 해고통보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을 돌면서 해고를 통보하는 일을 합니다.

-어머나. 어쩐지 좀 무시무시한 직업이네요. 빙햄씨 때문에 조용히 산에 올라가 목 매다는 사람들도 꽤 있겠어요.
=그렇진 않습니다. 저는 애프터 서비스까지 완벽하게 하거든요. 상처받은 사람들이 공포의 강 너머 희망이 보이는 곳까지 무사히 가도록 열심히 돕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여튼 오늘의 주제는 ‘짐싸기의 기술’입니다. 짐싸기라는 게 알고 보면 정말로 어려운 일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칸영화제 출장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슈트케이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대체 뭘 가져가고 뭘 뺄지 고민하는 데만 하루가 족히 걸려요.
=그건 과욕 때문입니다.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좀더 빠르고 적확하고 현명한 짐싸기를 할 수 있어요. 짐싸기란 더하는 문제가 아니라 더는 문제예요. 덜어야 합니다.

-그건 저도 잘 알지요. 근데 덜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왠지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지지난해에는 여행용 다리미와 헤어드라이어까지 가방에 넣어 가느라 아주 터져나갈 뻔했습니다.
=다리미와 헤어드라이어는 숙소에 다 비치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그게 문제예요. 숙소에 비치되어 있으리라 99% 확신하지만, 혹시 없을 1%의 가능성이 저를 괴롭혀요. 이런 건 강박관념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지난해에는 다리미만 가져갔어요.
=오. 헤어드라이어를 덜어내셨군요. 한발 앞으로 나아가신 겁니다.

-그게… 헤어드라이어를 안 가져가려고 아예 머리를 밀어버렸어요.
=오우.

-네. 말문이 막히셨군요. 매년 칸 출장 가서 입지도 않는 옷이 절반이에요. 그런데도 막상 짐을 싸는 날이면 뺄 수가 없어요. 밤에는 추울지 모르니까 가을용 재킷을 가져가요. 사실 재킷 따윈 필요도 없는 날씨라고요. 왠지 포멀한 구두도 하나 가져가고 싶어요. 사실은 포멀한 구두가 필요한 파티 따위엔 참석조차 할 수 없이 바쁘다고요. 그런데도 슈트케이스에 꾸역꾸역 처넣어요. 대체 전 왜 이럴까요.
=욕심이 많고, 결단력은 부족한데다, 사서 걱정을 만드는 스타일이시군요. 다시 말하자면, 쪼잔한 인간형이라는 거죠. 삶이란 배낭에 넣고 다니는 짐 같은 겁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무거운 짐이죠. 짐을 다 버리고 나면 정말 상쾌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다 버리고 나면… 대체 뭐가 남죠?
=자유, 그리고 마일리지.

-그거야 빙햄씨는 수십만달러 연봉과 무료 항공권을 손에 쥔 독신이니까 가능한 거고. 전 그렇지가 않다는 게 문제죠. 제 마일리지로는 내년 즈음에야 겨우 유럽을 공짜로 갈 수 있을 정도인데다가 혼자 일하는 직업도 아니에요.
=그럼 당신 슈트케이스를 한번 봅시다. 배탈약과 두통약. 현지에서 사면 됩니다. 안경 다섯개… 아니. 출장 가는 인간이 왜 안경을 다섯개나 들고 가? 하나만 넣고 다 빼요. 신발냄새 제거제. 이거 좀 봐봐. 모이스처라이저, 토너, 에센스, 아이크림, 노화방지크림, 립밤, 선크림에 각질제거제… 다 빼! 남자는 스킨 하나, 로션 하나면 장땡이야.

-그거야 당신이 조지 클루니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고욧! 전 못 빼요. 못 빼!(한 떨기 눈물이 모이스처라이저와 에센스와 토너와 아이크림과 노화방지크림이 곱게 발라진 얼굴 위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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