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아름다운 강의도 슬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릇은 자신을 좋아해 달라는 청원이고, 그 청원이 직면한 그 끔찍한 ‘익명을 향한 도약’인데, 모든 강의 속에는 이 청원의 기운이 눈에 보이지 않게 벌름거리기 때문이다.-철학자 김영민
<인 디 에어>를 봤다. 영화는 단락 단락 위트있게 전개되지만 말하는 바는 결국 사람살이가 참 외롭다는 얘기다. 혼자서도 잘 지낼 시기는 누구나 있겠지만 그 공력을 자부할 시간에 차라리 이웃과 관계를 맺는 데 애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 적당히 서로를 노출하며 기능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얼굴 맞대고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과 번거로움을 무릅쓰는 관계는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수고에도 타이밍이라는 게 있어서 어떤 시절을 놓치면 복구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 ‘인간은 섬이다. 단 체인으로 엮인 섬’이라는 문장을 설파하던 <어바웃 어 보이>와 비슷한 메시지인데 <인 디 에어>가 좀더 씁쓸하다. 누구와 절실한 사이가 되는 걸 꺼리는 삶의 태도는 두 영화 속 캐릭터가 공유하지만, 그 가치관을 휴 그랜트는 멋쩍은 독백으로 표현하고, 조지 클루니는 바깥으로 설파해서 그런 것도 같다. 큰소리치던 사람의 어깨가 더 측은한 법.
<인 디 에어>는 라이언의 변해가는 강의 일지
어찌보면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해고전문가 라이언 빙햄의 변해가는 강의 일지다. ‘관계’라는 인생의 짐을 비우고 개인적이고 효율적인 삶을 선택하자는 신자유주의스러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이랑 무늬는 비슷하지만 속내는 전혀 다른) 낭설을, 방금 해고된 직장인을 대충 달래는 스피칭을 통해, 직장인 연수 내지는 자기 계발 프로그램의 특강을 통해 앵무새처럼 설파했던 주인공. 그렇게 공중에 걸쳤던 입과 발이, 신입사원 나탈리- 당돌하지만 사람 사는 물정은 또 모르는- 와의 동반 출장길을 통해 차츰 지면을 딛기 시작한다. 일종의 일대일 멘토링 효과. 그러고보면 <지붕 뚫고 하이킥!> 속 개인주의의 화신이었던 준혁 학생과 지훈 삼촌도 정음, 세경 등과의 일대일 과외를 통해 차츰 공동체 일원이 되어가지 않았는가. 라이언 역시 소원했던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해 ‘급’긴장한 매제를 자신이 지양하던 가치로 달래야 하는 역설적인 과외 임무까지 수행하게 된다. 이교도 순회강사가 신앙에 회의를 품은 십자군에 오히려 신실해질 동기를 부여한달까. 그러는 와중에 라이언도 변해간다. 강의는 일방통행이 아닌 상호작용이니까.
각설하고, 아는 영화인 중 몇몇도 강의를 한다. 라이언처럼 컨벤션센터에서 폼나는 강좌들을 하는 건 아니고, 대개는 여기저기 시민센터, 또는 중·고등학교 등에서 입문 단계의 제작 지도를 하며 영화일이 없는 시기를 버티고들 한다. 그중 일을 유독 많이 맡는 연출자가 있다. 특별한 수입도 없이 단편을 자기 호주머니 돈으로 만들던 시절, 웬만한 강좌 요청은 거리나 보수, 대상을 불문하고 응하다보니 일이 일의 가지를 쳐줬다고 한다. 그 강의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속된 말로 이 사람이 ‘구라’를 잘 푼다. 오해마시길. 사람 속이는 설을 푼다는 게 아니다. 다만, 강의라는 게 한번 발화되면 다시 없을 고유의 소통이라기보다 그 틀과 내용이 잡히면 앞의 청중만 바뀌지 계속 복제를 해도 되는 연희적인 속성이 있기에 스스로에겐 무료해진 깨달음과 상식을 매번 어제 터득한 지식과 진리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발화하는 재주가 필요한데 그 재주가 남다르다는 이야기. 일종의 구라는 구라인 셈.
‘구라’를 아끼고 표정을 아끼고 약속을 아꼈더니
실은 이 감독이 얼마 전에 같은 업종에 종사하던 연인과 이별을 했는데 그 후유증에서 도통 벗어나질 못한다. 연애 처음 해본 것도 아니면서 웬 유난일까. 여자친구가 그의 수강생은 아니었지만 조금 먼저 태어나 조금 먼저 영화일을 시작한 남자에게 “저건 왜 그래?”, “이건 왜 그래?” 궁금한 게 참 많았단다. 시작하는 문장은 항상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꼬리를 늘이며 남자의 표정을 살피던 여자. 처음 교제를 시작하고 설렘으로 가득할 때는 그런 질문에 좋은 ‘구라’도 참 많이 풀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러니까 남자의 설렘이 평정심으로 착지하고부터, 그리고 영화 하나 개봉시키고 여기저기 대학 캠퍼스에까지 진출해 강의를 하게 되면서, 상대의 그런 질문을 번거롭게 여겼단다. 익숙한 문답에 쏟는 에너지는, 수입이 생기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공공의 공간에서 소진하고, 그러니까 지난주에 부산에서 털어놓았던 카메라 뒷사정을 마치 전혀 새로운 얘기인 것처럼 전주에서 풀어내고, 어제 신이문의 강의실에서 써먹은 비유를 마치 오늘 생각해낸 것처럼 수원의 교실에서 써먹는 사이, 정작 바로 옆에서 쭈뼛쭈뼛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하며 갸우뚱거리던 소중한 사람에게는 구라를 아끼고 표정을 아끼고 뭣보다 약속을 아꼈단다. 번거로움을 무릅쓰지 않는 관계, 갱신하지 않은 미래, 줄어드는 문답, 그렇게 관계의 마일리지는 쫑이 나고.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기회들이 지나갔다. 이 친구에게는 새로 들어갈 영화 프로젝트도 있지만, 그게 대수일까. 마침 <인 디 에어>를 혼자 관람한 이 감독, 천하를 주유하던 조지 클루니가 호텔 방에 우두커니 앉아 바깥을 쳐다보는 풀숏이 남 모습 같지 않다고 한다.
여차저차 이 친구는 요새 강의를 끊었다.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한 결심이기도 하고, 실은 전만큼 강좌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다 아르바이트 삼아 사람들 앞에서 강의 비슷한 걸 해야 할 때면 문득문득 속에서 뭐가 올라온다고 한다. 이 빤한 질문들에도 이리 성실한 답을 하면서 왜 지난 연인에게는 ‘강의’를 아꼈을까, 다음 ‘커리큘럼’을 짜지 않았을까. 지금은 당신이 원한다면 특강도, 스터디도, 멘토링도, 카운슬링도, 전공 강좌도 다 맡을 수 있는데.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꼬리 늘이며 이 친구의 ‘강의’ 의사를 살피던 연인 앞에서 이제는 빙긋 빙긋 미소로 어떤 강의보다 길고 적절한 답을 하고 싶다는데.
암전. 역시 영화를 혼자 본 나는 슬쩍 일어나 비상구를 향한다. 보통 영화가 마치면 엔딩 크레딧까지 관람하고 나갔지만 반쯤 불 켜진 스크린 앞에 서서 혼자 남은 나를 앙각으로 쳐다보는 극장 직원의 시선을 외면하기가 쑥스럽다. 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라며 방금 본 영화에 대한 운을 떼던 어떤 목소리도 그립다. 강의도 사랑도 끝난 조지 클루니. 그래도 이 양반처럼 항공 마일리지라도 있으면 훌훌 어디론가 떠나기라도 하련만. 라이언을 위해 청원해본다. 그가 다시 강의를 할 수 있기를. 이제는 익명을 향해 ‘나 쿨하게 살고 있지’ 하는 괜한 도약 말고 일대일의 살가운 스터디를 할 수 있길. 다른 곳에서 카피되지 않을, 카피할 수 없는 그런 고유의 강의를 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