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집 나온 남자들>이 선보인다. 단편영화 시절의 뜨거운 주목을 지나 첫 장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논란을 지나 <집 나온 남자들>에서는 좀더 대중적인 방식의 유쾌한 로드무비를 지향하고 나섰다. 집 나간 아내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선 남편과 그 일행의 좌충우돌 로드무비.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관객이 감독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그런 가정을 해보았다. 이들의 문답으로 영화 <집 나온 남자들>을 유쾌하게 예상해보자.
[편집자] 아래 문답은 <집 나온 남자들>의 이하 감독과 기자가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를 실제로 진행한 뒤 가상의 인터뷰어를 등장시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말씨와 어조는 제멋대로 고쳐 넣은, 실제 인터뷰이면서 동시에 가상의 인터뷰임을 밝혀둡니다. 부분적으로 필요하다 생각되는 곳에 편집자의 설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입니다. 유부남이고 나이는 영화 속 지진희씨하고 비슷합니다. 영화 좀 좋아하는데요, 그냥 회사원입니다. 그래도 대학 다닐 때는 영화 동아리도 좀 했습니다. 우연히 감독님이 만드신 <집 나온 남자들>을 봤습니다. 3년간 같이 살던 아내(영심/김규리)가 갑자기 집을 나가고 남편(성희/지진희)이 친구 한명(동민/양익준)과 함께 아내를 찾으러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영화던데요,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내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뭐 그런 거지요.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본 다음 그 생각이 떠나질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무작정 감독님께 영화감상도 전할 겸 몇자 적었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은 이 영화를 왜 만드신 건가요?
=이렇게 대화를 청해주셔서 먼저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글쎄요, 그런데 왜 만들었을까요? (웃음) 이번 영화는 확실한 동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사실 그런 건 잊어버리거든요. 만드는 재미에 빠져서 주제 같은 건 잊게 됩니다. 꼭 말해야 한다면 이런 겁니다. 소소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알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진정한 일이 아닌가. 우리가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알맹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건 아닌가. 꼭 남녀 관계를 떠나서 그건 모든 관계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집 나간 아내가 “나는 이해심이 없었고 너는 이해력이 없었더라”라고 남편에게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던데요. 좀 알쏭달쏭하기도 하지만 무슨 말인지도 알 것 같습니다. 그 문장으로 뭘 말하고 싶으셨어요?
=대답을 해드리자면 그냥 시나리오를 떠나서 그런 문구가 제게 먼저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던 중에 적당한 자리를 잡아 집어넣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말이 떠오를 그 당시에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말이 특별했기에 그걸 기억해놓았다가 영화에 넣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느끼겠지만 이 말은 표현이 다양하게 달라질 뿐, 인간관계에서 많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얘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봐도 아내가 집 나간 진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들은 3년간의 결혼생활에서 계속 느껴왔던 문제가 무언가 있었을 겁니다. 물론 부부 사이의 문제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보면 어떨까요. 부부의 문제이고 남녀의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들에게 그 사연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아니라, 다른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가 안 좋아져서 어떻게 이혼을 하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보다, 서로에 대해서 정말 믿음이 없었다는 걸 뒤늦게라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겁니다. 부부의 문제에만 연연해서 문제를 풀면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좀 협소해진다고나 할까요.
-로드무비 같기도 하고 성장영화 같기도 하고 판타지영화 같기도 하고. 여하간 집 나간 아내 찾는 영화치고는 좀 유쾌한 면이 있었는데요, 감독님은 어떤 정서가 중요하셨나요?
=저 역시 밝은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아내를 찾아서 떠난다는 여행의 목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여행을 떠나는 두 남자는 각자 그들 자체로 여행이 필요한 시점이었거든요. 어쩌면 이것이 이 남자들만을 위한 여행이어도 좋겠다는 마음을 먹은 겁니다. 그런 거라면 이 여행은 그들에게 어떤 선물같은 것이지요.
초딩 지진희와 양익준의 대화법
-지진희, 양익준씨가 좀 초딩처럼 나오잖아요. (웃음) 가끔 가다 보면 되게 웃기고 한심하고 또 어떤 때는 순수하고요. 지진희씨는 원래 멋진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분 <대장금>의 그분 맞는 거지요? 근데 왜 그렇게 그리셨어요?
=지진희씨는 흔히 책임감있고 신사다운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구쟁이 같고 허술하고 때로는 마초적이면서도 철이 없는 그런 느낌을 개인적으로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그를 보면서 성희라는 캐릭터를 전적으로 창조한 건 아니지만, 만들고보니 인간 지진희와 닮은 구석이 많지 않나 싶습니다.
[편집자] 성희는 칼럼니스트이고 동민은 영화감독입니다. 둘 다 배운 지식인인 것 같은데 하는 짓이 가끔 촌스럽습니다. 성희는 동민에게 잘해주다가도 수가 틀리면 동민의 반말에 욕지거리로 응수합니다. 그럼 동민은 잠시 삐쳤다가 개의치 않고 또 까붑니다. 다음은 성희와 동민의 영화 초반에 있는 대화 한 토막입니다. “너 여의도에서 강릉까지 오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뭔 줄 아냐?” “어? 뭐 영동고속도로 아닌가?” “아니야.… 제일 빠른 방법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동행하라!!” “에이 씨발 감동시키고 지랄이야.” “흐흐흐 더 감동시켜줄까?” 그러고 나서 성희는 그날 밤 동민을 데리고 룸살롱을 갑니다. 서로 이렇게 감동시키며 놉니다. 물론 이런 면이 이들의 전부는 아닙니다.
-아내가 쓰던 휴대폰에서 전화번호를 찾아서 어떤 여자를 찾아가잖아요? 근데 가보니 술집이고 근데 그 여자는 과거에 유명한 점쟁이였고요. 이런 상상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건가요. 전 그 장면 재미있던데요.
=전체 영화의 성격이랄까요, 그런 걸 정해주는 곳으로 염두에 뒀습니다. 성희와 동민이 여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사실 다 그들도 인생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요. 이 술집 여주인도 그렇습니다.
[편집자] 성희의 아내 영심은 한때 이곳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성희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점쟁이었던 이 술집의 여주인은 이 영화의 중요한 길을 알려줍니다. 그녀는 성희와 동민에게 외자로 된 인물을 찾아라, 그러면 아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둘은 정말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심의 오빠 유곽(이문식)이 등장합니다.
-영화 중간에 유곽이라는 아내 영심의 오빠가 등장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내에게 오빠가 있는 걸 남편이 모르냐는 생각이 들던데요..그렇게 묻는 사람 혹시 없던가요?
=선생님처럼 그렇게 조심스럽게 물어오신 분은 없고요, 대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대놓고 짜증낸 분은 있습니다. (웃음) 물론 말이 안되긴 합니다만, 그때도 이렇게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건 코미디입니다, 라고. 설정은 과장이지만 그 인물이 아내 영심의 캐릭터와 닿아서 리얼리티를 갖게 된다면 괜찮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영심이 피라미드 회사에서도 일한 걸로 나오잖아요. 이 회사장면도 길게 나오고요. 이런 건 대체로 본인 경험이나 아는 사람 경험인 경우가….
=직접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야기와 방송의 고발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일단은 영심이 대학을 졸업하고 돈이 절실했을 때 여기에 휩쓸려 들어갔을지도 모를 거라고 가정했습니다. 그때 성희와 영심은 연애를 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그때도 서로 잘 몰랐던 겁니다. 성희가 생각하게 됩니다. 영심이는 그때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했을까. 그런데 이 간단한 질문에도 그는 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코미디영화이다 보니 이 장면에서는 배우 양익준의 활약상이 도드라져 보일 겁니다.
[편집자] 이 영화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 있는 장소입니다. 성희와 동민은 마음대로 이곳을 빠져나가지도 못할 처지가 됩니다. 이런 곳에 내 아내가 있었다니. 성희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게도 친구인 영화감독 동민은 피라미드 회사의 연설에 감동받은 나머지 회사의 일원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그러다 한 가지 웃지 못할 사건이 터집니다.
-그건 굉장히 웃기는 일화였습니다. (웃음)
=이 장면이 좋으셨다면 선생님께서도 쌈마이 취향을 좀 갖고 계시지 않나 싶습니다. (웃음)
깔깔대다가도 마음 한쪽이 쓸쓸한 로드무비
-말씀드렸던가요, 제가 실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도 봤습니다. 제목 때문에 야할 줄 알고 봤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웃음) 제 느낌으로는 이번 작품이 전작과 비슷한 구석도 있고 다른 구석도 있는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추구하는 영화는 어떤 것인가요?
=무엇이 변하고 변하지 않았나 하는 말씀일 텐데요, 우선 변하지 않은 건 저도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변한 건 영화가 재미있게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찍어야 한다는 게 목표였습니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영화 속 인물들도 재미있게. 영화가 그러다보니 전 작품보다 좀 쉽다고 해야 하나요, 유쾌하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변한 것 같습니다. 전작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있다는 말을 주변에서도 많이 듣습니다. 세세한 취향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사실 저도 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생각해보시고 나중에 한번 더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상한 질문이긴 한데요…. 마지막 질문으로 드리고 싶어요. 영화처럼 정말 집 나간 아내가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감독님은 뭐라고 말씀해주실 것 같나요?
=글쎄요. 실은… 해줄 이야기가 없습니다. 교훈을 주고 싶어 만든 영화는 아니어서요. 하지만 이렇게 말해드릴 수는 있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봅시다, 라고요.
-감독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단순해 보이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진실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말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깔깔대면서 영화를 보기는 했어도 마음 한쪽이 좀 쓸쓸했던 건 제가 현실에서 그런 걸 잘 못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 말고도 그런 사람들은 많겠고요. 오늘부터는 제 주변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좀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한번, 영화 잘 봤고요, 그럼 잘 지내세요.
[편집자] <집 나온 남자들>은 일종의 로드무비입니다. 길을 나서는 사람들의 영화라는 뜻이 될 겁니다. 영화의 역사에서 많은 주인공들은 길을 나설 때 삶의 질문을 안고 여행을 합니다. 그들이 머무르는 여행지와 만나는 사람들은 우편엽서의 풍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영화가 로드무비로 만들어질 때 그것을 하나의 장르로 국한해서는 안될 겁니다. 로드무비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영화적 방식 중 하나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집 나온 남자들>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