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씨 회사는 잘 다니고 계신 거죠?
=아. 네….
-엥? 이럴 땐 ‘대~~박!’하고 외쳐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정음씨답죠.
=예전엔 그랬죠. 호호. 근데… 사는 게 또 그렇게 만만치는 않더라고요. 삼류대 나와서 그래도 버젓이 시내 한복판에 사옥도 있고 전자출입증도 달아주는 기업에 취직하긴 했으니까 이 정도면 저로서는 충분히 성공한 거죠. 팀장도 됐고요. 근데….
-근데? 왜요?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집안은 괜찮아요. 아버지도 빚 많이 정리하셨고. 다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네요. 얼마 전에 팀장으로 프로젝트를 하나 맡아서 진행 중인데, 팀원들이 잘 안 따라줘요. 다들 SKY는 아니라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좋은 대학 출신들이라 그런지 제가 하는 일이 영 못 미더운가봐요.
-대학이 문제인가요. 서운대 출신으로 그 기업에 취직했을 땐 분명히 정음씨만의 장점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제 성격대로 열심히 밀어붙이면 다들 인정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젠 잘 모르겠어요. 밥벌이란… 생각보다 고단하네요.
-남자친구는 있나요?
=아뇨. 야근도 많고, 남자친구 만나기가 쉽지가 않아요. 지훈씨 떠난 이후로….
-지훈씨와 세경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땐 충격이 크셨겠습니다.
=그랬죠. 저도 충격이 컸지만, 두분 가족들의 충격은 어땠겠어요? 좀 원망스러운 건 지훈씨 누나의 반대로 장례식에도 참석 못했다는 거예요. 아니죠. 제가 무슨 자격이 있을까요. 지훈씨가 그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 저를 보러 내려오겠다고 차를 몰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가족들은 어떻게 됐나요.
=세경씨 가족은 장례 치르고 타히티로 갔어요. 그 뒤로는 저도 소식을 들은 일이 없네요. 지훈씨 가족 이야기는 가끔 준혁이한테 들어요. 지훈씨 그렇게 되고 나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지훈씨 누나는 학교생활에 적응 못하는 해리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셨어요. 준혁이는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있어요. 무슨 학교냐고요? 입시 앞두고 집안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결국 서운대 갔어요. 제 후배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다나. 짜식. (웃음)
-그럼 한옥집 가족은요?
=줄리엔은 지난해에 귀국했고, 인나는 매니저와 스캔들 나는 바람에 요즘 잠적 중이고요, 광수 오빠는 주식으로 번 돈 가지고 인터넷 쇼핑몰 개업했다가 망해서 다시 만화방에서 일해요.
-그래도 히릿은 잘 키우고 계신 거죠.
=그러고 싶었어요. 하지만 자옥 아주머니가 한옥집을 결국 파셨어요. 그러면서 저는 한 2년간 고시촌 고시원에서 살아야 했고, 어쩔 수 없이 히릿은 경기도에 사는 지인의 지인에게 입양보냈어요. 마음이 아파서 그 뒤로는 찾아가보지도 못했네요. 짜식. 좋은 공기 마시면서 잘 살고 있겠죠 뭐.
-그렇군요. 시트콤 이후의 진짜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네요.
=그래도 전 살아 있으니까. 지훈씨, 세경씨 몫까지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니까. 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나쁜 일은 이미 지나갔고, 어떻게든 점점 나아질 테니까요. 시간이, 이대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