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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가이조] 서울 뒷골목에서 탐정영화 찍겠다
2010-04-21
글 : 주성철
사진 : 이혜정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으로 방한한 하야시 가이조 감독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지금 젊은 관객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어두웠던 한·일 문화교류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영화광들은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1988)나 하야시 가이조의 <20세기 소년독본>(1989)을 은밀하게 돌려보며 감탄했다. 특히 하야시 가이조는 독특한 색채 감각과 미장센, 그리고 탐정물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으로 많은 컬트팬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한국인이라 오래전부터 한국 문화에 깊은 친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4월6일부터 18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을 찾은 그를 만났다.

-넥타이에 새겨진 숫자 5를 보니 당신의 <탐정사무소5> 시리즈가 생각난다. (웃음)
=맞다. 근데 잘 봐라. (넥타이 뒤의 지퍼를 잡아당기며) 이거 옛날에 한국에 왔을 때 선물받은 거다. 넥타이 풀었다 매는 거 불편한데 한국에 이렇게 목에만 둘러쓰고 지퍼로 올리는 넥타이가 있더라. 탐정들은 아무래도 바쁘니까 이런 넥타이가 편리하고 어울린다. 정말 놀라운 한국의 발명품이다. 전에 이거 수십개 사가지고 돌아가서는 일본에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웃음)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1986)를 흑백영화로 완성하는 게 당시 분위기에서 힘들지 않았나.
=당시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한 그 초창기의 기분으로 무성, 흑백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프로듀서나 촬영감독 등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내 주위에선 이것저것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웃음) 늘 새로운 걸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같은 흑백이라도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는 16mm, <20세기 소년독본>은 35mm, <내 인생 최악의 시간>(1993)은 시네마스코프다.

-일본영화의 전통에서 존경하는 선배 감독이 있다면.
=고등학생 당시에는 비디오가 없던 시절이니 <7인의 사무라이>(1954)를 필름 통째로 빌려서 친구들과 본 적 있다. 그만큼 구로사와 아키라는 나의 우상이다. 특히 데뷔작을 만들 때는 컷 분할이나 여러 촬영기법들을 잘 모를 때라 그가 만든 <들개>(1949)를 100번 정도 보면서 연구했던 것 같다.

-일본 추리탐정소설의 캐릭터들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나.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한 아게치 코고로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검은 도마뱀>을 무척 좋아한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쿄스케(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늘 언급되는 탐정-편집자)와 더불어 두 사람이 일본 탐정물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고, 실제로 긴다이치파와 아게치파로 나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철저히 아게치파다. (웃음) 긴다이치 소설은 재밌긴 한데 탐정 같은 모습도 아니고 늘 한 발 늦고 해서 좀 별로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을 시작으로 ‘하마 마이크 3부작’에서 하마 마이크는 어딘가 시니컬하고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어서 필립 말로우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 캐릭터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필립 말로우다. 추리소설과 탐정소설은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추리소설이 추리와 수사 그 자체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거라면 탐정소설은 그외의 탐정 캐릭터나 디테일, 분위기도 중요하다. 필립 말로우는 후자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완벽한 탐정소설의 주인공이다. 아주 오래전에 뉴욕영화제에 갔다가 극장을 무대로 탐정을 하나 심어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요코하마에 위치한 기치게키라는 낡은 영화관에 가보고는 바로 여기구나 싶었다. 원래 제목도 영감을 많이 받은 챈들러 소설의 제목을 따서 <기나긴 이별>로 하려고 했다가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했다. 그 극장 2층에 탐정사무소가 존재하는 설정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 극장이 지난해에 문을 닫았다.

-탐정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사람을 믿는 거다. 대부분의 탐정영화가 사람을 의심하는 데에서 시작하는데 나는 그 반대다. 주인공들은 사람을 믿는 것 때문에 항상 힘들다. 내 영화 속 ‘탐정사무소5’에서는 의뢰인을 가족처럼 여겨라, 진심으로 대하라, 라고 얘기한다.

-현재 계획이 있다면.
=<NHK>에서 준비하는 드라마의 각본을 쓰고 있는데, 10월경 첫 방송이 나간다. 그리고 야마다 요지가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을 하나 연출할 것 같다. 한국에서도 탐정영화를 꼭 하나 만들고 싶다. 20여년 전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굉장히 어둡고 하드보일드한 분위기를 느꼈는데 네온사인 속에 번쩍이는 한글들이 전부 암호로 보였다. 한국인들은 전혀 새로운 언어를 직접 만든 굉장히 머리 좋은 사람들이다. 게다가 동대문이나 남대문, 서울의 뒷골목을 보다보면 탐정 얘기가 어울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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