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Where the Wild Things Are
2009년 | 스파이크 존즈 | 101분
2.40:1 아나모픽 | DD 5.1 영어
한글, 영어 자막 | 워너브러더스 엔터테인먼트화질 ★★★★ 음질 ★★★★ 부록 ★★★
지난 어린이날,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상영됐다. 괴물의 등장에 놀라 우는 바람에 극장을 나가야 했던 한 아이 외에 부모와 함께 극장을 찾은 꼬마들은 연방 키득거리며 영화에 답했다. 그들은 ‘카렌 오’의 <모두가 사랑이에요>를 따라 흥얼거리며 엔딩크레딧 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힘은 대단했다. 클라이맥스에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볼 때보다 더 큰 울음을 터뜨린 필자는 이 영화가 왜 개봉이 안되고 DVD로 직행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을 읽은 사람만 불러모아도 어지간한 스코어는 나올 텐데 말이다.
센닥은 오랫동안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연출자를 물색했지만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스파이크 존즈를 발견했고, 먼저 접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존즈는 애초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됐던 영화를 라이브액션으로 바꿨다. 살아 있는 괴물의 느낌이 없으면 원작의 사실감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리뷰는 ‘평범한 수준’이라고 깎아내렸지만, 대부분의 해외 평자들은 영화에 후한 점수를 줬다. 그중 최고는 리사 슈워츠봄의 것인데, 만점을 부여한 그녀는 극중 대사를 살려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라고 평했다.
18개의 그림과 그리 많지 않은 문장으로 채워진 그림책을 어떻게 장편영화로 만들었을까? 존즈와 데이브 에거스가 ‘원작에 대한 존경’으로 각색에 임한 흔적이 영화 전체에 배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판타스틱 Mr. 폭스>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역력한데, 웨스 앤더슨이 로알드 달의 원작을 자기화한 것과 달리 존즈는 어떤 불순물도 영화에 삽입하지 않았다. 말썽쟁이 맥스가 집을 떠나 괴물들의 세계에 머물다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엔 변함이 없으며, 아이의 시선에 맞춘 이미지와 이야기는 그들이 느끼는 기쁨, 슬픔, 공포, 불안을 실로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맥스는 강아지도 무서워 피할 정도로 순수한 괴물이다. 도덕에서 벗어난 세계에서 맥스는 대단한 거짓말로 괴물들의 왕이 된다. 새 왕을 맞은 괴물들은 밤새 소동을 벌이고, 뒤엉켜 자고, 숲과 자연을 파괴하고, 함성을 지르고, 전쟁놀이를 하고, 그들만의 번듯한 요새를 만든다. 하지만 항상 즐거운 세상은 불가능하고, 불화는 언제든지 일어나게 마련이고, 모두의 상처를 다독이는 건 너무 힘들다. 게다가 이들 모두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 아니던가. 맥스의 가짜 왕, 거짓 구세주 행세는 위기를 맞는다. ‘먹는다’는 말은 존즈가 어른이 되며 떠나온 세계를 푸는 열쇠다. 아이들은 그 한마디로 으름장과 애정을 동시에 표현한다. 맥스는 잡아먹을 듯이 엄마에게 덤볐고, 괴물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왕을 잡아먹곤 했지만, 맥스는 마침내 “가지 마, 널 먹어버릴 만큼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눈물을 훔친다. 이렇듯 꾸미지 않고 동심의 세계로 정직하게 다가간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위대한 선배인 <오즈의 마법사>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결말을 나눈다. 그리고 집으로 온다는 것의 의미를 조용히 되짚어본다. 그 비밀스러운 순간을 설명하자면 ‘성장’을 넘어서는 어떤 단어가 필요할 것이다.
털북숭이 괴물 의상은 전설적인 영화인 짐 헨슨이 세운 ‘짐 헨슨 크리처숍’에서 제작한 것인데, 여기에 CG로 다양한 얼굴 표정을 더한 결과물은 놀랍도록 생생하다. 제임스 갠돌피니, 크리스 쿠퍼, 캐서린 오하라, 포레스트 휘태커 등의 목소리 연기는 꿈속 친구의 목소리처럼 들리고, 네오펑크그룹 ‘예 예 예스’의 싱어이자 한국계 뮤지션인 ‘카렌 오’는 전혀 색다른 음악으로 영화의 아름다움에 일조한다. DVD 영상과 소리는 무난한 수준이며, 랜스 뱅스가 현장의 즐거운 분위기를 기록한 짧은 영상물 네 가지(15분)를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