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명준] “추성훈 같은 동포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2010-05-21
글 : 이영진
사진 : 최성열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 연출하는 김명준 감독

김명준 감독은 5월이 끝나기 전 일본에 간다. ‘혹가이도’가 아니라 가 아니라 오사카다. <우리학교>의 속편 제작을 기다려왔던 이들에게 김명준 감독의 선택은 다소 의외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촬영을 끝내고 그를 기다린 건 민족학교가 아니라 재일동포 야구단이었다. <스포츠 춘추> 박동희 기자가 쓴 동명의 기사에서 출발한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은 1955년부터 1997년까지 모국을 찾았던 재일동포 고교야구단의 사라진 역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우리학교와 귀화까지도 받아들여야 했던 재일동포야구단은 서로 상극인 듯하지만 실은 아픈 역사를 동시에 비추는 두개의 거울이다. ‘반쪽발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조센진’ 야구단이 굳이 모국을 찾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으로 돌아간 뒤 그들에게 모국은 무엇으로 남았을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피칭에서 SMJ 문화재단의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된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의 김명준 감독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단편 작업을 많이 했다. <불꽃처럼 나비처럼> 찍고 나서 청년필름의 옴니버스 <귀> 중 여명준 감독의 에피소드를 촬영했다. <숏숏숏>에서 한지혜 감독의 프로젝트와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사이>도 촬영했고.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선후배들이다.
=글쎄.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잘했으면 모르겠는데. 잘 못 찍어서 그런지 충무로 일이 별로 없다. (웃음) 그쪽으로 인맥이 많은 것도 아니고. 곧 들어갈 <나쁜 교육>이라는 작품도 학교 후배가 연출한다.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피칭 행사에서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됐다.
=쟁쟁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많아서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 중 몇몇이 될 거다라고 응원해줬지만 준비를 많이 한 건 아니라서 받고 나서도 죄송한 마음이 더 컸다.

-직접 기획한 작품이 아닌데.
=제안을 한 건 조은성 프로듀서다. 조 프로듀서는 스포츠광이다. 중학생 때까지 야구선수 생활도 했다. 처음엔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재일동포 야구단 선수들 중엔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들이 쉽게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민단이다 총련, 그리고 또 다른 동포들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함부로 촬영하다간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생길 수 있으니 절차를 잘 밟아야 한다, 재일동포라고 해서 한국 사람처럼 대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조언을 해줬던 것 같다. 조은성 프로듀서는 알다시피 무척 열정적인 사람이다. 몇번 만나서 ‘워~워~’해준 게 전부였지. 그런데 얼마 뒤 연출 제안을 하더라.

-야구단 이야길 한다고 해서 좀 놀랐다. 축구(일본 내 조선학교의 축구 인기는 굉장히 높다)라면 몰라도.
=야구 경기를 꼭꼭 챙겨볼 정도의 팬은 아니다. WBC 정도의 경기거나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당연히 보겠지만. (웃음)

-<우리학교>의 속편 격으로 생각하던 프로젝트도 많았을 텐데.
=재일동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학교> 때는 하고 싶어도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조선학교를 지켜온 헌신적인 어머니들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홋카이도 지역 이외의 조선학교는 학교 운영에서 민단쪽 어머니들도 참여하고, 전후 이민 온 어머니들도 있고, 심지어 조선족 출신 어머니들도 있다. 조선학교가 민족학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학교> 이후 일본에서 조선학교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불러주셨는데, 그때마다 적지 않은 마음의 압박을 느꼈지만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계속 미루게 되더라. 사실 이 소재는 거저먹는 게 있다. 건방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학교> 찍을 때 다져둔 네트워크가 있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이러다 보니 자꾸 미루게 된다. 또 하나는 재일동포 1세대들이다. 총련과 민단으로 나뉘기 이전의 조선학교를 다루고 싶었다. 다만 너무 과거의 이야기라 재연과 증언만으로 현실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다큐멘터리는 한번 시작하면 3년 동안 꼼짝 못한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연출하기로 맘먹게 된 계기가 뭔가.
=피칭 전에 원안 제공자인 박동희 기자를 만나면서 마음을 정했다. 그전 3월에 스탭들과 함께 오사카에 다녀온 적 있다. 재일동포 야구단을 이끈 한재우 감독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실제로 못 만나고 돌아왔다. 사전 준비팀과 오해가 있어 화가 조금 나셨던 것 같다. 박 기자를 만난 것도 한 감독님에게 어떻게 우리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박 기자가 재일동포 야구단 혹은 재일동포 출신 야구인 중에 한국에 와서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갔거나 상처받고 돌아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사람들의 이름값을 누가 보상해줄 건가, 누군가 해야 하는 이야기이고, 당신이 이걸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리가 됐다. <우리학교>도 조선학교에 대한 애정 말고 다른 계산을 했다면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망설였던 이유가 하찮게 여겨졌다. 그전까지의 나는 욕먹어서도 안되고, 또 앞으로의 커리어가 어떻게 될지 따져보고 그랬던 것 같다.

-박동희 기자의 글을 보면 한재우 감독의 도움없이는 현지 취재가 불가능할 것 같더라.
=1차 피칭 때 심사위원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기획은 좋은데 준비된 것이 없지 않으냐고 물으셔서, 그 자리에서 맞다고 그랬다. 한 감독님을 못 만났는데 영화를 만들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었고. 5월 안에 일본에 가면 한재우 감독님부터 뵐 계획이다. 한 감독님을 설득하는 작업부터 다큐멘터리가 시작되는 셈이다. 한번 마음 주시면 다 내주시는 분이라고 박동희 기자가 말하더라. 손자처럼 굴면 결국 받아주시지 않겠나.

-<우리학교>의 인물들은 이데올로기 장벽에 가려져 있던 이들이다. 이데올로기라는 편견을 거두면 된다. 반면에 <슬픈 전설…>의 주인공들은 일본으로 귀화를 택한 이들도 많다. 스스로 숨어버린 이들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낼 것인가.
=아라이 다카히로, 가네모토 도모아키,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우리가 아는 유명 재일동포 야구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울 생각은 없다.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실현하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다. 취재에 들어가야 구체적으로 주요 인물들을 선정할 수 있을 텐데, 어쨌거나 <슬픈 전설…>의 주인공은 이름없는 영웅들이다. 어렵사리 방문한 모국에서 받았던 뜨거운 환대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십 몇년이 지나 모국 동포들에게 ‘반쪽발이’라는 수모와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이들의 아픔은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대표적인 선수가 긴조 다쓰히코인데, 그는 한국에 와서 상처를 받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곧바로 귀화했다. <슬픈 전설…>이 심정적인 모국조차 박탈당한 이들에게 자그마한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 책임이기도 하고. 자료 조사하다 보니 올림픽 양궁, 스피드 스케이팅 부문에 일본 대표로 출전한 재일동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성훈 같은 동포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등장인물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관객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나.
=한·일전 하면 무조건 한국만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걸 볼 때면 불편하다. 물론 나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진 않다. 하지만 일본사회 안의 동포들의 존재를 좀더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저 상대팀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재일동포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단적으로 재일동포들은 공항에 내리면 한국말을 잘할 수 있지만 일부러 안 한다.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같이 고민해보고 싶다.

-기사의 에피소드만 봐도 극적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이건 외려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구성을 가져갈 계획인가.
=한재우 감독님을 중심으로 명맥이 끊긴 재일동포 야구단의 친선 경기 추진 움직임이 있다. 그걸 따라가되 현재 야구를 하고 있는 젊은 재일동포 가족도 찾아볼 계획이다. 문제는 과거를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자료화면이 풍부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재연을 잘못 하면 이야기가 우스워진다. <맨 온 와이어>를 보면 재연과 자료화면을 절묘하게 결합했는데, 우리 목표이기도 하다. 박동희 기자의 글에선 결승전에 오른 재일동포 야구단이 쪽바리 소리 들어가며 결국 준우승에 머무른 1974년 봉황대기 장면이 풍부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사실 그 무렵 자료는 거의 없다. 한국쪽 자료는 <대한뉴스>가 전부일 것이다. 동포들의 방문이 1997년까지 계속됐는데, 현재로선 1990년대에 한국에 왔던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가능성도 있다.

-혹가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도 <슬픈 전설…> 연출을 한다고 말했나.
=아직 못했다. 그런데 이미 <우리학교> 팬카페에 글이 올라와 있더라. 고베에 계신 재일동포가 전주국제영화제 피칭 수상 소식을 확인하고 올려주신 바람에 한국 팬들도 알게 됐다.

-조선학교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잘 모르겠다. 사실 조선학교 상황이 좋지 않다. 가서 도와드려야 하는데 그걸 못해드리니 죄스러운 마음이다. 다만 이번 다큐멘터리 안에도 민단, 총련의 갈등이 심했던 1970년대 이야기가 있다. 한재우 감독이 재일동포 야구단 선수를 모집하면서 총련쪽 부모와 아이들을 만났는데. 당시 총련쪽 분위기는 남한에 갔다가 이데올로기 때문에 억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코미디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절실했을 것이다. <우리학교> 하면서 만났던 분들에게 도움을 청할 일도 적지 않을 듯하다.

-스포츠가 소재이다 보니 배급 방식도 <우리학교> 때와 달리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야구 인구가 엄청 많기 때문에 일본에서 정식 배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명 야구인들의 도움을 바랄 수도 있을 테고. 너무 큰 욕심을 내는 건가. <우리학교>는 사실 외국에 보내면 잘 이해를 못한다. ‘쟤들은 왜 심각한 거야.’ 우리 역사를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그때만 해도 난 그랬다. “어쩔 수 없지, 뭐.” 보편적인 관점에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의 존속이야말로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보여주지 않나. 이번엔 스포츠라는 소재가 있으니 좀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볼 계획이다.

-촬영은 언제부터 들어가나.
=인물들을 찾아내는 데만 반년 이상 걸릴 것 같다. 촬영은 내년부터 들어갈 계획이다.

-<우리학교> 때는 거의 혼자 다 했다.
=이번엔 조감독이랑 촬영 스탭이랑 정해서 간다. 야구 경기 장면은 나 혼자 찍을 수 없다. 중요 장면들은 <회오리바람>을 찍은 이형빈 촬영감독이 맡고 일상적 촬영은 나와 영상원 휴학 중인 이정민씨가 함께한다. 김정아 조감독은 여성이지만 일본어도 잘하는데다 일본 야구선수들을 줄줄 욀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야구는 내가 제일 모른다. 요즘은 그래서 스포츠 뉴스를 꼭 본다. (웃음) 일본 갔을 때 운 좋게 봄 고시엔 결승전을 볼 수 있었는데, 열기가 굉장하더라. 이번 다큐멘터리에는 야구 팬들을 위한 서비스도 어떻게든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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