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베를린] “과거는 과거일뿐, 배우로 써주세요”
2010-05-26
글 :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제60회 독일 영화상, 시벨 케킬리 <이방인>으로 여우주연상 받고 화려하게 재기
시벨 케킬리

일명 ‘롤라’라 불리는 독일 영화상도 60살 생일을 맞았다. 롤라 시상식이 지난 4월23일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타트팔라스트에서 막을 올렸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이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롤라 트로피 10개를 휩쓸었다. 또 <몰락>의 제작자인 베른트 아이힝어가 명예 롤라를 수상했다.

그럼에도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시벨 케킬리의 빛나는 컴백이다. 그녀는 <이방인>으로 독일 영화상뿐만 아니라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미치고 싶을 때>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그녀가 이번엔 페오 알라닥 감독의 데뷔작인 <이방인>의 주인공으로 영화 팬들에게 자신의 연기 신공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6년 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케킬리는 과거 포르노 배우였던 것이 세상에 드러나자 곤욕을 치른 뒤 이렇다 할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으러 무대에 올라선 그녀는 “23살에서 30살까지 역할에 관심있어요. 일하고 싶어요! 저 좀 써주세요!”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방인>은 다문화사회인 독일의 뜨거운 감자인 ‘명예 살인’을 다뤘다. 영화의 줄거리도 2005년 베를린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올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도 진출한 이 작품은 베를린에 사는 터키 이주민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과 감정 흐름 등을 밀착된 시각과 섬세한 감각으로 잘 표현했다. 주인공 우마이는 베를린의 터키 가정에서 자랐지만, 터키로 시집갔다. 거기서 어린 아들을 두고 있지만 폭력적 남편을 참을 수 없어 아들을 데리고 베를린의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부모의 반응은 냉담하다. 남편에게 돌아가라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우마이는 아들 셈과 함께 여느 독일사람처럼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리려 하지만 가족에게는 치욕이다. 가족은 우마이와 연을 끊으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화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영화는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에게 갈채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영화에 그려진 가족은 독일인들이 생각하는 명예 살인을 저지르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나름 독일사회에 잘 적응해 동화되어 사는 터키 가족이다. 영화는 명예 살인을 도모하는 가족 구성원을 가해자라기보다 오히려 희생자로 그려져 논쟁이 됐었다. 페오 아달락 감독은 터키 남편의 성을 딴 원래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제작, 시나리오, 감독까지 1인3역으로 데뷔했다.

<이방인>의 페오 아달락 감독 인터뷰

“모두가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 내용이 베를린에서 2005년에 길에서 남동생에게 총살당한 하툰 시뤼퀴의 사건과 비슷하다. 이 사건을 참조했나.
명예살인 사건들은 심리, 사회적 메카니즘, 과정이 비슷하다. 하툰 시뤼퀴의 사건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자료조사는 15년 전부터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참조해서 개연성 있는 픽션을 만들었다.

강제결혼, 명예살인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택했다.
그래서 준비기간도 길었다. 계기가 된 것은 7년 전에 오스트리아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캠페인 공익광고를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난 이를 위해 자료조사를 열심히 했었다. 그 일이 끝난 다음 감정앙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풀리지 않은 의문과 분노가 남아 있었다. 또 당시 명예살인이라는 사건이 미디어에 자주 보도 되던 시기였다. 그때 이 이야기를 꼭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가해자/피해자, 어느 특정한 민족 종교에 한정시켜 가둬두는 게 싫었다. 모든 인물들이 심리적 분열 상태를 겪으며,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터키 출신 관객과 독일 관객의 반응이 어떻게 다른가?
이 영화는 젊은 이주민 출신 관객들에게 더 어필하는 것 같다. 특히 20대 중반의 남성들이 눈물도 흘리며, 많이 공감하는 것 같아 놀랐다.

영화에서도 암시되는 독일인과 터키인 간의 '거리'가 가까운 미래에 좀 좁혀질 수 있을까?
다수집단이 소수집단도 그들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또 우리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한다. 이런 느낌이 있어야 함께 잘못된 문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양쪽이 마음을 열고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야 이런 거리가 좁혀질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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