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현수] 개선이 필요하다면 지원은 더 필요한 법
2010-05-28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한국영화아카데미 신임 장현수 원장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영화진흥공사 시절 적잖은 혼란을 빚었다. 1984년 개교 직후 학생들은 부실한 커리큘럼과 불합리한 학사운영를 질타하며 수업을 거부했다. 1997년에는 촬영전공을 신설했으나 전문교수를 확보하지 못해 비난을 샀다. 선임한 지 4개월 만에 주임교수에게 해직통고를 내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때마다 동문회가 나서 파행을 막았고, 이같은 분란은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탈바꿈한 1999년 이후에야 잦아들었다. 임상수, 허진호, 봉준호, 최동훈 등 국내 주요감독을 배출했지만,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법적·제도적 존립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아는지. 결국 이는 25년 뒤 파행의 재연으로 이어졌다. ‘지원 대신 간섭’하기 시작한 영진위는 직제개편을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의 지위를 부장급으로 낮추고, 특별한 사유 없이 3개월 동안 원장직을 공석으로 내버려두고, 책임교수의 계약기간을 월 단위로 바꾸는 등 횡포를 부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회가 시급하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영진위를 비판하고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뒤늦은 공모를 통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에 임명된 장현수(<게임의 법칙> <라이방> <누구나 비밀은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졸업) 감독에게 동문회와 영진위 간에 벌어진 최근의 갈등은 적잖은 부담일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축소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도약을 위한 비전은 갖고 있는지 신임 장현수 원장을 만나 물었다.

-양복 입고 있을 줄 알았다.
=많이 입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입지 않았다. 인터뷰할 때 넥타이 매고 머리도 좀 만지고 잘 입고 와야지 했는데, 오늘인 줄 몰랐다.

-호칭이 여럿이겠다. 감독, 원장, 부장, 선배 등.
=다들 제 맘대로 부른다.

-원장직을 맡아 출근한 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출근 자체는 귀찮긴 하다. 이런 일을 처음 해봤으니까. 몇번 지하철 타고 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시간이 충분한 날도 그냥 택시 잡아탄다. 다행히 다른 감독보다는 부지런한 성격이다. 그래서 그나마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회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첫 출근 해서 무슨 생각했나.
=졸면서 와서 잘 모르겠다.(웃음) 잘 했구나, 한다. 지원할 때까지 많이 망설였다. 중간에 지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 쪽 사람들은 영화 만들어야지 무슨 소리냐, 힘들어도 같이 버텨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만류도 많이 했다.

-원장 공모가 늦춰지면서 동문회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는데.
=공모에 응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영화계에 빚 갚는다는 생각이 컸다. 나를 키우고 먹여살린 영화계를 위해 뭘 좀 하자.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어려움에 처했다는데 도움이 되어 보자. 그전에는 동문회도 잘 안 나가고, 나가서 동문들이 복잡한 이야기하면 ‘술이나 마시자’는 쪽이었다. 그래서 동문 중 일부는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동문한테 100% 지지받은 것은 아니다.

-원장이 되기 전 대책위 입장에 동의했나.
=동문회 의견에 찬성을 했다. 관련 모임에는 한 번밖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다만,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내진 못했다.

-원장이 된 후 대책위 쪽 동문과 만났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공모 전에도 자주 만나서 조언을 들었다. 동기인 황규덕 감독을 비롯해 동문들과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했다.

-공모에 응한 다른 후보들과 비교하자면.
=내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자신있다는 건 아니고. 난 야인처럼 살아왔다. 이 자리에 잘 적응하는 사람보다는 잘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낫지 않을까 했다. 그래야 주관과 소신을 펼 수 있다고 봤다.

-문화미래포럼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이 자리를 빌려 정확히 말씀드리고 싶다. 엉뚱한 기회에 딱 한번 갔다. 현진영화사 이순열 대표가 이런저런 관계 때문에 같이 가달라고 해서 이민용 감독과 같이 갔다.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입장하기 전에 서명하라고 해서 했더니 회원이 되어 있더라. 내가 사인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정황을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관의 위상에 대해 묻겠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영진위 사무국 내로 통합됐다. 원장의 지위 또한 사무국장에서 부장급으로 격하됐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좌담회나 세미나를 통해 흘러나왔다.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까 근거가 없다. 영진위 쪽에서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식화한 적 없다고 했다. 내 입장에선 그러니까 할 거 하면 된다. 이야기한 적 없다는데 그걸 굳이 문제 삼아서 되물을 필요가 없다. 부장 직위 또한 마찬가지다. 직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거 없다. 사실 나보고 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다.(웃음) 회의하면 내 말을 조금 무겁게 받아주는 편이다. 난 내 역할 하면 되고, 부장이라고 해서 그 역할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월급이야 작아졌겠지만. 내가 잘 하면 된다. 내가 잘 해서 다음 사람 올 때까지 추락한 위상을 복원시키면 된다.

-비대위 중심으로 제기된 사안이 그다지 심각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축소와 폐지에 대한 논의가 이전에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원장을 뽑은 것은 그런 의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접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젠 뜻을 밀고 가면 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독립은 27년 전 개원 때부터 숙원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정부 쪽 요구는 영진위에 간부가 너무 많다, 팀을 좀 줄이고 전체적으로 조직을 슬림하게 하라는 내용이라고 안다. 이 과정에서 남양주종합촬영소, 한국영화아카데미 등이 사무국 관할이 된 것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대한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의 생각은 무엇인가.
=속은 잘 모르겠다.(웃음) 겉으로는 100% 동의해준다. ‘원장이 알아서 하라. 우리는 따라가겠다’ 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두고 학교다, 아니다 뭐 이런 논쟁까지 있는데, 아무래도 자율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자꾸 치이게 된다. 더 좋은 인재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서는 자율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학제는 정규과정 1년과 장편제작연구과정 1년으로 이원되어 있는데, 정규교육을 없앤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정된 건 없다. 다만, 내 사적의견은 이렇다. 강의실에서 듣는 이론교육이 큰 도움이 안 된다. 입학생 대부분이 영화공부는 할 만큼 했고, 또 단편도 찍을 만큼 찍었다. 장편제작연구과정의 경우 1년만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시나리오 개발부터 작품완성까지 1년 안에 끝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론중심의 기본교육은 6개월 정도로 줄이는 반면, 장편제작연구과정은 늘려야 한다. 전임 원장인 박기용 감독이 잘한 것 중 하나가 장편제작연구과정 신설이다. 이 과정이 좀더 결실을 맺으려면 학제개편이 얼마간 필요하다.

-학제개편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나름의 분석에서 출발했을텐데.
=현재 장편제작연구과정의 편당 제작비는 5천만원이다. 후반작업까지 합하면 1억2천만원 수준이다. 제작비가 너무 적다. 이 정도 지원으로 만드는 작품은 영화제를 겨냥하는 수밖에 없다. 흔히 한국영화아카데미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봉준호, 최동훈 감독 같은 현장인력을 배출했다는 거다. 하지만 지난 몇년 동안은 과거의 성과만큼 이루지 못했다. 산업적 인력을 키우겠다고 했는데, 잘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일정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개선이 필요하다면 지원도 더 필요하다. 현재 편당 제작비는 3억원 수준은 되어야 한다. 3억원짜리로 시장에서 30억원짜리와 경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눈에 띌 수 있는 규모는 되어야 한다. 예산확정까지 아직 한달 정도 남았으니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설득할 참이다.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씩씩한 영화를 툭툭 만드는 수준이 되면 정치적 고려 없이도 자연스럽게 독립을 위한 조건마련이 가능할 것이다.

-시나리오과가 신설된다고 들었다.
=완전히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 의견 수렴 중이다. 다들 현장에서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27년 동안 시나리오를 가르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애니메이션 연출과 경우 폐지 혹은 통합 설이 있다.
=와서 보니까 애니메이션과는 따로 놀더라. 소외감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프로듀서, 촬영, 극영화 연출은 긴밀하게 작업하는데 애니메이션과는 그렇지 못하다. 애니메이션 연출 전공의 경우 6개월 넘게 시나리오를 쓰는 데 매달리는데 정규교육 때부터 극영화 연출 학생과 같이 수업을 받으면 어떨까 싶더라. 연출개념에서 통폐합을 한다고 보면 된다. 배움이라는 것이 선생이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끼리 배우는게 더 많다. 다들 서른 살 언저리의 성인들이다. 싸우고 격려하고 토론하면서 배움이 더 크다. 강의실에서 교수들이 이건 이렇게 찍어라, 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해야 한다.

-통합의 결과 정원축소가 이뤄지는 건 아닌가.
=나 거짓말하는 사람 아니다. 축소를 의미하는 통폐합이 아니다. 정원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어울려야 서로에게서 자극을 받는다. 게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전공은 그외 대학들과 달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인력을 배출한다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통합교육이 필요하다. 1기 출신인데 같이 영화연출 공부했지만 이용배 교수처럼 애니메이션 작업 하는 이도 있다. 해당 전공 책임교수들도 동의한 부분이다. 내부적으로 논의가 마무리되면 6월 내 2011년도 입학설명회 등을 개최할 것이다.

-정부 혹은 사학들에서 중복투자라는 이유로 한국예술종합학교와의 통합을 운운한다.
=좋은 학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밥 그릇 이야긴 안 했으면 좋겠다.

-교수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도 적잖다.
=와서 보니까 6개월, 8개월 계약하고 그러더라. 내년부터서는 책임지고 2년 계약할 생각이다.

-1기 때도 적잖게 분란이 있은 것으로 안다.
=1984년 3월에 입학했는데 석달동안 강의실에서 강의만 했다. 우리가 강의 들으러 여기 왔나 싶었다. 수업 못 받겠다고 결의하고 단체로 시골에 가서 시나리오 썼다. 결국 우리가 이겼다. 다시 올라와서 바로 작품 만들었다. 당시 공사 쪽 분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는데, 우리가 그랬다. 우리가 새 술은 맞는 것 같은데 새 부대는 어딨나요. 졸업 때 무조건 10분 짜리 만들라고 해서 5분이든, 20분이든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했다. 끝까지 싸우고 나왔지.(웃음)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부산 이전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서울에 남아야 한다. 영진위와 같이 부산에 내려가라고 하지만. 내가 중앙대 나왔는데 그때도 인구분산책으로 예술대학을 안성캠퍼스로 보냈다. 공연을 해도 오지 않고, 영화 찍으려면 기자재 고치러 충무로 오가느라 시간 뺐기고. 결국 고생만 하고 다 서울로 올라왔잖나.

-법적·제도적 정비 마련도 시급하다.
=국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좀더 확인하고 추진해볼 생각이 있다.

-직원들에게 ‘칼퇴근’을 명했다고 들었다.
=짧게, 대신 집중력 있게 일하라는 뜻이었다. 직원을 영화인처럼 만들 생각이다.(웃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직원이 학생과 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사실 영진위 내부에서는 영화아카데미 일을 하게 되면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이곳을 부러워하게끔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직원들에게, 또 학생들에게 낮술을 권한다.(웃음) 공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영진위가 가장 잘 한 사업이 한국영화아카데미다.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한국영화 진흥하겠다고 한다면 가장 보람있는 자리다. 인재를 길러내는 곳에서 자부심을 못 느낀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