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위원장님의 다음 일주일이 궁금해진다
2010-05-31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외압논란부터 문광부 차관의 사퇴 요구까지, 조희문 위원장의 일주일

모든 게 일주일 만에 벌어졌다. 지난 5월20일부터 27일까지. 이 기간 동안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은 유감을 표명했고, 영화인들은 그에게 사퇴를 요구했고, 영진위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비아냥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5월27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조희문 위원장에게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한 영화인은 “영화계 사상 초유의 일주일”이라고 평했다. 조희문 위원장을 둘러싼 7일간의 상황을 정리했다.

지난 5월20일, 두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영진위 독립영화 제작지원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칸영화제 출장 중이던 조희문 위원장이 7명의 심사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작품의 접수번호를 언급하면서 조율과 밸런스를 말했다”며 이를 “외압”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한 시간 뒤, 조희문 위원장이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몇몇 작품이 1차 심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느냐고 물어보고, 또 후보에 들어갔냐고 확인한 정도다. 그런데 목록에서 없다고 하기에 좀 수정이 안되냐, 좀 살펴봐줄 수 없느냐고 문의했다. (외압인지 아닌지는) 말을 듣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내가 전화했을 때는 이미 심사가 지났을 때였다”면서 “심사위원들이 스스로 (내 전화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심사 결과 또한 공정했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민주당 최문순 의원실에서 논평을 냈다. “심사 조작 상습범 조희문 위원장은 더이상 영화계를 진흙탕으로 만들지 말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즉각 사퇴하라.” 5월23일 일요일에는 전병헌, 천정배, 김부겸, 변재일, 서갑원, 조영택, 장세환, 최문순 등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들 전원이 조희문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사태는 외압 논란에서 영화 <시> 0점 논란으로

같은 날 새벽이 되자, 조희문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5월23일 일요일 새벽, 이창동 감독의 <시>가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곧바로 <시>가 2009년 영진위 마스터영화제작지원 사업심사에서 0점을 받았던 사실이 다시 불거지면서, 영진위 홈페이지 자유마당 게시판과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 페이지는 네티즌의 성토로 채워졌다. “칸에서 상받은 영화 빵점 주고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그러지 좀 말자) “구석구석 구린내가 진동을 하네요.”(김지영) 이런 게시물도 있다. “칸이 좌빨 아니면 이창동에게 5월23일날 상을 주었을 리 없다. 정부는 칸영화제 출품을 전면 금지하고 특히 이번 심사위원장이었던 팀 버튼의 영화는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좌빨청산) 다음날인 5월24일 월요일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13개 영화단체가 조희문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합숙심사 중인 심사위원에게 특정 작품을 거론했다는 사실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본인의 출연이 예정된 작품에 대한 청탁은 파렴치한 업무상배임행위에 해당하며, 청탁시점이 심사가 이미 정리된 시점이었다는 해명은 심사위원들이 부당한 외압을 이겨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부당한 청탁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어 이틀 뒤인 5월26일, 영화진흥위원회는 마스터영화제작지원 사업심사 논란에 관해 해명했다. “당시 이창동 감독은 사업 공고시 제시한 서류 요건이었던 ‘시나리오’가 아닌 ‘트리트먼트’(시나리오의 줄거리)를 제출했다. 이러한 서류 미비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개개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평가를 하기로 하고 심사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심사위원 중 1명이 해당 작품을 제출서류 요건 미비로 판단하고 평가 점수를 0점으로 채점했다. 그러나 최고점과 최저점은 평가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심사규정에 의해 그 점수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의 제작자이자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인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씨네21>과의 전화통화에서 “지원 전에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와 다르다”고 밝혔다. “신청을 하기 전에 우리가 이번에 만드는 영화는 ‘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른 형식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대로 지원해도 되느냐고 했더니 그쪽에서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놓고 나서 형식을 문제삼아 0점을 주는 게 말이 되나.”

사실상 유인촌 장관의 사퇴 요구?

그리고 문제의 5월27일, 목요일이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영진위가 정부 예산과 기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엄정한 공정성이 요구되는데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건 행동은 매우 부적적한 처신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조 위원장이 유감 표명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는 본인이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사퇴요구인 셈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 영화정책센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구체적으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아직(5월27일 오후 1시30분) 조희문 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했다. 위원장이 따로 차관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문화부 담당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로만 보인다.” 조희문 위원장은 현재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한 영화인은 “1년 전 강한섭 전 위원장이 사퇴할 때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강한섭 전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있은 뒤 자진사퇴했고 이를 발표한 것은 유인촌 장관이었다. 장관이 말한 것과 차관이 말한 것, 그리고 공식적인 기자회견과 기자간담회의 차이지만 장관의 뜻이 없이 차관이 독단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을 리 없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날 신재민 차관은 “영진위의 지원방식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영진위의 구체적인 개선안 마련 필요성도 제기했다. “예술 중 가장 산업화된 영화의 제작을 직접 지원하는 게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영화 제작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영화촬영 시설을 비롯한 인프라에 투자하고 외국영화 촬영도 국내에서 유치하는 등 간접지원 방식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 영화계 일각에서는 조희문 위원장의 문제를 놓고 또다시 영진위 자체를 흔들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이준동 대표는 “결국 문화체육관광부의 부적절한 인사가 일으킨 문제를 두고 영진위의 시스템을 호도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어떤 방식이든 좋을 수 있지만, 독립영화계를 비롯한 영화인들과의 논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궁금한 건, 앞으로의 일주일이다. 신재민 차관의 발언 이후 조희문 위원장을 향한 사퇴압박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당장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영화인 일동은 5월28일 금요일,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조희문 위원장의 부패행위를 신고 접수한 뒤, 영진위 앞에서 조희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영화인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주무부서의 요구에 조희문 위원장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다시 숨가쁜 일주일을 보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강한섭 전 위원장에 이어 조희문 위원장까지 연이어 파행을 가져온 것에 대해 인사를 담당했던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책임공방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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