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영화제와 몬트리올의 각종 작은 영화제를 거쳐 지난 5월 드디어 개봉한 <더 트로츠키>는 사소한 일에 진지하게 인생을 거는 십대의 뻔한 성장 스토리에 가깝다. 그럼에도 궁금증이 생긴 것은 제목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트로츠키라고 착각하고(그렇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왠지 꽤 타당하게 느껴진다) 사고를 빵빵 터트리는 레온 브론스테인(이름도 어쩜 이렇게 지었는지…)을 보고 있으면 우스운 한편 눈물이 난다.
몬트리올 출신의 꽤 이름난 감독이자 각본가(게다가 배우)인 제이크 티에니- 사실은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의 제작자 케빈 티에니의 아들로 더 유명하다- 의 새 영화 <더 트로츠키>는 그의 두 번째 영화이다. 이미 여러 편의 영화에서 연기자로 얼굴을 알린 티에니 감독은 15살에 본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감독이 된 이후 그와 비슷한 주제로 십대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런데 첫 번째 초안을 쓰고 나서 읽어본 시나리오는 형편없었고 그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개봉 당시 코미디로 알려지지 않을까 하고 의심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몬트리올 서쪽 지역은 영어 사용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심지어 웨스트 마운트는 몬트리올에서 독립된 자치구를 이루고 있는 특이한 동네이다.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무수한 싸움이 반복되는 동안 웨스트 마운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에는 독립적인 자치구를 이루는데, 현재 몬트리올에서는 영어 쓰는 부자 동네로, 고상한 아줌마들이 새끼손가락 들고 아침부터 차를 마신다며 부러움 섞인 개그를 구사하게 하는 동네이다. 지금 웨스트 마운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의 말에 따르면 이름만 대면 아는 재벌가 누구누구부터 알 수 없는 부자들의 자식들이 수두룩하단다. 영화는 바로 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자신을 트로츠키의 환생으로 여겨 트로츠키의 행동 하나하나, 사상 하나하나를 따라잡고자 하는 레온의 눈물 겨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구애공세를 펼치는 에피소드는 귀여울 뿐이고 진지하게 연설 중에 새엄마는 점심 싸왔다고 소리치지 않나. 누구 하나 그를 이해해주지 않지만 이 청년 레온, 참으로 진지하다.
주인공의 새엄마로 나온 앤 마리 카듀는 몬트리올에서 유명한 연극배우이다. 다양한 장르의 연극에 출연하며 경력을 자랑하는 이 노련한 여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프랑스 지역의 영어권 가족에 새엄마로 들어온 유대인 역할로 상당히 복잡하지만 한편으론 매우 단순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 영화에 활력을 주었다. 그 밖에 조연들의 연기와 몬트리올 출신 밴드인 말라주브의 음악까지 근래 보기 드물게 몬트리올 영어영화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었다.
영어와 프랑스어, 백인과 유대인, 그리고 트로츠키. 이상한 조합으로 보일지 모르나 몬트리올이기에 가능한 이 영화. <크레이지> 다음으로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준 영화라 감히 말해본다.
고등학생 시절 나의 우상을 불러냈다
<더 트로츠키>의 감독 제이크 티에니
*이 인터뷰는 <윈저스타> <가제트> 등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트로츠키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더 트로츠키>를 쓰려고 앉았을 때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었다.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고, 고등학교의 배경은 몬트리올의 서쪽 지역이어야 했다. 그리고 레온 트로츠키를 어떻게든 이것들과 연관시키고 싶었다.-영화의 주인공에 대해 좀더 설명해달라.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인물들에 나의 성격이 조금씩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 레온은 나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런 아이들은 인기가 많은데 나는 그렇지 못해 늘 꿈꾸던 인물상이기도 하다. 레온을 연기한 제이 바루셀은 천재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상상했던 인물 그 이상을 연기해주었다. 그가 연기를 시작한 12살 즈음에 나는 이미 중견(?) 연기자였다. 그런데 그를 보자마자 성공을 예감했고 적중했다.-아역 연기자로 시작해 벌써 두 번째 영화를 찍은 감독이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감독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영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고 시나리오작가와 감독은 쉽지 않은 직업이지만 나에게 이 일들은 자연스럽고 즐겁다.-다음 영화에 대한 계획이 있나.
=<노트르담 드 그라스>(몬트리올의 동네 이름 중 하나)를 지금 편집 중이다. 제이 바루셀이 또 출연한다. 퀘벡 분리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1995년 겨울이 배경이며 블랙코미디다. 또 지금 각색 중인 아버지(케빈 티에리)의 감독 데뷔작인 <굿 테러리스트>에서 배우로 직접 출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