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형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죠
2010-06-08
오리지널 하녀 역의 이은심이 브라질에서 보내온 편지

“하녀를 데려왔어요. 바보 같긴 하지만 기숙사에서 일은 그만이었어요.”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에서 ‘하녀’에 대해 설명해주는 문장은, 엄앵란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종알거리는 저 문장뿐이다. 이후 우리는 하녀의 기이한 행동과, 눈알을 굴리고 입술을 뾰족하게 내미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과, 손짓과 몸짓의 리듬감을 통해서만 그녀를 추측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하녀만큼이나 하녀를 연기했던 배우 이은심 역시 거대한 수수께끼였다. 그녀는 <하녀>를 찍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과 함께 이민을 갔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모호한 관능의 대상’이자 파격의 연속이었던 배우, 이은심을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만큼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꿈같은 만남이었다. <하녀>의 재개봉을 맞이하여, 현재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는 이은심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아마 그런 놀라움은 우리에게만 적용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배우 이은심의 딸이 보내온 메일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엄마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일을 하셨구나, 이런 면도 있으셨구나 싶었습니다. 여러 면의 엄마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뷰에 관해서 얼떨떨해하시고 겸연쩍어서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좋은 기억을 잠시나마 되살릴 수 있게 해주신 영화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본명은 ‘서옥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은심(李恩心)이라는 예명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을 담아 지으셨는지요? =데뷔작 <조춘>의 주인공 이름이 은심이었습니다. 유두연 감독님의 의견에 동의하여 이은심이란 예명을 지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어떤 10대 시절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무척 가난하기도 했지만, 일본과 미국영화가 무더기로 쏟아져들어오며 새로운 문물이 젊은이들을 많이 바꿔놓은 시기였을 것 같은데요. =일본에서 귀국해 늦게 학교생활을 했기에 10대 소녀 시절은 특별히….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자료를 보면 선생님이 아직 여학생이던 시절, 백화점이나 다방에서 마주친 감독님들이 첫눈에 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어하셨다더군요.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었던 건지, 그때 당시 선생님의 모습이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가냘픈, 가련한 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약한 소녀…?

-원래부터 배우가 되려는 생각이 있으셨나요? =배우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김기영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전해왔기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막연히 짐작만 하던 연기와 실제 연기 사이에서 많은 차이를 느끼셨나요? =그저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습니다.

-김기영 감독님과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그 이후 <청춘일기> <슬픈 목가>에 참여하면서 배우의 입장에서 본 김기영 감독님은 어떠했나요? =우연히 친구와 다방에 갔다가, 안성기씨 아버님이 그 당시 김 감독님의 제작담당을 하고 계셨는데 그분을 통해 김 감독님과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굉장히 다른 감독님이셨어요. 여타의 감독님들과는 달리 언제나 직접 연기를 하면서 지도하셨습니다.

-처음 <하녀> 캐스팅 제안을 할 때, 감독님은 어떤 식으로 영화를 설명하셨나요? =영화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으셨고, 시나리오를 잘 읽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하녀’라는 캐릭터에 대해 김기영 감독님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했던 건 어떤 건가요? =감독님은 이 영화에서 하녀는 ‘인형이 되어야만 한다’고 하시면서 손수 연기해 보이셨습니다.

-김기영 감독님은 배우들의 연기수업에도 굉장히 공을 들였다고 들었습니다만. =촬영현장에서 몇번이고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될 때까지.

-‘하녀’는 지금 보더라도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캐릭터입니다. 이은심 선생님께서는 하녀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셨는지요. =어떻게 이해한다기보다는 어떻게 적절한 연기를 할 수 있을까를 더 염두에 두었습니다.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습니까? =마지막 장면입니다.

-김진규 선생님, 주증녀 선생님 등 대선배들과 기싸움을 벌이는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신인이었기 때문에 선배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해도 해주시고요.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녀> 개봉 당시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유명합니다. 이은심 선생님과 하녀 캐릭터를 혼동하며 벌어진 소동 속에서 갓 스물이 넘은 신인배우로서는 많이 힘들셨을 것 같아요. =소동이라기보다는… 반면에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녀>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하녀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다른 영화 출연이 힘들 정도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하녀>를 계기로 출연 요청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택했습니다.

-결혼 뒤 이민을 가셨는데요. 가까운 나라에 계셨다면 다시 돌아와서 연기 활동을 재개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그런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먼 나라로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은 없었습니다.

-김기영 감독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 같습니다만. =김기영 감독님이 돌아가신 소식은 오늘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섭섭합니다. 그동안 한국에 관한 소식을 별로 듣지 못해서…. 이번 새 <하녀>도, 조카가 인터넷을 보다가 어렸을 때 본 어렴풋한 영화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국과 연락이 되었어요.

-90년대 중반 이후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들이 재조명되면서 특히 <하녀> 시리즈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셨나요? =모르고 있었습니다.

-올해 <하녀>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은 언제 접하셨습니까? 한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프랑스의 칸국제영화제까지 진출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게다가 전도연이라는 우리 시대의 걸출한 배우가 하녀 역을 맡았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리메이크 소식은 20일 전에 알았습니다. <하녀>가 국제영화제에 진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니 너무 기쁩니다. 전도연이란 배우의 영화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기회가 되는 대로 꼭 한번 보겠습니다. 훌륭한 배우가 하녀 역을 맡아서 기쁩니다.

-근황이 궁금합니다. =한국 TV는 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브라질 TV를 즐겨봅니다. 이번 기회에 한국쪽 방송도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려고요. 손자, 손녀들이 한국영화나 쇼, 코미디의 팬입니다. 방학 때마다 한국을 방문하고. 연예인들도 만납니다. 한국을 아주 좋아합니다.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고, 다들 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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