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UFO를 기다리던 소년, 아직 있다, <천사몽>의 여명 黎明
2001-03-03
글 : 최수임

한번 만난 남자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게 허락된다면, 여명은 소년의 호기심을 키워가는 남자라 말할 수 있다. 그를 만난 곳은 그가 묵고 있던 호텔 룸의 거실. <천사몽>이라는 꿈같은 제목의 영화에서 한국남자로 분한 여명은 일요일 저녁 계속된 인터뷰에 조금은 지쳐 있었다. 하지만 인사를 건네니 곧 파란 광택성의 점퍼를 걸쳐 입고 SF얘기를 꺼냈다. 영화에 나오는 대로 ‘전생’을 물었을 뿐인데 말이다. “친구들과 수다떨 때 UFO얘기를 잘 해요. 공상과학에 관심이 많거든요. 6년 전 친구와 내기를 한 적 있죠. 10년 안에 공중에 떠서 달리는 차가 나올까 안 나올까 하는 거였고, 홍콩달러로 10만달러를 걸었어요. 제가 이기겠죠?” 공중을 달리는 차라거나 외계인의 비행접시를 얘기하며 ‘판타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여명. 생소한 한국영화 <천사몽>에 출연하게 된 것도 그의 이 호기심 때문이었다.

<천사몽>에서 여명은 현생에서는 비밀경찰 성진, 딜문에서는 무사 딘으로 움직인다.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수자리”라는 그는 <천사몽>에서의 경찰이 “예전엔 해보지 않은, 전생을 경험하는 경찰”이라, 그 “새로움”에 이끌려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사전작업이 담긴 CD-ROM을 보내오고, 콘서트장에 감독이 찾아오는 등 제작진에서는 ‘삼고초려’를 한 편이지만, 여명은 “전생이라구요? 그거 처음이에요” 하고서는 선뜻 성진이 되어버린 것이다. 번지점프라는 게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5년 전 뉴질랜드에 가서 “300척” 높이에서 뛰어내렸을 만큼 그는 안 해 본 걸 해보고 싶어하는, 재밌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디스 주세요”, 인터뷰 도중 그가 매니저에게 한국담배를 찾았다.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한국어에도 열심이라던데, 그의 ‘친한국’ 취향은 상당히 몸에 밴 것 같았다. 연기할 때 가장 노력을 많이 기울인 것도 “완전하게 한국사람으로” 연기하려 한 것이란다. “3, 4년 전만 해도 이 영화를 못 했을 거예요. 그동안 한국사람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죠. 한번은 컨테이너 안에서 웅크리고 모여 앉아 한국음식을 먹었는데 그런 느낌이 저는 좋아요. 대사를 한국인과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유감’이에요.” 한국어 대사를 위해 말 공부를 많이 했고 <천사몽>의 주제가도 직접 한국어로 부른 여명은 자신과 성우, 두 가지 버전으로 더빙이 마련돼 있는 것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하나를 살리자면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하는, 그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작은 모순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발음이 어색하면 그것 때문에 관객은 웃을 수 있겠죠. 하지만 거꾸로, 제 목소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굴과 맞지 않는 목소리 때문에 의아할 수 있을 거예요.” 성우의 목소리로 상영되는 <천사몽>을 뒤로 하고 여명은 홍콩에 돌아가 일본과 홍콩 합작인 <불사정위> 촬영에 들어간다. “영화 찍는 일은 늘 기다림의 연속이죠. 그 속에서 배우는 아이스크림이에요. 녹아서는 안 되는 아이스크림 말이에요.” 아이스크림을 녹지 않게 하는 그만의 비결을 찾아서, 그는 언제나 소년처럼 새로운 여정에 오를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촬영에 따로 응하지 않는다는 소문과 달리 기자의 부탁에 그는 호텔 방 이곳저곳을 다니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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