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도쿄] 일본도 ‘나쁜 결말’이 먹힌다?
2010-06-23
글 : 정재혁
<키네마준보>가 “충격, 문제작”으로 표현한 <고백> 흥행몰이

일본에 돌연변이 흥행바람이 불고 있다. 6월5일 개봉한 나카지마 데쓰야 감독의 신작 <고백>이 개봉 주말 이틀 동안 1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흥행수익 2억7천만엔. 7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쳤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파코와 마법사의 그림책>으로 이미 흥행력을 입증한 나카지마 데쓰야 감독이지만 <고백>은 다소 실험적인 구성과 파괴적인 결말로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큰 흥행은 힘들 거라 점쳐졌던 작품이다. 하지만 <고백>은 개봉 2주차에도 1위 자리를 지키며 6월15일 현재 흥행수익 10억엔을 넘었고, 배급사인 도호는 목표치를 25억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고백>처럼 어둡고 차가운 톤의 영화가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건 무척 드문 예다. 꾸준히 성공하는 TV시리즈 애니메이션 극장판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에선 가족관객 시장이 크다. <데스노트> <꽃보다 남자> 등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도 대다수 희망적이고 밝은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고백>은 밝고 어둡고를 떠나 결말의 방향 자체를 뒤흔드는 영화다. 2008년 책방대상 대상을 수상한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반 학생에게 딸을 살해당한 여교사의 복수 이야기다. 설정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감독은 여교사와 학생들의 모놀로그로 진행되는 소설 방식을 충실히 살려 시점을 바꿔가며 영화를 완성했다. 여교사의 고백, 이어지는 학생들의 고백을 엮어 살인과 복수라는 비참한 결과가 어떻게 초래됐는지 파고든다. 그리고 마지막. 원작과 달리 영화에 추가된 여교사의 대사는 지금까지의 고백조차 의심하게 할 만큼 이야기 전체를 뒤흔든다. 일본의 영화전문지 <키네마준보>는 <고백>을 “올해 첫 충격, 문제작”이라 표현했다.

문제작이자 흥행작. 일본영화 관객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고백>을 프로듀싱한 도호의 가와무라 겡키는 “<살인의 추억> <추격자>가 한국에서 성공하고, <다크 나이트>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나쁜 결말’(Bad Ending)을 선호하는 관객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 개봉한 드라마 <트릭>과 <라이어 게임>의 극장판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대중 오락영화를 지향하는 도호도 ‘문제작’들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가와무라 겡키 프로듀서는 “관객 의식이 일정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고 모든 영화를 거기에 맞춰 만들어선 안된다”며 “도호에서도 주류와 다른 영화들을 계속해서 제작할 계획”이라 말했다. 가와무라 프로듀서가 참여하는 도호의 다음 작품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상일 감독의 <악인>이다.

나카지마 데쓰야 감독의 전작 <불량공주 이야기>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파코와 마법의 그림책>을 생각하면 <고백>은 영화의 톤이 어둡다. 여교사를 연기한 마쓰 다카코의 무표정한 연기, CF 감독 경력을 충분히 살린 압축된 표현과 쉴새없이 교차되는 편집은 영화에 건조한 공포감을 준다. 이야기 자체는 잔혹사여도 영화의 톤은 가볍고 밝았던 전작들과 대조되는 지점이다. 나카지마 감독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대신 층을 두고 쌓아간다. 시작과 끝이 완결한 이야기가 아닌 불균질한 조각 수십개를 던지는 식이다. 이 시도는 나카지마 감독이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성취로 다소 실험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 관객이 이 새로움에 반응했다. <고백>은 2010년 6월 현재 유일하게 자국 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일본 극영화가 됐다. 다른 일본영화로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인어대해전>뿐이다. <고백>을 계기로 정말 일본엔 ‘나쁜 관객’이 나타난 걸까. 그 관객의 행보에 일본 영화계가 들썩인다.

관객도 인물들의 말을 의심해주길 바래

Q.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A. 1년 전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다시 읽엇다. 너무 재밌어서 최근 가볍기만 한 일본 소설이 못마땅했다. 그러다 우연히 <고백>을 읽었는데 매우 자극적이며 재밌더라. 그러고 나서 운좋게도 영화로 하지 않겠냐는 의뢰를 받았다. 우연히 참 많이 겹쳤다.

Q. 처음부터 마쓰 다카코를 여교사로 생각했나

A. 원작을 읽었을 때 마쓰 다카코가 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각본을 쓰기 전에 마쓰 다카코에게 이야기를 해봤는데 본인도 재밌겠다고, 하겠다고 했다. 예전부터 마쓰 다카코 팬이기도 했고. TV드라마보다 연극을 보면서 재밌는 여배우라 생각했다.

Q. 여교사 모리구치 역할은 어떻게 접근했나

A. 소설 읽었을 때 모리구치란 사람을 잘 모르겠다 싶었다. 근데 그게 재밌었다. 모두들 고백이란 형태로 많이 떠들고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자신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모리구치도 딱히 캐릭터를 정하기보다 보는 사람에 의해 느껴지는 게 다른 영화를 하고 싶었다.

Q. 연출하면서 갖고 있던 나름의 기준은 뭐였나

A. 캐릭터가 인간으로 보이는가, 아닌가. 인물들의 행동이나 발언만 보면 이들은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말하는 거, 행동하는 것과 사람의 본질은 다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상정하고 연출했다. 그냥 모두 무서운 괴물들의 이야기로 끝나버리면 재미없다.

Q. 영화의 포인트라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대사 마지막에 자주 붙는 ‘그러거나 말거나’다

A. 인간이란 존재가 속내를 그렇게 잘 말하지도 않거니와 본인은 정직하게 말하려 했는지 모르지만 어딘가 자기정당화를 하곤 한다. 그런 말의 뒷면, 실제 말한 것과 다른 마음을 읽어내지 않으면 등장인물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관객도 인물들의 말을 좀 의심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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