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딕]
[무비딕] 사랑은 144년 징역형을 낳고
2010-06-23
글 : 장영엽 (편집장)
기상천외한 사기스캔들 <필립 모리스>의 진실은

Q. 영화 <필립 모리스>가 실화라면서요?
A. 네, 실화 맞습니다. <필립 모리스>는 현재 텍사스주의 미가엘 감옥으로부터 14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미국의 스티븐 러셀이란 범죄자의 삶을 다룬 영화이지요. 러셀은 판사, 의사, FBI 요원, 회사 이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위조해 수십만달러를 횡령하고, 종종 대담한 탈옥에 성공해 ‘사기꾼 왕’(King Con), ‘탈옥의 귀재’(Houdini)라 불렸습니다. 그는 아이큐 163에, 감옥에서 <뉴욕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이코노미스트>를 두루 읽는 지성인이라 합니다. 또 다른 탈옥을 위해 지식을 비축하는 걸까요? “아니, 전 다시는 그런 일에 저 또는 다른 사람이 뛰어들게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러셀이 말하기는 합니다만, 이 말을 믿어야 할지는 의문이네요. 1993년, 해리스 카운티 감옥에서 탈옥할 때도 그는 이런 말을 남겼었죠. “전 탈옥한 것이 아니에요. 간수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전 밖으로 나갔을 뿐입니다.”

Q. 그런데 영화 제목은 왜 <필립 모리스>인가요?
A.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건 필립 모리스란 이름을 가진 러셀의 애인이 그의 사기행각에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죠. 러셀과 모리스는 1990년대 초, 텍사스주 해리스 카운티 감옥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러셀은 모리스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첫눈에 반했지요. (중략) 나는 책을 빌리기 위해 감옥 법률 도서관에 갔다가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키가 작았어요. 그는 152cm, 나는 182cm였죠.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기다려, 내가 너의 방으로 갈게.’ 우리는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1995년 함께 가석방된 이들은 휴스턴에서 달콤한 동거를 시작했는데, 러셀은 모리스와 호화롭게 살기 위해 의료보험회사의 재정이사로 위장해 80만달러를 횡령한 뒤 발각돼 다시 감옥에 들어가죠. 그러나 러셀은 모리스를 만나기 위해 의사로 변장한 채 탈옥을 시도하고, 이에 성공합니다. 이후 또다시 붙잡혀 65년형을 받은 뒤에도 러셀은 모리스가 다른 감옥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감방 안에서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애쓰죠. 수차례의 사기 행각과 탈옥 시도가 이어진 뒤, 스티븐 러셀은 마침내 144년형을 받고 하루 23시간 독방에 감금되는 형벌을 받습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러셀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필립과 함께 있고 싶었으니까요. 전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답니다.” 이 낭만적인 범죄자는 낭만적이게도, 매번 13일의 금요일에 탈옥을 시도했습니다. ‘13일의 금요일’은 필립 모리스가 태어난 날짜와 요일이었습니다.

Q. 도대체 필립 모리스가 어떻기에 스티븐 러셀은 일생을 바쳐 그를 사랑했을까요. 그의 외모가 궁금해요.
A. 필립 모리스는 대체 어떤 남자일까요. 저도 궁금했습니다. 스티븐 러셀이 말하는 필립 모리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봅시다. “파란 눈의 금발 게이. 그는 아주 현명했고 낚시와 사륜 자동차 모는 걸 좋아했지요. 모리스는 바흐와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클래식을 즐겨 들었습니다….” 언뜻 영화에서 필립 모리스를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스티븐 러셀은 <필립 모리스>를 본 뒤 연인의 말투나 행동을 이완 맥그리거가 무척 흡사하게 재현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런데 반갑게도 우리는 더이상 필립 모리스를 상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리스는 자신의 이름을 물려받은 영화에 찬조 출연했으니까요. 러셀이 변호사로 위장해 모리스를 변호하려는 바로 그 장면에서, 러셀 역을 맡은 짐 캐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전설의 필립 모리스입니다. 모리스는 카메오 출연과 더불어 <필립 모리스>의 제작에 조언자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