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가난하면 축구도 못한다고? 랑숭랑숭 잘만 하더라
2010-07-01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동티모르에서 김태균 감독은 <맨발의 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김태균 감독과 영화의 실제 모델인 김신환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 감독은 2006년 처음 만났다. ‘뭐 하러 나 같은 사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십니까’라는 김신환 감독과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함께 그 길을 걸어가봅시다’라고 말하는 김태균 감독의 힘겨루기에서 김태균 감독이 이겼다. 2005년, 우연히 TV를 보던 김태균 감독은 동티모르를 소개하는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김신환 감독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TV에서 잠깐 봤는데 김신환 감독이 굉장히 궁금해졌어. 혼자 콘크리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부르스타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저 더운 곳에서 애들 데리고 뭐하나 싶더라고. 감동이 있었어.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기보다는 그냥 김 감독을 만나보고 싶었어. 그게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지.”

김신환 감독의 감동 스토리를 가슴에 담아둔 지 1년쯤 지난 2006년, 김태균 감독은 동티모르 유소년축구단을 위한 후원회를 결성한다. 그리고 그해 12월 동티모르로 향한다. 동티모르에서 김신환 감독을 만난 김태균 감독은 그의 ‘인생 풀 스토리’를 듣는다. 김태균 감독은 김신환 감독의 인생을 간단히 정리했다. “돈 벌려고 욕심 좇아다니다가 망한 거지.” 동티모르까지 흘러들어간 것 자체가 이미 “인생 막장”이란 얘기다. 김신환 감독은 1980년대에 해군과 현대자동차팀에서 축구선수로 뛰었다. 선수생활을 접고는 도박에 빠져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 6개월 징역형도 산다. 친구의 사업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떠난 인도네시아에서도 김신환 감독의 삶은 잠깐의 희망, 긴 절망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인 몇번의 사업은 모두 실패했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흘러흘러 동티모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딛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망을 본다. 바로 맨발의 아이들이다.

김태균 감독은 김신환 감독이 “지금도 돈 없어 쩔쩔맨다”고 했다. “이 양반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서 만날 나한테 전화하거든. 서울 가야 하는데 후원금 모였냐고. 그럼 ‘지난번에 다 써서 없어요’ 내가 그러지. (웃음) 그래도 요즘은 행복하시지.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으니까. 어쨌거나 아이들 때문에 김신환 감독도 꿈을 꾸게 됐고, 새 인생 살게 됐잖아. 그분은 아이들이 자기를 구했다고 하더라고.”

오디션 불발… 축구팀 아이들 연기지도

동티모르는 가난한 나라다. 16세기 초반부터 450여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고, 1975년 포르투갈이 물러간 자리엔 인도네시아가 들어앉았다. 1976년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언한 동티모르를 무력으로 합병했다.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된 때는 2002년. 동티모르는 21세기 첫 독립국이 됐다. 그러나 독립파와 인도네시아 지지파 사이의 갈등은 계속됐고, 2006년에는 내전을 겪었다. 동티모르에서 동티모르의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어야 했던 김태균 감독은 동티모르 외교관이 다 된 것처럼 말했다. “나도 무식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무식해. 우리 군이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 보냈다가 작전 수행 중 5명이 죽었어. 급류에 휩쓸려서. 그런데 모르잖아. 동티모르가 아프리카 옆에 붙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라. 동티모르에선 호주와 인도네시아가 강대국이야.” “동티모르엔 고통의 순간이 너무 많았어. 동티모르 사람들은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안 웃어. 무섭지. 왜냐하면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동티모르 마을 사람들 앞에서 반인도네시아 세력들을 죽였던 거야. 자기 삼촌이 죽어도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거지. 나도 죽을지 모르니까.”

“어쨌거나 눈높이를 낮춰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김태균 감독은 이 영화가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결론지었다. 재미있게도 김신환, 김태균 두 김 감독에게 꿈을 선물한 것은 동티모르의 아이들이었다. <맨발의 꿈>은 2009년 11월 첫 촬영에 들어갔는데, 아이들 캐스팅 과정이 관건이자 난관이었다. “조감독이 한달쯤 먼저 동티모르에 가서 촬영준비를 했거든. 얘가 자꾸 절망적인 얘기만 전화로 들려주는 거야. ‘감독님, 애들이 안 와요. 연기가 안돼요. 할 만한 애들이 없어요.’ 만날 우는 소리만 했지.” 오디션 현수막을 내걸어도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애들이 영화는 알아. TV에서 영화를 본 적은 있어 아는데, 영화배우가 된다는 것, 오디션 개념이 없는 거지. 그런데 보니까 우리 애들(김신환 감독 유소년축구팀 선수들)이 잘하는 거야. 김신환 감독님이 가르치는 11살짜리 애들을 연기연습 시켰어. 어느 순간 얘들이 연기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20명쯤 데리고 연극학교를 운영했어. 역할놀이로 감정을 끄집어내니까 연기가 나오더라고. 나중에는 자기들이 대사도 바꿨어. (웃음)” 김태균 감독은 “어떻게 얘네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니. 타고난 애들이다, 준비된 애들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헤드록 눈물과 여배우의 코딱지

현란한 드리블을 선보이는 축구신동 라모스(프란시스코), 라모스의 라이벌이자 덩치 큰 모타비오(페르디난도), 몸이 왜소해 축구팀에 발탁되지 못하는 투아(주니오르), 투아의 여동생 조세핀(말레나)은 김원광 역(현실의 김신환 감독)의 박희순과 함께 영화를 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들이다. 라모스, 모타비오, 투아, 조세핀의 모습엔 동티모르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게 연기한다. 마치 생활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처럼 표정과 몸짓이 자연스럽다. 사실 이런 건 있었다고. “모타비오는 사실 말랐어야 했어. 그런데 걔가 연기를 제일 잘해. 그래서 영양실조가 아니라 영양 불균형으로 설정을 바꿨어. (웃음)” 연기지도의 답답함도 물론 있었다. “통역을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지. 나중에는 말이 안 통해도 다 알아듣게 돼. 애들이 한국말도 간단한 단어들은 알아들어. 눈치가 빨라. 그래서 뭐래는지 답답하지도 않고. 얼굴 보고 웃고 있어. (웃음)”

오히려 아이들이 너무 웃어 문제였다.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준비하던 원광이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다 경찰서에 붙들려 있는 라모스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맨발의 꿈>에서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장면 중 하나다. 김원광을 믿고 따랐던 아이들은 울면서 “미스터 킴, 가지 마세요”를 합창한다. 그런데 촬영현장에선? “이놈의 새끼들이 못 울어가지고… 더운데 오래 서 있으니까 머리 아프다고 주저앉는 거야. 찍긴 찍어야 하고, 덥긴 덥고. 그래서 감정 잡을 틈이 없었어. 진짜 감정 잡고 울 수 있는 애는 조세핀밖에 없어. 나머지는 돌아서면 킥킥거려. 사내놈들은 우는 건 죽어도 안되는 거야. 헤드록을 해도 안돼. (웃음)”

눈물 연기를 뚝딱 해내는 조세핀은 또 다른 이유로 김태균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고 한다. “조세핀은 정말 공주야, 공주. 자기가 예쁜 걸 알아. 걔 때문에 미쳐. (웃음) 여배우의 모든 걸 다해. 어떤 거냐면 박희순이 오면 웃어. 여자 스탭이 옷 갈아입히려고 하면 아는 척도 안 해. 영화에서 조세핀이 우는 장면도, 찍기 싫어서 우는 걸 그냥 찍은 거야. 하품하는 것도 오래 앉아 있어서 지겨워 하품하는 거 찍은 거고. ‘카메라 돌려, 지금 좋다’ 그렇게. 또 분장하는 애가 와서 이러는 거야. ‘감독님, (조세핀) 코딱지 뺄까요, 놔둘까요?’ 그래도 여배우인데 빼라 그랬지. 재밌었어.”

아이들의 10년 뒤가 궁금해

사실 아이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동티모르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낮에 일을 안 해. 너무 더워서 시에스타(오후의 낮잠)가 있다고. 처음엔 시에스타가 뭐가 필요한가 싶었지. 걔네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라가 발전을 안 하는 거라고. 그런데 진짜 필요하더라고. 그렇게 일하면 죽어. 대낮에 뛰어다니는 건 미친놈들이야. 그런데 우리는 해가 있어야 찍잖아.” 머리가 탈색될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동티모르에서 촬영팀은 물론 아이들까지 전투하듯 영화를 찍어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리듬을 쫓아왔다”고 한다. “동티모르는 약속이 안되는 나라야. 2시에 약속했는데 3시 반에 나타나도 전혀 미안한 기색 없고. 그런 사람들 데리고 스케줄대로 영화를 찍었다는 게 대단하지. 첫 촬영 때 애들한테 아침 7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안 올까봐 진짜 걱정했어. 걔네들이 매니저가 있어 누가 있어. 그래서 정신교육을 많이 시켰어. (웃음) ‘이 일은 굉장히 중요한 거다. 한명이 빠지면 게임을 못 뛴다. 시간약속 정말 잘 지켜야 한다’고.”

영화 속 박희순의 대사를 흉내내 <맨발의 꿈>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맨발의 꿈>은 관객의 마음에 ‘랑숭랑숭’ 다가가는 영화라고. 랑숭랑숭은 ‘바로바로’라는 뜻의 테툼어(동티모르 공용어)다. 동티모르 아이들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 아이들과 함께 꿈을 꾸는 한 어른의 진심이 <맨발의 꿈>에 송글송글 맺혀 있다. 그래서 <맨발의 꿈>은 거리두며 영화감상하기를 용서치 않는다. 마음에 랑숭랑숭 꽂히는 영화라고 얘기한 건 그래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라모스, 모타비오, 투아, 조세핀의 미래가 영화의 기운만큼 희망적이길 바라게 된다. 김태균 감독은 말했다. “그 아이들의 미래가 궁금해. 이번 영화 경험이 애들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어떻게 성장하게 될지, 아이들의 10년 뒤가 굉장히 궁금해.” 영화의 안과 밖이 흥미롭게 연결되는 <맨발의 꿈>은 김태균 감독의 세계뿐만 아니라 동티모르 아이들의 세계도 확장시켰다.

편집 신두영 디자인 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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