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dvd] 제임스 그레이의 우아한 사랑방정식
2010-07-16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투 러버스> Two Lovers(블루레이)


2008년 / 제임스 그레이 / 110분
2.35:1 아나모픽
DTS-HD 5.1 영어 / 영어 자막
매그놀리아홈엔터테인먼트(미국)
< 화질 ★★★★ 음질 ★★★★ 부록 ★★★ >

제임스 그레이는 유럽이 더 사랑해온 감독이다. <비열한 거리>(Little Odessa)는 선댄스영화제에 등장하기에 앞서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었고, 칸영화제는 <더 야드>와 <위 오운 더 나잇>을 연거푸 초대하며 애정을 표했다.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나란히 수상한 피터 잭슨이나 1995년의 선댄스키드와 비교했을 때 그레이의 행보는 별스럽다. 미국 독립영화의 새 경향을 따르기보다 프랜시스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같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선배를 흠모한 범죄영화가 유럽 평단의 지지를 얻은 건 당연했으나, 그 결과 그레이는 6년 혹은 7년 간격으로 드문드문 신작을 발표했을 따름이다. <위 오운 더 나잇>을 연출한 뒤 그레이는 또 다른 길을 걷는다. <위 오운 더 나잇>의 제작사가 재빠르게 차기작을 제안하는 바람에 그는 1년 안에 새 영화를 내놓았고, 기존의 작품세계에서 방향을 튼 <투 러버스>는 대서양 양쪽의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얻는 데 성공했다. <투 러버스>는 그레이의 성숙이 작품 전체에 배어 있는 걸작이다.

겨울날 나무다리 위를 걷던 남자가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돌아온다. 애타는 부모는 그의 병이 심해졌을까봐 걱정이다. 레너드는 조울증에 걸린 남자다. 약혼녀와 헤어진 뒤 상심에 빠진 그는 몇번이나 자살을 실행에 옮겼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사업 동료의 가족을 초대한 날, 레너드는 차분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소개받는다. 다음날, 양가의 기대 아래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려는 레너드 앞으로 매력 넘치는 이웃 여자가 나타난다. 첫눈에 두근거림을 느낀 레너드와 달리 유부남과 연애 중이며 마약에 손을 대는 그녀는 그를 친구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투 러버스>에는 더이상 갱스터가 나오지 않지만, 여기서 기억해야 할 건 그레이의 영화가 줄곧 다루어온 주제가 범죄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유대인 가족’에 더 깊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귀향한 킬러는 병에 걸린 어머니를 보기 위해 나쁜 애비와 타협하고(<비열한 거리>), 모함에 빠진 범죄자는 어머니에게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고(<더 야드>), 조직의 남자는 경찰로 순직한 아버지의 직업을 잇기로 결심하고(<위 오운 더 나잇>), 현실 바깥의 사랑을 꿈꾼 남자는 결국 가족이 축복하는 여자에게 반지를 끼워준다(<투 러버스>). 그레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가족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며, 그것으로 인해 때때로 해피엔딩에 이르러서도 비극성이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레이가 가족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건 아니다. 그레이는 유대인으로서 돌아가야 할 곳인 가족을 운명처럼 묘사하곤 한다. 윤리와 도덕의 판단을 넘어선 존재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이창>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길> 등에서 온기를 가져온 <투 러버스>는 드물게 고전의 풍모가 깃든 멜로드라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보는 뉴요커와 CD로 아리아를 듣는 뉴요커와 오페라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뉴요커를 매끄럽게 대비한 장면에서 보듯, <투 러버스>는 어긋난 사랑의 슬픔을 우아하고 섬세하게 전한다. 그레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이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당신이 왜 그 사람과 결혼하는지” 묻는다.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의 달콤씁쓸함, 구애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통해 삶을 해석하는 그레이의 공력이 놀랍다. 미국에서 발매된 블루레이는 감독의 음성해설, 인터뷰와 현장 영상을 수록한 제작과정(7분), 3개의 삭제장면(9분), TV 홍보영상(5분), 포토갤러리, 예고편 등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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