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루마니아 뉴웨이브’는 식지 않았다
2010-07-21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런던에서 열린 제7회 루마니안영화제, 2009년 화제작 선보여
영화제가 열린 쿠존 메이페어 시네마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지난 7월2일, 런던의 메이페어에 위치한 예술영화 전용관 쿠존 메이페어 시네마(Curzon Mayfair Cinema)에서는 루마니안영화제가 개막했다. “최고의 루마니아영화를 세계 관객에게 선보이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 영화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개최하는 루마니안영화제는 영국 런던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매년 열리고 있는 행사다. 영국에서는 지난 2003년 첫회를 시작한 뒤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번 영화제의 캐치 프레이즈는 ‘루마니안, 형용사’(Romanian, Adjective)다. 루마니안 컬처센터의 디렉터 라모나 미트리차는 이번 프레이즈가 “개막작인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경찰, 형용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 동시에, ‘루마니안’을 형용사로 사용해 ‘루마니안 영화’, ‘루마니안 감독’, ‘루마니안 문화’ 등으로 확장된 의미를 만들어가고 싶은 루마니안 영화인들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7월4일까지 3일간 열린 본행사에는 지난 2009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여러 화제작들이 선보였다. 이번 영화제의 프로그래머 베레나 본 스타켈베르그는 “올해 영화제는 루마니아를 이국적인 느낌으로 묘사하는 영화들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칸과 베를린 등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을 엄선하여 루마니아영화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작품 선정의 기준을 설명했다.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심사위원상을 받은 개막작 <경찰, 형용사>를 비롯해 칼린 피터 네처의 <아버지의 훈장>, 단편 <복싱 수업>으로 주목받은 신예 감독 알렉산드루 마브로디네아누의 <몸속에 흐르는 음악>, 동유럽 공산권 붕괴 속에서 방황하는 18살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페막작 플로린 세르반의 <내가 휘파람을 불고 싶으면, 휘파람을 부는 거야> 등이 이번 영화제의 주요 작품이었다.

이 밖에도 근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1980년대 루마니아영화를 대표하는 댄 피타의 <Sand Cliffs>도 영화제를 찾은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주요 행사가 끝난 7월5일부터는 런던 시내 소호 등지에 위치한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현대 루마니아영화의 새로운 경향인 ‘루마니아 뉴웨이브’에 대해서 알리는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상영이 다시 3일간 이어졌다. 지난 몇년간 세계영화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루마니아영화는 이렇게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개막작 <경찰, 형용사>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 인터뷰

진짜 의미는 ‘언어’ 뒤에 숨겨져 있는 법

-<경찰, 형용사>의 또 다른 주인공은 ‘언어’ 자체인 것 같다. 특히 경찰 상사에게 언어는 크리스티를 공격하는 일종의 무기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들을 수집할 때 일이다. 당시 나는 경찰들이 작성해놓은 여러 문서들을 보게 되었는데, 이 문서들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 매우 객관적이면서 냉정한 문체로 쓰여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런 식의 의도된 객관화가 결국 현실에 대한 지각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의심이 갔다. 나 역시도 글을 쓸 때에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와 문장 구조에 집착하느라 진짜 의도와는 다른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언어의 불완전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진짜 의미는 언제나 언어 뒤에 숨겨져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당신 영화의 웃음 코드는 매우 정확한, 완벽주의적인 캐릭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당신 역시 완벽주의자인가.
=그렇다. 당신이 캐릭터를 창조한다고 생각해보라. 거기에 당신의 일부가 당연히 배어들지 않겠나.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극도의 완벽주의자라면 곧 이런 의문에 부딪힐 것이다. 캐릭터를 묘사하기 위해 만든 단어가 너무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내가 의도하던 캐릭터와 정반대의 캐릭터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의문 말이다. <경찰, 형용사>는 나의 이런 고민에서 탄생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번 작품에는 유독 롱테이크 숏이 눈에 띈다.
=보통 8∼20테이크로 촬영하는데, 이번에는 22∼25테이크를 찍기도 했다.

-롱테이크 숏이 당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 같다. 다음 작품에서도 이 촬영기법을 고수할 예정인가.
=그렇다. 나는 이런 촬영기법을 좋아한다. 아마도 롱테이크는 내 영화를 규정짓는 일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의 성공이 당신을 좀 더 성장시켜 주었다고 생각하나.
=음… 영화의 완성도가 조금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외로움의 정서를 보여주는 시퀀스, 예를 들어 크리스티가 홀로 일하고 있는 장면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몇년 뒤 다시 보면,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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