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활개 편 중닭 바쁜 남자 ‘조재현’
2001-12-21

조재현(36)씨는 요즘 경사가 겹쳤다. 텔레비전 드라마 <피아노>로 주가가 올라 남자 연예인 인기 1위로 꼽히고 있는 데 더해 지난 18일 베를린국제영화제쪽으로부터 그의 최근 출연작 <나쁜 남자>가 이 영화제 본선에 올랐다는 전갈이 왔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조씨는 이제 정상급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89년 곽지균 감독의 <젊은 날의 초상>에 운동권 학생으로 나오면서 데뷔한 지 10여년만이다.

지난 19일밤 늦게까지 <피아노> 촬영을 하고서 20일 아침에 부랴부랴 인터뷰에 응한 조씨에게 먼저 <피아노>의 성공에 대한 소감 한마디를 청했다. “방송이나 영화계에서 배우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기존의 배우들에게서 이미 알려진 이미지를 다시 우려내려고만 했지, 그들을 개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점에서 나같은 `중닭` 연기자도 기회가 주어지면 활기를 띨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내년 1월 개봉예정)는 인신매매를 중개하는 깡패가 우연히 마주친 한 여대생을 납치해 창녀로 만든다는, 다분히 김기덕식 정서에 기초한 영화다. 그 동기는 깡패가 여대생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줄 모르고 그럴 방법도 없다. 상대방을 타락시키면서 더 얽매이는 이 기묘한 남녀관계의 이야기에서, 조씨가 연기한 깡패 한기는 여대생을 범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놓아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덜 `나쁜 남자`로 나온다.

“정말 나쁜 놈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김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생각보다 덜했다. 김 감독이 의외로 약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여대생이 자기 발로 돌아온 뒤에도 한기가 이 여대생에게 몸을 팔도록 하고 거기에 빌붙어 사는 마지막 대목이 와 닿았다. 그런 놈이라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사랑의 방식이 보통 사람의 사고의 범주를 넘어서지만,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조씨는 지금까지 출연한 10여편의 영화 가운데 김 감독 것이 5편에 이른다. 그 영화 안에서도 <섬>의 다방 종업원 등쳐먹는 기둥서방, <수취인 불명>의 개장수처럼 야비한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조씨에게는 `김기덕의 페르소나'라는 별명이 붙어다닌다. “김 감독 영화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내 역할이 그 안에서 더 치우쳐 있으니까 김 감독의 정서를 내가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김 감독이 말하려는 정서가 내가 했던 역할 같은, 악마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비슷한 역할만 맡는 것 같아 <수취인 불명> 때 김 감독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무리 친하다고 서로 아는 것만 빼먹지 말고, 다른 것들을 찾아줘야하지 않겠냐고. <나쁜 남자>는 캐릭터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조씨는 김 감독이 앞으로 찍으려는 아이템이 두세개 있는데 그 안에 자기가 할 역은 기껏해야 우정출연 정도일 것이라고 전했다. 일단은 결별인 셈이다. “얼마전에 김 감독이 이제는 다른 감독들이 조재현이라는 배우를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고 말하더라. 마치 부하 하나 만들어서 전쟁터에 내보내는 이순신 장군처럼.”

조씨는 “이전에는 저예산 영화의 시나리오만 들어왔는데, 최근에는 거꾸로 메이저 영화의 시나리오만 들어온다”면서 “하고 싶은 역할이다 싶으면 저예산 영화에도 꼭 출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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