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세윤] 모두를 속이면서 짜릿함을 느껴
2010-08-27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 찍은 노래하는 개그맨, 유세윤

이거 진짜야 뭐야? Mnet에서 지난 7월14일 첫 방송을 시작한 <UV신드롬>은 유세윤과 뮤지 두 사람으로 이뤄진 ‘댄스 듀오 UV'에 관한 페이크 다큐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실제로 <쿨하지 못해 미안해>와 <집행유애> 등을 발표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태. 그들이 국내 최고의 인기 듀오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UV신드롬>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따져 묻기 전에, 그들의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음악계의 세태를 파고드는 부조리한 웃음까지 그저 이끄는 대로 즐기면 된다. 능청스럽게 홈쇼핑에서 자신들의 8900원짜리 CD를 팔고, 모든 지상파 방송을 거부한 채 고등학교 방송부와 독점 인터뷰를 가지며, 귀신의 목소리가 들어간 앨범은 늘 성공했다며 직접 흉가에 찾아가 귀신들과 함께 새 싱글을 녹음한다. 말 그대로 기상천외, 예측불허, 포복절도의 진짜 리얼 다큐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유세윤이 가짜였는지도 모른다. 여기 진짜 아티스트 유세윤을 만났다.

- UV와 <UV신드롬>은 어떤 관계인가.
= UV는 프로그램과 무관하게 시작한 건데 <쿨하지 못해 미안해>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으면서 가짜 다큐멘터리처럼 가보면 어떨까 했다. 실제로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는 허구의 가수이고 그 기분에 완전히 젖어 자유롭게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다. 마침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유일한 PD, 박준수 PD와도 코드가 잘 맞았고. 물론 <UV신드롬>이 끝나도 UV는 UV대로 활동할 것 같다. (웃음)

- 함께 <UV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박준수, 유일한 PD는 어떤 사람들인가.
= 유일한 PD는 대학 동기인데 워낙 영화 마니아다. 1학년 다니더니 재수해서 다른 대학으로 갔다. 영화과가 아니라 철학과에 들어가긴 했는데 영화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더라. 나도 영화에 대한 욕심이 좀 있어서 군대 가기 전에 서로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리고 제대하고 나면 꼭 영화를 찍겠다며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시나리오들을 보내오기도 했다. 철학과에 들어가서 그런지 굉장히 난해하고 의미심장한 것들을 보내왔다. (웃음) 그래도 대중적인 소통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서 뭘 하건 잘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UV신드롬>도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오히려 나야말로 예술이란 적당히 답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알건 모르건 턱 내놓는 거라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웃음) 박준수 형도 우리와 코드가 잘 맞았다. 두 사람이 컨셉 얘기를 하면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나오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Saturday Night Live)의 <딕 인 어 박스>(Dick in a Box)를 보여주며 엄청 웃더라. 다들 감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 KBS <웃음충전소>에서 유상무, ‘출산드라’ 김현숙과 함께했던 ‘막무가내 중창단’이 정말 신선한 ‘리얼’ 컨셉이었다. 유세윤이라는 사람에게 그동안 ‘무대’가 얼마나 좁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 세팅된 무대는 마음 놓고 거짓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뭔가 실생활처럼 말하고 진행하기도 좀 그렇고. 그런 점에서 반년 정도 ‘막무가내 중창단’을 하며 많이 자유로웠고 나 스스로도 신선했다. 그런데 사실 진짜 리얼이 아니기도 했다. 말하자면 실제 시민들 속으로 뚝 떨어져서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은 건졌잖소’ 같은 가사대로 행하는 컨셉인데, 혹시나 해서 제작진이 사전에 얘기가 된 사람들을 시민인 것처럼 깔아놓기도 했다. 100% 리얼로 갔다가 재미없게 될 수 있으니까 그런 건데, 물론 나한테는 그들이 누군지 비밀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편집된 걸 보면 그렇게 설정해서 심어둔 사람들 분량은 다 잘리고, 계산없이 리얼로 간 실제 시민들이 다 담겼다. 그때 리얼의 묘미를 제대로 알았던 것 같다.

- <UV신드롬>은 시작하기 전에 ‘안전지대’라는 로고가 뜨던데 그게 뭔가.
= <쿨하지 못해 미안해> 뮤직비디오가 나와 뮤지, 그리고 유일한 PD, MBC <무한도전> 촬영팀에 있는 또 다른 친구까지 해서 만든 작품인데 거기에 박준서 PD까지 더해 일종의 팀을 만든 거다. 거기에 앨범 재킷 사진 찍어준 친구도 우리 멤버다. 장진 감독의 ‘수다’처럼 우리도 ‘안전지대’라고 해보자고 했다. 영화도 방송도 뮤직비디오도 아닌 것이 또 그 모든 걸 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우리 세대의 안전지대라고 하면 ‘날라리’의 상징 아니었나. (웃음) 이렇게 모여서 재밌는 걸 해 보고 싶었다. 돈을 벌면 또 다른 것을 할 수도 있는 거고.

- <UV신드롬>을 보며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로브 라이너 감독의 재기발랄한 데뷔작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1984)였다.
= 이후 스타일과 방향에 관한 여러 시안 중 실제로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가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들은 페이크 다큐를 위해 조직된 밴드였다가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나중에도 계속 진짜 활동을 이어간 경우지만 우리는 이 프로그램과 별개로 원래 UV가 존재했다는 것 정도이다. 물론 우리도 이걸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거 같다는 얘기도 했다. 메인 PD인 박준수 형, 그리고 유일한 PD랑 애초에 얘기할 때도 우리는 연출할 PD도 있고 준비된 연기자도 있고 촬영까지 책임질 친구가 있으니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한 거지.

- <UV신드롬>을 보면서 짜릿한 건 출연자들이 대놓고 거짓말을 하고 그게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 요즘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다들 ‘리얼 예능’이라고 한다. 출연하는 연기자들도 ‘이게 진짜 리얼이다!’ 하면서 멘트를 한다. 여기저기 ‘리얼’이 아닌 게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이 정도까지 리얼’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거짓말까지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짜릿하지만 더 짜릿한 건 여기에 진짜 속는 사람도 있다는 거다. (웃음) 우리가 음악의 신이라면서 구준엽에게 보컬 트레이닝도 해주고, 고등학교 방송반 프로그램에 출연해 욕도 하면 그걸 진짜로 믿고 ‘너무한 거 아냐?’라고 얘기할 때도 짜릿하다. 그럴 땐 짐 캐리의 <맨 온 더 문>(1999) 생각도 난다.

- 오, 정말인가? <맨 온 더 문>의 앤디(짐 캐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자극하고 자기를 욕하게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나 역시 남을 웃기는 것보다 나 스스로 즐거운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웃음) <맨 온 더 문>의 앤디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여자들과 레슬링 경기를 갖고 나중에는 진짜 레슬러와 시합을 하게 되면서 청중을 자극하고 일부러 문제를 만드는데, 원래 시합을 함께 짜고 하기로 했던 여자친구(커트니 러브) 또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니까 ‘어디까지가 연기냐?’고 묻는다. 그렇게 그는 모두를 속이면서 짜릿함을 느낀다. 가령 요즘엔 누가 함께 사진 찍자고 하면 격하게 친절하게 대하기도 하다가, 어떨 땐 한없이 싸가지 없게 응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런 ‘필’인 건데, 그런 게 다 통하는 상황이 나는 너무 편하고 요즘엔 또 그런 게 즐겁다.

- <UV신드롬>은 1인시위 장면 등 나름 음악계를 둘러싼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다. 현재까지는 그 균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인데 이후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
= 모두 신나게 의기투합해서 시작된 프로그램이지만 너무 길게 가면 안될 것 같다는 데에도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UV신드롬>이 길게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시즌 자체를 길게 가게 되면 너무 그 방송에 젖어버릴 것 같고 의도하지 않은 노림수가 생기는 것도 경계하고 싶다. 다들 코드가 맞고 즐겁게 시작한 일이 스스로 약간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발생하면 안되니까. 다들 어떤 게 프로그램의 독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 <UV신드롬>에 옛날 당신이 혼자 춤추고 연주하는 비디오 영상들이 삽입된 게 재밌다. 그게 더 보고 싶어서라도 시즌2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아직 안 쓴 옛날 영상들이 훨씬 더 많다. 정말 방대하다. 근데 그 영상들이 굳이 Mnet에서만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니까. (웃음)

-좀 화제를 바꿔서, 좋아하는 영화 얘기를 해보자. (웃음)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는데 <킬 빌>(2003)이나 <데쓰 프루프>(2007)는 정말 최고다. 특히 <데쓰 프루프>는 ‘이거 이런 액션영화야, 더이상 뭘 보여줘?’ 하는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자동차 액션신이 최고였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의외로 코미디영화는 많이 안 본 것 같은데 그중에서는 <무서운 영화>(2000) 스타일을 좋아하고 잠자리맨이 나오는 <슈퍼히어로>(2008)도 진짜 웃겼다. (웃음) 국내 영화로는 <달콤한 인생>(2005)과 <타짜>(2006)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들이다. 김지운 감독님 좋아해서 그저께 <악마를 보았다>도 짬을 내서 봤다. (옆에 앉은 매니저가 ‘스케줄 빠듯한데 언제 나 몰래 봤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봄) 정말 찝찝하긴 하더라. (웃음) 최민식 형님은 지금껏 본 살인마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인간 아닌가 싶다. (웃음)

- 혹시 ‘내 인생의 영화’, 그런 게 있다면.
= <백 투 더 퓨처>(1985-1990) 시리즈. 개인적으로 감성이 예민할 때 봐서 그런지 과거로 가서 엄마와 사랑이 이뤄지려 할 때 그 가슴 아픈…. (웃음) 그리고 그 영화 때문에 스케이트보드에 빠져 지냈다. 마이클 J. 폭스처럼 자동차 뒤를 잡고 스피디하게 보드를 탄 건 아니고 학교 마치고 돌아갈 때 친구 자전거를 뒤에서 잡고 보드 타고 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쟤 뭐야?’ 하고 웃었을 거다. 묘기를 부리는 수준은 절대 아닌데, 어쨌건 그 영화 때문에 보드에 빠졌고 그게 내 이미지였으면 하던 시절이었다. (웃음)

- 그동안 영화 출연 제의는 없었나? 카메오 출연 제의는 무척 많았을 것 같은데.
= <일편단심 양다리>라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아직 개봉이 안됐다. 10신 넘게 출연했으니 카메오라고 하긴 그렇고 나 역시 굉장히 의욕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근데 그게 워낙 오래전이라 개봉은 할 수 있으려나. (웃음) 물론 카메오 출연 제의는 많은데 어쩌다보니 잘 안 하게 됐다. 건방진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가 좀 다른 이미지로, 약간은 재발견의 느낌으로 출연하게 되면 작은 역할이라도 상관없는데, 그냥 내 이미지를 그대로 소비하는 걸로 제의하는 거면 거절하고 싶다. 그러면 영화 자체도 너무 상업적으로 보이고 나한테도 썩 좋진 않을 것 같다.

- 그동안 연기한 수많은 캐릭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른다면.
= <개그콘서트>에서 연기한 ‘설인범’이다. 나는 성악설을 믿는 편인데(웃음) 태초에 인간은 악한데도 충분히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고 뭔가 내 적성에 맞는 느낌이었다. 다들 참고 사는 것도 많고 속에 숨기고 사는 것도 많은데 그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가령 원래는 ‘착한 녀석들’이라는 코너에 나오다가 그 코너가 없어지니까 ‘봉숭아학당’ 코너에 난입하는 것도 재밌었고, 객석에 앉아 ‘개콘 망하라’고 소리치는 등 나도 굉장히 즐겁게 연기했다. 그리고 ‘닥터 피쉬’는 <UV신드롬>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양상국이 우리 팬으로 등장했는데 이제 한명의 팬만 속이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UV신드롬>은 대국민 사기극 컨셉으로 갔다. (웃음)

- 그래서 ‘봉숭아학당’의 ‘복학생’ 캐릭터가 어쩌면 유세윤이라는 사람에게 편견을 심어준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 ‘복학생’은 딱 한달 정도 신기하고 좋았다. 쉬운 예로 나이트클럽에 놀러가면 내 옆자리에 앉고 싶어 하고 서비스도 많이 주고. (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좀 거부감이 생겼다. 게다가 나는 유행어와는 좀 거리가 먼데 ‘선생님 똥 칼라파워’ 같은 유행어도 있었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복학생 캐릭터가 싫었냐면 그것도 좀 아니다. 그로 인한 피그말리온 효과(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도 컸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 때문에 좀더 다른 걸 고민할 수 있었다고 하면 되겠다.

- 요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자신을 챙기고 있나.
=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종종 방송이 나에게 안 맞다고 느낄 때가 많다. 경제적으로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 그걸 언제나 즐기면서 하지 못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나는 즐기면서 해야 잘하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으로 임해도 잘 안되면 또 다른 고민에 빠질 수 있는 거고. 그런 잡념들이 생기다보니 극도로 우울한 생각에 빠진 적도 있었다. 물론 보상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즐기면서 하면 나도 즐겁고 모두가 즐겁다는 것도 안다. 어쩌면 그게 개그맨들이 끝내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때는 반 정도만 즐기면서 했다면 이제는 80%까지는 올라왔다. 여기서 좀더 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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