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샤말란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0-09-09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할리우드 문법과 타협해 색깔잃은 범작 <라스트 에어벤더>

볼 만하나 그 이상은 아니다. <라스트 에어벤더>에 대한 일반적 세평이다.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감독과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라는 원작 애니메이션에 기대를 하고 간 관객은 실망하고 돌아오나, 기대없이 간 관객은 그럭저럭 감상할 만하다. 이야기는 예측대로 흘러간다. 광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상은 시원스럽지만 굳이 3D여야 할 필요는 없을 듯 입체효과가 미미하다. 영화 시작 전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입체 로고가 가장 생생한 3D로 기억될 정도다. 3부작으로 전개될 시리즈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동이나 애니메이션, 판타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샤말란 감독 특유의 기묘한 감성을 원했던 성인 관객은 원했던 무언가를 얻고 돌아오지 못한다.

샤말란 감독의 전형적 날인은 다른 세계, 즉 초자연의 돌발적 개입에 놓여 있다. 그의 영화에서 초자연은 현실의 틈을 통해 살짝 우리에게 드러나지만(<싸인> <해프닝>) 결코 전체를 다 보여주지도 않으며 그 실체와 의도는 모호하다. 한편 초자연적 현상은 우리를 방문하기도 하는데, <레이디 인 더 워터>에서 아파트 단지에 찾아온 물의 요정이 그러하다. 그런데 <라스트 에어벤더>는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다. 초자연이란 그렇지 않은 일상세계와의 긴장과 대립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라스트 에어벤더>는 완전한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현실과 초자연이 충돌하여 벌어지는 이질적 균형 감각이 제거되었기에 이 작품은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다.

<스타워즈>의 동양 버전

기존 샤말란 영화가 서늘했다면, 이것은 시원스럽다. 감성의 온도와 질감이 완전히 다르다. 어쭙잖은 오리엔탈 스타일로 치자면, <스타워즈 에피소드1, 2, 3>보다 자연스럽지만 도포 입고 변발한 서양 사람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소재적인 것이 아니라 주제적으로 영화를 구성하는 동양적인 것들은 두드러지지 않게 자연스럽다. ‘동앙으로부터’라는 화두가 공허한 포즈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판타지물로서 <라스트 에어벤더>는 수행하는 소년과 그의 조력자가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제국에 영성으로 맞선다는 점에서 <스타워즈>의 동양 버전이라 할 만하다. 동양적 풍경의 전경화라는 측면에서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의 계보에 속한다. 인도 및 중국 시장을 겨냥한 배우들과 동방 무술을 전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쿵푸 팬더>(2008)의 전략과도 상통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는 이러한 전작들 그 어느 것도 능가하지 못하는 애매한 지점에 머물고 만다.

구도는 매우 단순하다. 물의 부족, 흙의 왕국, 불의 제국, 공기의 유목민 이렇게 4개의 나라가 영혼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평화를 깨뜨린 것은 영혼의 도를 따르지 않던 불의 제국이었다. 다시금 세계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는 물, 불, 흙, 공기 이 4개 원소를 모두 다 다루는 유일한 존재가 필요한데 그가 바로 아바타다. 아바타는 공기를 다루는 벤더, 즉 에어벤더 중에서 선발된다. 이 세계에는 물, 불, 흙, 공기를 다스리는 ‘벤더’가 있는데, 아바타를 두려워한 불의 제국은 공기의 유목민을 말살시켰다. 100년의 시간이 지난 뒤 영화는 물의 부족 오누이인 가타라와 소카가 최후로 남은 에어벤더 아앙을 만나 그가 최후의 에어벤더이자 아바타임을 알고 함께 수행을 떠나는 이야기의 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화적 세계관·애니미즘에서 전작의 그림자 엿보여

나는 복잡한 상업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해서 아는 바 없으며 또한 이 글이 이 영화에 대한 판단과 평가의 글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레이디 인 더 워터>(2006)와 <해프닝>(2008)에서 비롯하는 샤말란의 주제의식과 상통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는 있겠다. 두편의 영화 모두 일상생활에 틈입한 초자연의 방문 내지 공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의 초자연이란 인간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조화가 불균형을 이루는 데 서 비롯한다는 점에서 생태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라스트 에어벤더>와 긴밀한 친연성을 지닌 영화다. 이 영화 이후 샤말란은 라즈베리 시상식의 단골 놀림감이 될 정도로 당시 혹평을 받았으나 섬세하게 재평가되어야 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영화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한때 물속 요정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연결되어 있었고 인간은 영혼들의 말을 경청해왔다. 인간이 점점 요정들의 말에 싫증내면서 영혼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분리된다. 요정들도 인간을 버리자 마법의 권능은 인간의 세계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파트 수영장에 요정이 나타난다. 아파트 사람들은 오래된 동화의 암시에 따라 그 요정을 자신의 세계로 돌려보낼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한국어로 된 동화를 번역함으로써 등장인물들에게 숙지된다는 점이다. 동서양 공통적인 서사의 특징과 번역 작업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이 영화에서 동화적 세계는 일상세계에 잠시 ‘방문’하여 비루한 인물들의 일상을 동요시키고 상처를 보듬은 뒤 떠난다. 그런데 <라스트 에어벤더>로 가면 번역없는 동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첫 시작도 ‘물의 나라’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레이디 인 더 워터>와 유사하다. 영혼의 세계와 일상세계가 분리되어 있다는 상상력 역시 <라스트 에어벤더>와 공유하는 사항이다. <라스트 에어벤더>에서는 분리된 영혼의 세계와 유일하게 교감할 수 있는 자로 ‘아바타’가 등장한다.

한편 영혼의 세계, 즉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이계(다른 세계)와 현실이 분리되어 있다는 상상력은 <해프닝>에도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집단자살하는 상황이 등장한다. 테러인지, 식물들의 공격인지, 원자력 오염인지, 정부 생화학무기와 관련된 음모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이 재난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하다. 그런데 영화는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암시를 준다. 식물들은 서로 교감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위태롭게 하는 인간에 대한 방어와 공격에 착수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만한 인간들의 세계와 분리된 이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라스트 에어벤더>의 원작 애니메이션 <아바타:아앙의 전설>의 세계관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물론, 그 분리의 정서가 <해프닝>에서는 적대였으나 <아바타:아앙의 전설>에서는 공감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영혼의 세계와 일상세계의 분리가 비극적 상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사고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샤말란의 세 편의 영화 <레이디 인 더 워터>, <해프닝>, <라스 트 에어번더>는 서로 연관성을 지닌다.

<식스 센스>(1999)의 열광적 반응 이후 새로운 작품마다 대중의 기대를 배반해온 샤말란 감독은 나름대로 현실, 특히 다인종사회인 미국적 현실 속에 내장된 불온함의 감각을 초현실적 기법을 통해 연출해온 일관성을 보여왔다. 그것이 논리적이고 명징하게 해석될 수 없는 의미의 잉여를 지니고 있기에, 투명한 결말을 원하는 관객은 그의 작품에 대해 지속적인 실망을 토로해왔다. SF와 스릴러 장르를 유용하되 할리우드 컨벤션과 다른 서사적 리듬과 주제화 방식을 택한 것도 대중 관객의 기대와 다른 지평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할리우드의 거대 문법 속에서 작업하는 동안 그는 대중적 기호와 어느 정도 타협해왔기에 그 결과물은 매우 애매한 지점에 놓이게 되었다.

할리우드 대작 연출하되 세계관 잃지 말았으면

<라스트 에어벤더>에선 기존 판타지영화보다 나은 미덕을 발견하기 힘들고, 영화의 각색(감독이 직접 한)도 원작 애니메이션의 미덕을 흐리게 한다. 다만 그의 최근의 연출작을 감안할 때 <라스트 에어벤더>에서 모험과 성장을 하는 것은 소년 아앙이 아니라 감독 샤말란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암시와 불가해라는 일관된 방식을 지우고 철저하게 투명한 할리우드식 대작을 연출하되 그 세계관은 자신의 관심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 비록 그 결과물이 흥미로운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기대되는 것은 그의 차기작이다. 그는 자신의 진부함과 관객의 뻔한 기대를 능가할 수 있을까. 샤말란에게는 어정쩡한 범작보다는 오히려 최악의 작품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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