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우리 모두 소인이 되어볼까요
2010-09-07
글 : 김혜리
다네다 요헤이가 상상한 <마루 밑 아리에티>의 세트 전시회

문제는 스케일이다. 영화 <고질라>의 광고문구가 아니다. 신장 10cm 소인족 소녀의 이야기 <마루 밑 아리에티>가 선사하는 재미와 드라마의 큰 몫은, 인간과 소인의 세계가 기초한 ‘잣대’의 차이에서 온다. 주위를 둘러보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물들은 온통 인간의 신체규격을 기준으로 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영화 프로덕션디자이너 다네다 요헤이는 <마루 밑 아리에티>가 실사영화였더라면 가졌을 세트를 영화로부터 다시 창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X다네다 요헤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지난 7월17일부터 오는 10월3일까지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쿄도 현대미술관(http://www.mot-art-museum.jp/kor/index.html)에서 열린다. 8월 말 현재 연인원 10만명이 미술관을 찾아 아리에티의 눈높이와 보폭으로 세상을 체험했다.

1. 아리에티의 방

아리에티의 방문에는 사춘기 소녀답게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사인이 새침하게 붙어 있다. 햇빛 아래 뛰어놀기를 좋아하지만 숨어 살아야만 하는 아리에티는 꽃잎과 잎새를 모아 방을 아담한 온실로 만들었다. 잠자리가 떨어뜨린 한쪽 날개가 아름다운 장식이 됐다.

2. 스테인드글라스

인간에게 빌린 물건으로 알차게 채워진 집 안에는 예술의 향기도 빠지지 않는다. 우표를 표구해 벽에 걸고, 창문은 외동딸 아리에티의 초상으로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몄다. 이 집에서 아리에티 가족이 꽤 오래 안정된 생활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실내장식이다.

3. 포드의 작업실

아리에티의 아빠 포드는 뛰어난 모험가이자 엔지니어다. 그의 작업실에는 양면테이프, 핀셋, 클립, 손톱깎이, 피복 벗긴 전선 등 인간의 물건을 용도 변경한 공구와 도구가 한치의 빈자리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4. 램프

크리스마스트리에 휘감는 꼬마전구 장식등이 아리에티의 집에서는 주조명이 된다.

5. 욕실

재떨이 한쪽을 잘라 욕조로 설치한 아늑한 욕실. 인간의 타일을 빌려와 마감재로 쓰다보니 한개가 다다미 한조만하다.

6. 거실 겸 식당

사람의 손목시계가 벽시계로, 화분이 아궁이로 쓰이는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풍경은, 전망을 누릴 수 없는 가족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붙여놓은 사진. 롤스크린이라서 밤이 되면 야경으로 교체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가상세트는 영화에서 의도된 집 안의 밝기를 포함해서 재현됐다. 미술관쪽은 카메라 기자에게 플래시를 터뜨리면 세심히 의도한 조도와 어긋나는 사진이 나온다고 삼갈 것을 권했다.

7. 도르래

열네살이 된 아리에티가 아버지를 따라 인간의 집으로 물건을 빌리러 가는 모험의 통로다. 벽 안에 튀어나온 못이나 스테이플이 그들의 징검다리가 된다.

8. 정원

정원은 쇼우가 아리에티를 처음 목격하는 장소다. 아리에티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계는 많은 사물에 의해 그늘져 있기에 인간의 시야보다 어둡다. 아리에티 입장에서 풀잎을 만져보려니 껑충 뛰어오르지 않곤 어림도 없다. 초록 차양처럼 보이는 잎사귀의 가장자리는 요철이 날카롭고 돌의 부서진 모서리도 위협적이다.

9. 와인병

숨어 사는 소인들의 집은, 처음부터 터가 있고 그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획해서 만드는 상식적인 주택과 다르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터를 잡아야 하니 복도가 길고 구조가 구불텅하다. 소인의 스케일에 따라 3m 높이로 제작된 1989년산 포도주병도 이곳에 원래 버려진 폐품 아니었을까? 아리에티의 아빠는 그것의 둘레에 한칸씩 집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현관 입구에 자리한 유리병은 지상의 빛을 그러모아 자연광이 희박한 실내를 밝힌다.

10. 통풍구

정원과 집을 연결하는 통로. 아리에티가 혼자 되고 싶을 때 빗소리를 들으며 무심코 생각에 잠기는 장소이며, 스며드는 한줌의 햇볕으로 빨래를 말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2010 GNDHDDTW Production Design Yohei Tan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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