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 X를 물고 살아야 편한 거야.” 음담패설, 혹은 무시하고픈 여성비하.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의 배우 백수련은 이 대사를 정언명령으로 바꿔놓는다. 그녀가 연기한 동호 할매의 믿음을 따를 때, 복남의 시련은 당연한 것이고, 그녀를 향한 남자들의 가혹행위는 눈감아줄 만한 문제다. 이 영화는 복남의 처절한 복수극이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도 백수련의 표정과 목소리는 쉽게 잊지 못할 만큼 강렬하다. 아니, 어쩌면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그녀를 기억하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당시의 작품을 보지 못한 세대라도 영화 <아저씨>에서 태연히 라면을 먹던 개미굴 노파는 기억할 것이다. 연기인생 50년 만에 재발견된 배우 백수련을 그녀가 운영하는 바에서 만났다.
-<김복남>은 아직 개봉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먼저 개봉한 <아저씨>는 5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 같아요.
= 사실 아직까지 <아저씨>를 못 봤어요. 그런데 본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전화가 계속 와요. 나랑 친한 조민수도 인상이 콱 박혔다 그러고. 나문희도 전화해서는 잘 봤다고 그러더라고. 그런데 고작 다섯신 정도 나온 거라 그렇게 좋을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촬영 순서상으로는 <김복남>이 첫 영화입니다. 한동안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으셨는데, 이 영화는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방송사와 계약문제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이후 한 16년 동안 드라마를 못했었죠. 아무튼 제의를 받았는데, 역할이 좋다는 거예요. 할머니쪽에서 주인공이래. (웃음) 일단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일을 안 했으니까 방송보다는 영화로 시작해서 다시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TV를 보면서 속상할 때가 있었거든요.
-장철수 감독은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야 동호 할매에 대한 캐릭터가 완전히 잡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동호 할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무척 보수적인 옛날 할머니지 뭐…. 거기에 좀더 알파가 있는 할머니로 설정했어요. 그런데 잘 안 나온 것 같아서 미안해요. 사실은 내가 16년을 쉬었는데, 또 나쁜 여자 역만 들어오는구나란 생각도 있었어요. 예전에도 못된 시어머니 같은 역할을 많이 했으니까요. 내가 전생에 뭐가 있는지…. (웃음)
-동호 할매는 캐릭터만으로도 사연이 궁금한 여자입니다. 선생님께서도 동호 할매의 사연을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랬죠. 이 여자도 복남이처럼 평생을 섬에 묻혀 살았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을 거야. 살면서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또 동네에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다 보니 그랬을 거라고. 복남이를 보면서도 저 애가 내 인생을 살고 있구나 했을 거예요. 또 복남도 시고모인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끈끈함은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마지막에 죽는 장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죠. 복남은 어차피 동호 할매를 죽였겠지만, 먼저 낭떠러지까지 따라와서 몰잖아요. 자기도 직접 피를 보면서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16년 동안 연극 외의 활동은 쉬다가 한 영화였습니다. 그동안 마음에 두셨던 캐릭터 이미지와 동호 할매가 어느 정도는 맞았나요.
=전혀요. 다음에 한다면 정말 조신한 여자를 하고 싶었지. 내 원래 성격에도 그게 맞아요. (웃음) 나는 <TV문학관> 외에는 그런 걸 안 해봤어요. 하지만 이제 다시 연기를 해도 그런 조신한 여자 캐릭터는 안 주겠지.
-그런데 <아저씨>의 개미굴 노파도 센 역할이잖아요. 단순히 악역이라기보다는 그런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의지는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긴 하죠. 사실 <김복남>을 하지 않았으면 <아저씨>도 안 했을 거예요. 일단 큰 역할을 해봤으니까, <아저씨>도 한 거지. 만약에 밋밋한 역할이었다면 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김복남>이 첫 영화지만 이전에 제안을 받은 적은 있지 않나요.
=아주 옛날에 딱 한번 있었어요. 화천공사라고, 거기서 스님이 주인공인 영화를 준비했는데, 캐스팅됐었죠. 그런데 계약을 앞두고 김지미씨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거야. 다른 영화에서 머리를 삭발하고 스님을 연기한다고. 백수련이가 어떻게 김지미를 이기겠어요? 회사에서 바로 영화를 엎어버렸죠. 그 이후로 영화랑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김지미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1984년에 준비했던 <비구니>다. 이 작품은 불교계의 항의로 제작 중단됐다.-편집자).
-매번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셨지만, 실생활에서도 쉽게 넘어가는 게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때의 갈등도 꽤 컸다고 들었습니다.
=김인태 선생이랑 내가 방송국에서 아주 유명했어요(김인태는 백수련의 남편이다.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김민준의 계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의 아버지를 연기했다.-편집자). 김인태 선생은 탤런트협회장을 했었는데, 방송국에서는 김인태만 자르면 다른 탤런트들이 머리를 숙일 거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김인태씨가 협회장할 때 탤런트들의 출연료가 제일 많이 올랐어요. 나중에 유인촌이 할 때도 그렇게 올리지는 못했어. 아무튼 내가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는 나쁜 어머니 역할을 안 했어요. 구시렁거리면서도 순종적인 아내였지. 그렇게 3년을 했는데, 타 방송사에서 섭외가 오는 거야. 역시 못된 여자 역할이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또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KBS랑 계약 갱신할 때, 내가 다른 건 안 할 테니 출연료를 배려해달라고 했어요. 안 해주려고 하더라고. 한 4개월을 끌었는데, 나중에 타이틀 롤인 김상순씨가 계약을 해버린 거야. 그래도 못하겠다고 했더니, 본보기 삼아서 나를 자른 거예요. 그 뒤 MBC나 SBS에도 출연을 못했어요. 그때 국장이 내가 엄청나게 큰돈을 달라고 했던 거처럼 소문을 낸 거야.
-같은 시기에 며느리를 연기한 이경표씨도 다른 사정으로 하차했고, 그러면서 선생님과 이경표씨의 역할 모두 극중에서 죽는 설정으로 처리됐습니다. 그 뒤 아버지와 아들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재혼을 하는 상황으로 이어가더라고요.
=사실 한집에서 두명이 요절하면 망한 거잖아요. 드라마도 끝나야 하는 거야. 그때 방송국으로 전화가 많이 왔대요. 신문에도 크게 났었고. 방송국에서는 시끄러우니까 어떻게 정리를 하려 했나봐. 작가가 전화해서는 “백수련씨 기뻐해. 이 드라마가 없어진대” 그러더라고. 그런데 사람 심리가 묘하지. 내가 괜히 좋은 거야. (좌중 폭소) 하지만 그때보다 한 7년쯤 지나니까 그제야 아쉬움이 생기더라고. 다들 다음에 섭외가 오면 숙이고 들어가라고 했어요. 물론 그게 잘 안될 거야. 평생 박혀온 거니까.
-방송생활을 하지 않는 동안 영화를 많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이나 영화감독이 있으셨나요.
= 잘 못 봐요. 가게를 운영하면서 사람이 우습게 됐어요. 24년 했는데, 짧은 거 아니거든. 이것 때문에 방송도 우습게 안 거 같아. 난 밥먹는 데가 있었던 거니까. 그래도 영화는 종종 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제목이나 이름도 잘 모르겠네. 강부자는 축구선수 이름도 잘 외우던데. (웃음)
-아드님도 배우잖아요. 아드님이 출연한 영화는 보셨겠죠.
=김수현이라고, 류승완 감독이 좋아하는 배우죠(<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 ‘다마네기 경사’를 연기했다.-편집자). 오직 류승완만 좋아해. 그런데 류승완이 자기 동생 키우느라고 얘를 잘 안 키우네. (웃음) 그래도 역할은 아주 당당한 조연으로 좋은 거 주더라고. 사실 난 그애가 뭘 하는지 잘 몰라요. 요즘도 대학로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거 같은데, 뭐 하냐고 물어보면 말을 안 해요.
-이제 <김복남>과 <아저씨>로 강한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다시 일을 하고 싶으셨던 만큼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주변 사람들도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해요. 그런데 사실 내가 보기와 달리 외향적이 아니에요. 아들이 그러더라고. 우리 가족이 좀더 외향적이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았을 거라고. 맞는 얘기예요. 얼마 전에 강부자랑 같이 <맛있는 초대>인가에 나갔는데, 뭘 못하겠더라고. 빨리 집에나 가고 싶었지.
-마지막 질문입니다. 혹시 본명이신가요.
=아니에요. 내가 유명한 황고집, 황씨예요. 본명은 황화순인데, 이 이름에도 꽃이 들어가요. 백수련은 실제 연꽃 이름이죠. 오빠가 지어줬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내가 연기하는 걸 반대하셨는데, 국립극장 단원됐을 때 지어왔어요. 젊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늙으니까 안 어울려. (웃음) 기사 쓸 때, 하나만 부탁할게요. 나이만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