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배우들이 노련한 앙상블을 선보이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유독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얼굴이 있다. 연애조작단의 ‘미행·잠복 전문 요원’ 재필로 등장하는 전아민이다. 생각해보면 이렇다 할 대사도 없고, 무표정한 얼굴로 ‘연애 돕는’ 장비를 설치하는 모습만 기억에 남는데 그 존재감이 상당하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오디션으로 선발된 단 한명의 배우인 전아민은 뮤지컬 팬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2009년 뮤지컬 <그리스>의 바람둥이 소니 역을 맡아 주목받았던 전아민은 뮤지컬 무대에서는 재필의 이미지와 다르게 주로 “밝고 극의 활력소가 되는” 감초 역할을 맡아 연기해왔다. 연애조작단 멤버 중에서 비유하자면 박철민 역할이란다. 그런 그가 영화에선 느닷없이 과묵한 재필 역을 맡은 이유는? “김현석 감독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스탭 중에는 오디션에 참여한 저를 보고 긴가민가 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감독님은 무표정하고 시크하게, 무뚝뚝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제가 마음에 들었다고요. 제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무장해제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뮤지컬에 출연하며 몸에 밴 애드리브들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뮤지컬에서 하던 대로)촬영장 갈 때 재필이 할 법한 행동을 몇 가지 버전으로 연구해서 갔어요. 하지만 감독님은 제 캐릭터에 이것저것 붙이는 걸 싫어하셨어요. 영화 나온 걸 보니 저, 감독님 말 잘 들었구나 싶었어요. (웃음)”
비록 아쉬운 부분이 왕왕 눈에 밟히고, 재필이 작전을 위해 거짓 프러포즈를 했던 ‘장기하 팬클럽 회원녀’(이미도)와의 에피소드가 편집된 건 아쉽지만, 전아민은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촬영하며 “한신, 한컷을 뽑아내기 위해 서너 시간의 정성이 필요한” 영화의 특성에 깊이 매료됐다. 그리하여 당분간은 영화와 더 가깝게 지낼 생각이다. “사람들이 물어요. 빛나는 조연만 하고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냐고. 하지만 저는 배우로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서 톱의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조용히 산책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가 대단하다는 말보다 영화 속에 참 좋은 배우 있구나, 그런 말이 더 듣고 싶어요.” 그 대답, 재필처럼 담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