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시즌이 시작되려면 몇달이나 남은 지금, 오스카 여우주연상 레이스는 이미 조용히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개봉작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여배우로는 한국에서도 개봉 중인 <에브리바디 올라잇>의 아네트 베닝과 줄리언 무어, <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누미 래페이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탈리아영화 <아이 엠 러브>의 틸다 스윈튼, 그리고 올해 선댄스필름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과 각본상 등을 수상한 <윈터스 본>의 제니퍼 로렌스 등이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개봉했지만 미국에서는 올해 3월에 소개된 뒤 원작 소설과 함께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밀레니엄…>의 주인공 누미 래페이스는 조용히 유명 홍보 담당자를 고용했고, 미국 배급사가 그녀를 위해 물밑작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유명 영화업계 블로거 니키 핑크의 ‘데드라인닷컴’(Deadline.com)을 통해 알려졌다. 아네트 베닝과 줄리언 무어는 정자은행을 통해 각각 출산한 레즈비언 커플을 연기하며 중년의 위기는 물론 아버지를 찾고 싶어하는 자녀들의 요구에 고민하는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해 평론가의 호평을 받고 있다. 틸다 스윈튼 역시 중년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가정을 떠나는 상류층 여성을 이탈리아어로 연기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현재 오스카 여우주연상 레이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여배우는 두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이 전부인 19살 소녀 제니퍼 로렌스다. 데브라 그래닉 감독의 <윈터스 본>에서 그녀는 마약제조 혐의로 실형선고를 앞둔 아빠가 집을 담보로 보석금을 낸 뒤 종적을 감춰버리자 아빠 찾아 삼만리에 나선 17살 소녀가장 리 돌리를 연기한다. 심한 우울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어머니와 나이 어린 두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리는 삶의 터전인 허름한 집을 지키기 위해 ‘동료 마약 밀매범’이기 때문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이웃과 먼 친척 사이에서 힘든 여정을 거치고, 결국 중요한 진실을 밝혀낸다. 로렌스의 연기는 로저 에버트를 비롯한 수많은 평론가의 극찬을 받고 있다.
물론 어워드 시즌을 겨냥해 발표되는 작품의 여배우도 많다. 이미 언급한 다섯명 외에도 오스카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여배우로는 <블루 발렌타인>의 미셸 윌리엄스, <러브 앤드 아더 드럭스>의 앤 해서웨이, <어나더 이어>의 레슬리 맨빌, <검은 백조>의 내털리 포트먼, <컨빅션>의 힐러리 스왱크, <네버 렛 미고>의 캐리 멀리건, <페어게임>의 나오미 왓츠, <세크리테어리엇>의 다이앤 레인, <킹스 스피치>의 헬레나 본햄 카터, <템페스트>의 헬렌 미렌 등이다. 이 영화들은 올해 말을 시작으로 한국에도 개봉할지 모른다. 수백만달러를 들인 홍보 없이도 숨겨진 보석처럼 빛을 발산하는 여배우들의 연기를 꼭 감상하길 권한다.
집안일과 사냥, 연기가 아니라 실제다
<윈터스 본>의 데브라 그래닉 감독
*아래 인터뷰는 외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주연 제니퍼 로렌스는 물론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윈터스 본>은 대니얼 우드렐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수년간 소설의 배경이 된 미국 미주리주 인근 산간지역 오작(Ozark)을 방문하며 자료조사를 했다는 데브라 그래닉 감독은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나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전형적인 동부 여성이다. 그러나 17살 소녀가장 리 돌리 역에 남부 출신인 연기 초년병 로렌스를 캐스팅하면서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렌스는 요즘 어린 여배우들과 달리 직감적이고 정직한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이 작품 전에 두편의 영화에 출연한 것이 전부인데, 다행히 그 역할들은 예쁘게 가만히 앉아 있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실제 장소에서 다양한 집안일과 사냥 등을 연기가 아니라 직접 해야 했다. 그녀의 동생을 연기한 두 아역배우가 전문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연기 지도도 하면서 실제 언니와 누나 역할을 한 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그럼 실제로 장작 패기와 다람쥐 털 벗기기 등을 했단 말인가.
=장작 패는 도끼질이나 다람쥐 사냥, 껍질 벗기기 등도 모두 실제로 했다. 오작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큰 도움을 줬다.-주인공 리 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배우를 만났다던데.
=수많은 여배우를 만났다. 17살 소녀 역이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캐릭터이기 때문에 20대 중반의 여배우들까지 만났다. 그러나 나중에는 왜 여배우들이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니퍼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오디션을 위해 극심한 추위에 오랫동안 걷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녀가 출연했던 <포커 하우스>를 찾아보고 확신을 갖게 됐다.-로렌스가 남부 출신이라 했는데 어디인가.
=켄터키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오디션 때 남부 출신이라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여배우들은 남부 악센트를 참 힘들어 했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니퍼가 그 배역을 정말 원했고, 그 의지가 나에게 정확하게 전달됐다는 거다. 제니퍼가 역할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