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이 참 아끼는 사람이구나.’ 카를로 리자니 감독의 초대전이 열린 첫날 시네마 트레비로 들어서자마자 그런 느낌을 받았다. 리자니 감독이 영화관에 들어서자 영화관계자와 마니아들이 그를 둘러싼 채 칭얼거리고 응석부리고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뭐라도 하나 더 주워들으려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참 생소한 이름이지만 카를로 리자니는 지난 세기 이탈리아 영화판을 생생히 목격한 몇 남지 않은 감독 중 한 사람이고, 1979년부터 3년간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시네마 트레비는 9월16일부터 30일까지 카를로 리자니 감독 초대전을 통해 20세기를 들여다볼 요량으로 그의 영화 마흔편을 상영하고 있다.
카를로 리자니는 루키노 비스콘티, 로베르토 로셀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조세페 데 산티스 등 20세기 이탈리아 영화계를 풍미한 감독들과 함께 네오리얼리즘 시대를 거쳐온 살아 있는 박물관 같은 영화감독이다. 그는 <꼽추>(il Gobbo), <베로나의 재판>(il Processo di Verona), <무솔리니의 마지막 장>(Musolini ultimo atto)으로부터, 두고두고 회자될 <밀라노 도둑>(Banditi a Milano), <새콤한 삶>(La Vita Agra), <메이나 호텔>(Hotel Meina)까지 모두 70여편의 영화를 만들며 20세기와 21세기 이탈리아 영화계를 이어왔다. 리자니는 1922년 파졸리니와 같은 해에 태어나 파졸리니보다 10년 일찍 <Achtung! Banditi!>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는 비스콘티, 로셀리니, 데 산티스의 시나리오작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오스카 최우수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네오리얼리즘 시대를 살았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카를로 리자니를 로마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며 인터뷰를 요청하니 그는 1971년에 있었던 대연각호텔 화재를 아느냐고 물었다. 대연각호텔에서 화재가 나기 하루 전, 서울을 방문 중이던 리자니 감독은 대연각에 묵을 생각이었으나 방이 없다는 이유로 대연각호텔 바로 앞 호텔로 옮겼다. 2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대연각호텔 화재를 떠올리며 “한국에서 우연히 다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거장에게 20세기 이탈리아 영화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뭐였나.
=문학에 관심이 많아 글쓰기를 좋아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로셀리니, 비스콘티, 데 산티스 감독과 함께 일했다. 현장에서 로셀리니 감독하고 일할 때였다. 그 양반이 시나리오만 쓰지 말고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더라. 현실을 내 관점으로 보고 싶은 욕심에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당시 이탈리아 영화계는 어땠나.
=지금하고 많이 달랐다. 영화계가 좁으니까 누가 뭘 하는지 알고 또 서로 의지가 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경험과 삶에 묻혀 살지만 당시는 감독들이 자주 만나고 그랬다. 적어도 적이 같았으니까.-적? 어떤 적 말인가.
=가톨릭 정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여서 영화계에 대한 지원에 아주 보수적이었다. 전쟁 직후이니 이탈리아 현실이 처참했는데도 리얼하게 가난을 묘사하는 영화들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탈리아 속담 중에 ‘더러운 옷은 집에서 씻는다’는 말이 있다. 흉이 될 만한 것은 집 안에서 해결한다는 뜻이다. 가톨릭 정당은 가난을 보여주는 걸 흠으로 생각했을 거다. 그때 지원의 폭이 좀더 넓었다면 <자전거 도둑> 같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을 거다. 내가 비스콘티와 로셀리니를 위해 쓴 시나리오 중 10%만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
=파졸리니는 그의 첫 영화 <아칸토네>(Accattone)를 찍기 전에 내 영화에 두번 출연했다(<꼽추>와 <편안히 쉬소서>(Requiescant)에서 주연을 맡았다-편집자). 파졸리니의 얼굴을 보면 강하고 의지가 철철 넘치는 터프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그리고 약간 나쁜 남자 같은 인상이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으면 미소년이 징징거리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가냘프고 작고 소리가 얇다. 그래서 내 영화에 출연했을 때 두번 모두 더빙을 해야 했다. (웃음)-네오리얼리즘을 물려받은 지금의 이탈리아 영화감독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마르코 툴리오 조르다나, 파올로 소렌티노, 마테오 가로네, 난니 모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