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 아래> Under the Hawthorn Tree
감독 장이모 / 홍콩, 중국 / 2010년 / 115분 / 개막작
흥미로운 장면 하나. 문화혁명기의 중국, 집에서 하방 근무지로 돌아온 징치우(주동우)는 자신을 기다리던 라오산(더우샤오)과 함께 밤길을 걸어 숙소로 간다. 개울가를 건널 때, 라오산은 징치우의 손을 잡으려 하지만 징치우는 수줍게 거절한다. 라오산은 자그마한 나무 막대기를 잡아 징치우에게 내민다. 두 사람은 각기 나무 막대기의 양 끝을 잡고 개울을 건넌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침내 손을 잡는다.
장이모 감독은 문화혁명기 순박한 두 청춘의 사랑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로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걷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 졌을 때 비극은 싹 턴다. 이처럼, 장이모 감독은 징치우와 라오산의 사랑을 통해 순수의 시대를 꿈꾼다. 세월의 무게 때문에, 혹은 사회의 변화된 환경 때문에 이제는 점차 사라져 가는 ‘순수함’ 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장이모 감독의 행보를 보면 블록버스터급 대작에 치중해 왔다. <영웅> <연인> <황후화> 등 대작에 이어 1,000억 원 규모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연출을 담당했던 당대의 거장이, 1m 간격을 좁히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낭만적이고 소박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책상서랍 속의 동화> <집으로 가는 길> 등 그의 초,중반기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2010년의 시점에서 <산사나무 아래>를 보면 그 소박함의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순서가 뒤바뀐 듯한 느낌도 든다. 어찌 보면 이는 영화감독으로서 장이모의 현명한 전략일 수도 있다.
장이모의 전략이야 어쨌건 간에, 환갑이 넘은 남성 감독이 젊은 남녀의 두근거리는 첫 사랑의 감정을 어쩌면 그리도 절절하게 표현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장이모의 필모그라피를 전혀 모르는 관객이라 하더라도 <산사나무 아래>는 가을 밤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감동과 추억에 흠뻑 젖게 한다.